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17]
※주의※
본 포스팅은 가정폭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7]
캐나다 워홀을 결심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시댁이었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해줬어도
시댁에선 남편 홀로 두고 워홀 1년 간다 하면
반대할 게 눈에 훤했다.
시댁 어르신들을 어떻게 설득하지..?
혹시 이 계기로 나를 싫어하시면 어쩌지..?
“또” 가족한테 미움 받고 살아야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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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내 부모는 격하게 싸우며
따로 살다, 같이 살다를 반복했다.
둘의 싸움에
때로는 이모집에,
때로는 외할머니집에,
때로는 할머니집에
맡겨지며 이곳저곳 얹혀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동생은 고작 3살 밖에 안됐을 때,
둘은 이혼하며
동생과 나의 양육권은 엄마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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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뀨야, 일로 와 봐.
너 아빠랑 연락하지..?”
나의 엄마는 기분이 나쁠 때면
나를 불러서 묻곤 했다.
3살 때부터 아빠와 따로 떨어진 동생과 달리
난 10살까지는 아빠와 살았기에
엄마는 항상 아빠가 생각날 때면
내가 엄마의 분풀이 대상이었다.
“누가 지 애비 딸 아니랄까봐..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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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미움 받는 건
내 인생에 디폴트였다.
부모는 자식을 동등히 사랑한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가 나는 미워하고 동생을 아낀다는 것은
어린 내 눈에 너무나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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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엄마의 폭력을 그대로 흡수하다가,
6학년 때부턴 저항하기 시작했다.
“꿈뀨, 너 이리와봐.
너 아빠랑 연락하지?”
“아니!! 아니라고!!!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하냐고!!”
“미친년, 짜증내는게 아빠랑 똑닮았네.”
“둘이 낳아 내가 나온건데,
둘이 반 반씩 닮았겠지!!”
“병신, 또 지랄하네.
살은 미련하게 뒤룩뒤룩 쪄가지고..
너네 언니 또 지랄한다, 가자.”
내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뜬금없이 분풀이 하다간
내 저항에는 욕을 퍼붓고
동생 손 잡고 가버리곤 했다.
나는 집에서 왕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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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암에 걸렸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동생이 중학교 1학년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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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입원해 있을 땐,
스트레스가 심했다.
나는 혼자 대학교도 다니며
엄마의 병간호도 했고,
엄마의 입원 병실에서 잤다.
엄마가 떠나면 내가 집안의 가장인데..
나는 아직 대학생인데..
아직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동생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밤엔 두려움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뭘 먹을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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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동생 병원에 못 오게 해”
비쩍 말라가는 내 몸과
내 속이 타들어가는건 안중에도 없고
동생만 걱정되는지
엄마는 동생은 병원에 오게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괴롭힐 땐 언제고
이제는 나보고 병수발 들라고 해?
그리 아끼고 감싸던 동생보고 해달라고 하지”
“걘 아직 어리잖아”
“나도 어려! 나라고 뭐 다 컸겟어?
왜 항상 똥은 나보고 치우라고 하는거야?
평상 시 그렇게 못 살게 굴더니!”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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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와서 엄마 몇 시간 좀 봐줘”
너무 힘들어서 집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했다.
“.. 난 병원 냄새가 싫어서....”
엄마가 그렇게 싸고돌던 동생은
병원 냄새가 싫다며
병원에 오길 거부했다.
철이 없는 걸까..
현실을 거부하고 싶을걸까..
둘 중 뭐가 됐든,
동생은 도움이 안됐다.
동생은 그렇게 엄마의 병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몇 개월만에 6kg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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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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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만 20세.
만 8세부터 지속되어 오던,
엄마의 학대가 종료되었다.
엄마는 떠나는 그 순간까지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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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과 받지 못했다.
앞으로도 사과 받지 못하겠지...
나는 아직도 그게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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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족이란?
발목 잡는 존재.
엄마는 나를 정신적으로 학대했고,
아빠는 다른 사람이며,
동생은 철딱서니 없는 그냥 애.
인연을 끊고 싶으나,
혈연이 뭐길래 끊어질 수 없는 그런
발목 잡는 골치 아픈 존재.
나는 사랑 받는 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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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시댁을 설득하라는건
두려움이었다.
미움 받을까 두려움.
‘아 괜히 결혼 일찍 했나..
혼자 살면 그냥 워홀 가버리고 말텐데..
가족을 만드는게 아니었어..’
이 남자와 결혼한 것은 후회 없지만,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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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대야..”
“부부는 같이 살아야지..”
예상했던대로
시댁은 반대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