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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뀨 Dec 02. 2024

내가 만만해?

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15]

[15]


“뭐 때문에 그러시죠?

무슨 문제가 있나요?”

밖에 나가 대화 나누자는

셀린의 말에 이유를 물었다.


“아니요!”

셀린이 손사래를 쳤다.



“커피에 문제라도 있었나요?”

다시 물었다.


커피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새 커피를 내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니요!”

이번에도 셀린은 손사래를 쳤다.




뭐야..

그럼 왜 굳이 밖으로 불러내려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럼 어떤 일로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건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냥 관심 있어서요~

(I’m just interested)”




…염병..


도대체 이 아줌마가

나한테 무슨 관심이 있는진 모르겠어도

개소리를 시전하는 건 알겠다.


“죄송하지만,

제가 일하고 있는 중이라 어렵겠네요”

최대한 정중하려 했지만

표정이 굳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오케이”

셀린은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한 근육질 남자가

매장에 들어왔다.


저 남자는 

평소 ‘톰’과 함께 자주 보이는 사람이었다.

(*톰에 대한 내용은 14화 참고)


톰과 비슷하게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것을 봐서

둘은 친한 친구인 것 같았다.




“안녕~ 잘 지냈어요?”

근육질 남자가 주문하러 들어오며

반갑게 아는 체했다.


저 남자의 주문을 몇 번 받아봐서

안면은 트인 사이지만..

우리가 서로 반가워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안녕하세요, 잘 지냈죠. 뭐 드릴까요?”

적당히 웃으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냥 빨리 주문하고 떠나라..




“녹차에 우유 조금,

스테비아 한 팩 넣어줘요”




스타벅스까지 와서

커피가 아닌 녹차를 마신다고..?


그냥 마트에서 티백 사서

뜨거운 물에 우리면 되는데..

돈을 땅에 뿌리나..


“네, 잠시만요.”

근육질 남자가 주문한 녹차 티백을 뜯고

컵에다가 뜨거운 물을 부었다.




“혹시 운동해요?”

남자가 주문한 녹차를 기다리면서

말을 걸었다.


갑자기 운동?

운동 하기야 하는데

갑자기 왜 물어보지?


“어… 네.. 왜요?”


“지난번에 걸어가는 거 봤는데

걷는 폼이 운동하는 것 같아서요”




셀린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스타벅스 외의 장소에서 

나를 포착하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 같다.


앞으로 밖에 다닐 때

모자로 얼굴 가리고 다니든지 해야겠다.




“원래 운동했는데,

지금은 좀 쉬고 있어요”


녹차에 우유와 스테비아를 넣으며

짧게 대답했다.


스테비아..

보통 사람들은 설탕 넣는데…

이 남자는 설탕 대신 대체당을 넣는 것 봐서

운동 좀 하는 사람 같았다.




“제 직업이 퍼스널 트레이너예요.”


그럼 그렇지..

근육질 몸에 스테비아라니..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뭐…




“원한다면 제가 다니는 헬스장 할인해 줄게요.”


..???예???


지난번에 톰도 그렇고, 셀린도 그렇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톰의 친구라는 사람도 그렇고


왜 자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날 스타벅스 외의 장소로 불러 내려는 지 모르겠다.



“제가 발목을 다쳐서

운동을 쉬고 있어요.

마음만 받을게요.”


남자에게 녹차를 건넸다.


“주문하신 녹차에

우유 조금이랑 스테비아 한 개요.

총 3.65달러고

준비되시면 카드 결제기에 카드 대주세요”


남자가 대꾸할 틈도 없이

앞에 있는 카드 결제기를 향해

손을 뻗으며 결제를 요청했다.


그러자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의 손짓을 악수로 대단히 오해한 그가

손을 뻗으며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순간 당황스러워

카드 결제기로 향한 손을 서둘러 거뒀다.

“아니요.. 결제요..”


“아!”

근육질 남자가 머쓱한 듯 웃음을 지으며

손을 거두고 카드를 꺼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스몰 톡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잘 가라는 말로 남자를 보내버렸다.


“꿈뀨!!!!”

남자가 완전히 매장을 떠나자

같이 일하는 슈퍼바이저가 달려들었다.


“저 남자가 뭐래!!

왜 이렇게 오래 대화를 했던 거야!!”

슈퍼바이저가 대답을 보챘다.



“별말 안 했어.

자기 퍼스널 트레이너라고

원하면 자기가 다니는 헬스장 할인해 주겠다던데?”




“Bull shit(쥐랄하네)”

슈퍼바이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낮게 읊조렸다.




“조심해, 저 남자 완전 꾼이야

앞으론 스몰톡 할 필요도 없어.

주문한 거 내어주고 그냥 보내버려.


스타벅스 고객 커넥션 중요하네 마네 하는데

저 남잔 예외야. 알았어?


