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26]
※주의※
본 포스팅은 다소 격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6] 오로라를 보고 싶어 하던 당신에게
"엄마는 꼭 오로라를 보고 싶어.
예전에 캐나다 갔을 때
오로라를 보고 싶었는데
너무 춥다고 해서
강행할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돌아왔지.
언젠가는 오로라를 꼭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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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엄마는
오로라를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가족이란 명목하에
20년을 함께 살아온 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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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시 만난다면
뺨 때리고,
등짝 갈기고,
온 힘 다해 밀치고,
멱살 쥐어 잡고 흔들며,
그저 태어남을 당해야 했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살아있는 동안 나를 그렇게 괴롭혔냐고..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당신 의지에 의해
이 세상에 불려진 것뿐인데
그런 내가 뭐 그렇게 미웠냐고..
목통 찢어져라 울부짖으며
한껏 때리고 싶은 당신에게,
그래도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원망스러운 당신의
자식인 내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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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게 몇 달 만인지!
캐나다에서 만난
내 남편의 모습은
익숙하고 또 그리웠다.
남편에게 와락 안겼다.
익숙한 이 포근함.
포근함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살내음.
마치 ‘집’에 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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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맛있지 않아?!”
한국에는 없는
치폴레, 팀호튼.
한국에선 먹기 힘든
피시앤칩스, 페르시안, 멕시칸.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같이 공유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술도
남편과 마시니
정말 맛있었다.
“너어어무 좋네!
내 남자랑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자기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남편이 걱정했지만
신날 대로 신난 나는
30분도 안 돼서
와인 반 병을 혼자 마셔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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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였다.
“머리가 너무 아파..”
처음이었다.
이런 숙취는.
“이거.. 비행기 탈 수 있을까?”
새벽 6시까지
옐로나이프행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움직이는 게 곤혹이었다.
“심장이 머리에서 뛰어…”
“물 마셔, 물”
남편이 갖다 준 물을 마시는데
물을 넘기는 대로
두통이 몰려왔다.
“와.. 미친
진짜 개아프다..
일단.. 씻을게..”
인생 처음으로 취해 본 경험은
끔찍했다.
만 27세가 돼서야
경험해 보는 숙취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너무 빨리 마셔서 그래..
그것도 와인을..
와인 도수가 14도인데..”
남편이
숙취에 골골대며
공항 갈 준비를 하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샤워기를 틀고
깨지는 두통에 주저앉고
다시 섰다가
다시 주저앉길 반복했다.
“자기랑 있다 보니
내가 너무 편하고, 신나서
빨리 마셨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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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타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사랑받고, 사랑 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내 ‘집’은 아니었다.
내가 몸 뉘일 곳은
고작 5걸음 밖에 안되는
조그마한 방 한 칸이었고,
화장실과, 부엌은
타인과 함께 써야 했으며,
새벽에는 타인의 대화소리에
잠을 설치는 게
흔한 일었다.
온전한 ‘내 공간’이 없이
몇 달을 사는 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일었다.
–
–
‘위이이잉’
헤어 드라이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내 머리도 같이 도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숙취가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어..”
물을 아무리 마셔도
두통은 나아지질 않았다.
입안에
시큼한 위액이 고이기 시작했다.
배가 꿀렁였다.
화장실..
화장실…!!
변기 앞으로 달려가
꿇어앉았다.
“우웩….!
우웩!!!!!!”
변기 안이 붉게 물들었다.
목 안과 콧속이 시큼해졌다.
속 안의 모든 것을
다 끄집어 내고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오..?”
살 것 같았다.
어젯밤 마셨던 와인을
다 게워내니
두통이 사라졌다.
물은 해답이 아니었다.
그냥 안에 있는 걸
끄집어 내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어휴.. 괜찮아???”
“응! 토하니까 좀 살 것 같네”
속을 다 게워내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껏 가벼운 머리로
옷을 갖춰 입었다.
“가자!!!
오로라 보러 가야지!!”
–
–
“Welcome to Yellowknife!”
도착한 옐로 나이프는
눈만 가득 쌓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뭐여..
완전 허허벌판이잖여..”
딱히 맛집도 없었고,
캐나다 국민 카페 팀호튼조차
빌딩 안에 한 칸 밖에 안됐다.
“할 게 없네..
낮 동안 할 게 없어..”
눈만 휘날리는 도시 속에서
우린 그저 밤이 되길 기다렸다.
–
–
“오늘 구름이 많아서
오로라가 나올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희망을 걸어봐야죠.”
밤 11시,
오로라 투어 가이드가
오로라를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버스는 도시 외곽을 빠져나와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향해갔다.
