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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가 있을 곳.

유부녀의 캐나다 스타벅스 워홀 [27]

by 꿈뀨

[27] 한국, 내가 있을 곳.


‘아.. 또 났네..’


서랍장을 뒤적거려

연고를 꺼냈다.



불투명한 연고를

입술 위에 살살 펴 바르며

크기를 살펴봤다.


‘이번 거는 다행히

그렇게 크진 않구만..’



헤르페스라고 불리는

입술 물집은

크리스마스부터

한 달 간격으로 계속 나는 것 같다.



‘도대체 몇 번째야.. 이게..’


석 달안에

입술에 물집이 난 것만

4번이었다.



물집이 가라앉으면

다시 올라오고,

사라지면

다시 나고,

잊을만하면

또 생기고..



집에 가야 할 때가 온 거야..


캐나다 워홀 10개월.

귀국을 단 2개월 앞둔 상황이었다.


캐나다에서 홀로 정착한 삶은

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연을 맺고

그들과 관계를 쌓아가며

신뢰를 얻고,

사랑을 받으며


나 또한

언어와 문화가 다른 그들에게

사랑을 주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매일이 감사했고,

내일이 오는 게 기대되면서도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서

매일 밖으로 나갔다.


하루라도 헛되이 보내는 날 없게.


내가 있는 이 순간,

오롯이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방에만 있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기를


침대에서 쉬는 것보단

해 뜨면 일어나서

밖을 걸어 다니는 것을 택했다.



“쿨럭쿨럭,

에헴!! 크음!! 큼!!”


어으…

목이 칼칼한 게 없어지지 않는다.



한 2주 동안

가래로 고생하고 있다.


미역국을 해 먹어도,

밥에 김치를 잘 챙겨 먹어도

몸이 나아지질 않는다.


집.

온전히 내가 쉴 수 있는 곳.

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다시 오르는 몸살 기운에

타이레놀을 한 알을 먹고

잠을 청했다.



옆 방 룸메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났다.

새벽 2시였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을까..


바로 옆 방에 있는 룸메들이라

더더욱 잘 들렸다.



‘어휴…’


서랍장에서 이어플러그를 꺼냈다.


이어플러그를 꽂고

겨우겨우 잠에 들었다.


타는 기름 냄새..


방 안으로 스며드는 기름냄새에

잠에서 깼다.


냄새를 말자하니

계란후라이가 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봤다.


아침 7시.


그래.. 일어날 때다.


몸이 피곤함으로 가득 찼다.

고작 5시간 밖에 자질 못했다.



타이레놀을 하나 더 투여한 후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이 잠겨있다.

아마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10분 뒤,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수건과 샤워가운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콜록콜록”


타이레놀 먹고

몸살 기운은 나아졌지만

기침은 떨어지지 않았다.



창 밖을 바라봤다.


유난히 햇빛이 맑았다.



캐나다 토론토의 겨울은

맑은 날씨보다

우중충한 날이 더 많았다.



‘몸은 아파도 나가야지..’


이렇게 햇빛 있는 날은

반드시 나가야 했다.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기억에 담아두는 것.


캐나다에서 남은 2달을

후회 없이 보내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간만에 햇살을 온전히 느꼈다.


캐나다의 맑은 공기가

내 몸속을 가득 채웠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햇빛.

한국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


그리울 거다..

이 공기만으로도

아주 그리울 것 같아…


기침이 언제 있었냐는 듯

맑은 캐나다 공기에 씻겨 나갔다.


“꿈뀨!

여기서 영주권 딸 생각 없어?”


“아니, 전혀 없어”


캐나다의 삶이 그리울 테지만,

캐나다 영주권은 단 한 번도

내 계획에 없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곳이었다.


기초수급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보냈던 곳..


엄마의 폭력을 온전히 받으며

우는 시간이 많았던 곳…


어려운 경제상황에

학원조차 못 다니며

찜질방에서 수능공부를 했던 곳…


그 시절을 다 이겨내고

온전히 내 집을 꾸려냈던 곳..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뤘던 곳..



캐나다에서 홀로서기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서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강해지는 곳,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곳은

결국 한국이었다.


“얘들아,

나 이제 2달밖에 안 남았어.”


“무슨 소리야, 꿈뀨?”


충격받은 듯

친구들이 나를 휙 뒤돌아봤다.



“나 2달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




“뭐?? 잘 지내는 거 아니었어?

왜 돌아가려고 해?

그냥 여기에 정착하고 싶지 않아?

너 여기서 꽤 잘 어울리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나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들.




아니.

그래도 나는 돌아갈 거야.


대한민국.

나의 집으로.


한국이 내가 있을 곳이야.


TO BE CONTINUED


IMG_4135.heic 아플 땐 밥은 한식으로 잘 챙겨먹었어도 몸이 쉽게 낫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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