그냥 앞으론 대화하지 마”


슈퍼바이저가 이렇게 단호하게

경고를 주는 경우는 또 처음 봤다.


신입 시절 실수를 그렇게 많이 했어도

이렇게 단호한 말투는 들어본 적 없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슈퍼바이저에게 물어봤지만

슈퍼바이저는 말을 아꼈다.


“그냥 조심해”


하 참.. 답답하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나도 대처하지..

그냥 조심하라고만 하면 되나..


“왜에 뭔데!”

내가 재차 물었지만

슈퍼바이저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손님에 대한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되기에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슈퍼바이저의 곤란한 표정을 읽었는지

자리에 같이 있던

쿠야가 대신 입을 뗐다.


“꿈뀨 너 입사하기 전에

어떤 여자애가 있었어.

남미 혼혈인데 이쁘장하고, 늘씬한 편이었지”


“근데 저 남자가

자기가 사업을 운영하는데 같이 일해보자면서

그 여자에게 풀타임 잡을 제안한 거야


그래서 걔가 스타벅스를 그만두고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갔어.


근데 결론은

그 여자애가 다시 스타벅스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는 거야.


왠지 알아?”


쿠야가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저 인간이..

처음에는 잘 대해주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조금씩 몸을 만지더래”



아..

역겹다..


“그래서 그 아인 어떻게 됐는데?”


“거기 그만두고

다시 스타벅스로 돌아오고 싶어 했는데

우리 매장은 TO가 없어서 못 받아줬어.


그리곤 연락이 끊겨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저 남자 만행을 아는 사람들은

다 싫어해.


조심해 꿈뀨!”


다음 주,

다시 근육질 남자가 매장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커피를 주문한 그였다.

역시 우유 조금에 스테비아 한 팩.


주문한 커피를 내어주니

그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비즈니스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세상에...

쿠야 말대로다..


“제가 여성 헬스를 위한

헬스 비즈니스를 운영하는데

풀타임잡으로 같이 일할래요?”


와.. 내가 속을 줄 알고?


“아뇨 괜찮아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왜요~ 한 번 생각해 봐요.

잘 맞을 것 같아서 제안하는 거예요.

인스타 아이디 있어요?”

이번엔 개인적인 연락처를 보는 이 남자.


“아니요. 없어요.”

인스타 있지만,

너 줄 인스타 아이디는 없다, 이 자식아.



“그럼 내 번호 줄 테니까 적어가요~”

이번엔 본인 연락처를 준댄다.



너…

내가 만만해?



“아뇨. 관심 없어요

(NO, I’M NOT INTERESTED)”

내 인내심이 고갈됐는지,

목소리가 저음으로 낮게 깔렸다.

굳은 표정 또한 숨기기 어려웠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okay” 

남자는 한마디 딱 짧게 말하더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빠른 걸음으로 매장을 빠져나갔다.


그래..

저게 너 본심이겠지.


여자애를 마음대로 굴리지 못해

화난 그 본심 말이야..


톰, 셀린 그리고 근육질 남자까지..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엔

공통점이 있었다.


‘약자를 보는 시선’



동양인 여자애.

커피집 알바로 돈 모으는 여자애.

웃음이 헤픈 여자애.


돈 많이 준다고 하면

웃는 얼굴로 따라올 것 같은

그런 순진한 여자애.


그들의 판단대로 해석한 나의 모습을

얕잡아 보는 그 알량한 시선을

나는 보았다.


기초수급자로 6년을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접한다.


어떤 사람은 매우 함부로 대하고,

어떤 사람은 속으로 무시하고,

간혹가다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도 만난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모든 태도는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싫었다.


하루라도 빨리 평범해지고 싶었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안돼. 안돼

절대 대물림 돼선 안된다.


평생을 국가의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힘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겨내야 해.

벗어나야 해.




그렇게 이른 나이에 바로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고, 돈을 모으고..


기초수급자를 벗어나고,

반지하, 옥탑방 살던 세월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매월 10만원대에 머물던 통장 잔액을

100만원, 1000만원대로 불리고..


우는 날이 더 많았던 세월들을 뒤로하며

드디어 평범하게 살게 된 나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데…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선을 다시 받으니

화가 나고 분하면서도,

속이 상했다.



너네가 뭔데

나를 함부로 판단해..


“내가 순진해 보이나 봐..”

직원 휴게 공간에 앉아있는

케이트에게 말했다.


“엉? 무슨 일이야 자기?”

케이트는 뜬금없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케이트에게 그간 있었던

추근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자기!!!!!!”

케이트가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휴 놀래라..


케이트가 씩씩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트가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TO BE CONTINUED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건 좋은 순간도 많았지만, 외롭고 나쁜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남편이 캐나다에 놀러왔을 때 함께 간 스타벅스 매장에 홀로 앉아

남편과의 시간을 회상하며 맘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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