–
–
“일단 여기서 오로라를 찾아보죠!”
가이드가 버스를 세웠다.
어두운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길.
오직 버스 헤드라이트만이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기사님! 헤드라이트 좀 꺼주세요!”
버스 헤드라이트가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은근한 빛을 향해
고개를 올려다봤다.
별.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빛만이
잔잔히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여보!!
저게 다 별이야”
내 집 안방 마냥
눈 위에 누워
수많은 별들을 바라봤다.
“오로라예요!”
가이드가 소리쳤다.
흰색 빛줄기.
가이드는 저게 오로라라고 했다.
“운이 좋으면
오로라가 춤추는 걸 볼 수 있는데,
오늘은 무리인 것 같네요.”
첫날밤의
오로라는 기대 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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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보기 힘들 수 있어요..”
둘째 날 밤,
다시 오로라를 찾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말했다.
“최근 들어 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따뜻해져서
구름이 많이 끼거든요..
올해도 옐로나이프가
역대급으로 따뜻해요”
옐로나이프의 날씨는
낮에만 영하 13도였고,
저녁에는 영하 20도로 떨어졌다.
가이드는 이 기온은
옐로나이프치고 따뜻한 거라고 했다.
“그래도 한 번 잘 찾아보죠”
–
–
둘째 날 밤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많았다.
오로라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 봤지만,
하늘은 그냥 검은 도화지였다.
옐로나이프의 두 번째 밤은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그냥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내일도 못 보면
몇 백 투자해서 온 여행이
좀 씁쓸하게 끝나겠네..”
–
–
마지막 날 밤.
“그래도 오늘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로라 투어 가이드가
희망 깃든 말투로 말했다.
봤으면 좋겠다.
돈은 둘째치고
시간 투자해서
이 멀리까지 온 건데..
한 번은
꼭 제대로 보고 가고 싶다.
오로라 투어 버스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향했다.
–
–
가로등 하나 없는 곳.
오직 별빛만이
하늘을 밝히고 있는 이곳.
조용히 하늘의
검은 도화지를 바라봤다.
그때,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한 줄기의 빛.
오로라인가..?
희미한 선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찰나의 순간
온 하늘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여보!!!”
일렁 일렁 거리는
맑은 에메랄드빛의 커튼..
오로라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살랑거렸다.
마지막 날 밤에
가장 큰 오로라를 넋 놓고 바라봤다.
이 초록색 빛이 뭐라고..
당신은 이 빛을
그토록 보고 싶어했을까..
–
–
“빨리 오세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가이드가 소리쳤다.
“꿈뀨! 빨리 찍자!”
오로라 아래서
남편을 꼬옥 껴안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남편의 두 팔이
나를 감싸안았다.
“다행이야, 여보
마지막 날에
이렇게 큰 오로라를 볼 수 있어서..”
사진 속 우리는
초록색 빛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오로라는 마음 속 상처였다가,
아물어진 흉터로 남았다.
곁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보고 싶어 했던 오로라.
보여주고 싶었으나,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던 오로라..
그 오로라 아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 있던 그 순간.
맘 한편 속 자리 잡고 있던 상처를
드디어 보듬는 것 같았다.
‘무너지지 않고 잘 달려왔구나..’
–
–
“엄마는 오로라 보러 갔을 거야.”
유골함을 보던 동생이 자신을 위로하듯 말했다.
재가 된 엄마를
유골함에 옮겨 담는 모습을 보며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래.. 그랬을 거야..”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거대한 생명체는
재 밖에 남지 않았다.
나를 밉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 두 눈,
나에게 쌍욕을 날리던 그 입.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쁜 년.
고작 53이었다.
다른 인간들은 70, 80까지 사는데
지는 반도 못 살다 가네.
못된 년.
그렇게 괴롭혔으면
사과라도 한 번 하고 가지…
기왕 사는 거
오로라라도 한 번 보고 가지..
사과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이 집구석에서 태어났다는 분함...
20년 넘게 함께 살았던 사람이 없어졌단 공허함…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화났다가,
슬펐다가,
미웠다가,
억울해하며
내 마음을 할퀴고, 갈퀴고, 찢어 놓다가
거대한 흉을 남기며 아물었다.
더이상 마음 아플 일은 없지만,
이 흉터는 고이 고이 남아
그 시절의 아픔을 평생 되뇌이겠지..
–
–
오로라를 보고 싶어 하던 당신이
지금도 나는 밉고,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번 당신을 떠올리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나의 ‘엄마’가 그리워서겠지..
‘우리 엄마’가 그리워서겠지..
다시는 불러볼 리 없는 그 두 글자가..
‘엄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