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캐나다 스타벅스 워홀 [29]
[29] 올해 스타벅스 챔피언은 바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꿈뀨고,
오늘 제가 소개할 원두는
‘쿠모도 드래곤’입니다!”
오늘 ‘쿠모도 드래곤’을
갖고 온 이유는
제게 특별한 원두이기 때문이에요!”
스타벅스 챔피언을 향한
나의 도전이 시작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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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 매장 토요일 오전만 되면
검은 머리에
은색 빛 머리카락이 살짝씩 숨어있는
동양인 단골 고객이 온다.
이름은 이노키.
일본인 이민자이다.
“안녕하세요, 이노키.
저야 잘 지냈죠! 감사해요.
잘 지내셨나요?”
“저도 잘 지냈어요.
늘 그렇듯
쿠모도 드래곤 푸어오버로 부탁드려요.”
이노키는
항상 특정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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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키, 죄송해요.
오늘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핸드드립 커피가 너무 늦게 나갔죠?”
그날은 매장이 너무 바빠서
이노키의 주문을 누락시켰다.
쿠모도 드래곤 원두를
핸드드립 주문한 이노키의 주문을
그만 깜빡 잊고,
핸드드립을 내리지 않았다.
“오늘같이 주문 누락하는 날은
더 이상 없을 거예요.
앞으로 더 꼼꼼히 챙겨 드릴게요.”
근무를 끝내고,
매장 내 앉아 있는 이노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했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매장이 바빴던 거, 저도 알고 있어요.
혹시 대학생인가요?
스타벅스에서 알바 하는 중?”
이노키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뇨,
저는 한국에서 직장 다니다가,
좀 더 도전을 즐기며 살고 싶어서
몇 달 전에 퇴사하고
홀로 캐나다로 왔어요.”
“퇴사하고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한 결정이네요..”
이노키가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나도 젊었을 때,
조금 더 도전해 봤으면 좋았을 것을..
젊은 이 시기에
도전하고 있는 꿈뀨가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이노키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괜히 머쓱해졌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꿈뀨.
캐나다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누리고 갔으면 좋겠네요.”
이노키의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
–
“쿠모도 드래곤 원두는
저희 매장 단골고객이 매주 와서
핸드드립으로 즐기는 원두예요.”
목소리가 덜덜덜 떨렸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쿠모도 드래곤 원두 봉투를 들어 올렸다.
손도 차게 식고,
부들부들 떨렸다.
“한 번은 제가
이 단골고객의 주문을 누락하는 바람에
제가 근무 끝나고 직접 사과드리러
테이블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이 고객분과 대화를 나누며
많이 친해졌죠.
그래서 이 원두는 제게 참 특별해요.
오늘은 이 원두를
그 단골고객이 좋아하던 방식인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려 볼게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드립 주전자를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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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망했어’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하랴,
그 와중에 드립커피 내리랴,
이 모든 과정을 또 영어로 하랴
정신이 없었다.
초콜릿처럼 부드럽고 균일하게
우러나야 하는 커피가
시멘트마냥 우툴우툴하게 우러났다.
마음도 급하고,
정신도 없어서
너무 급하게 커피를 내린 것 같다.
심사위원들도 내가 내린
커피 원두의 모습을 보더니
갸우뚱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하하! 그럼 내린 커피의 맛을 볼까요?”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드립 내린 커피를
심사위원들에게 건넸다.
–
–
촉박했던 10분이 끝났다.
드립을 내렸던
커피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준비했던 내용들은
모두 10분에 담아냈다.
말을 좀 더듬거리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한국어로도
프레젠테이션 10분을
대본 없이 한다면
당연히 더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후회는 없어!
너무너무 재밌었어!!!’
–
–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냉철한 점수평가에 따라
1,2,3등을 발표하겠습니다!”
토너먼트가 끝나고
지역구 매니저가 앞에 나와
결과지를 흔들어 보였다.
“우리 지역구 챔피언 1위는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하게 됩니다!!
만약 1위 우승자가 못 나간다면?
2위 우승자가 나가면 되고,
2위가 안된다면 3위 우승자가 나가게 돼요!
다들 누가 3,2,1위를 차지할지
궁금하시죠?!”
현장에 있는 모두가 환호했다.
“자!! 3등부터 발표할게요!!”
지역 매니저가
3등 우승자 이름이 적힌 봉투를 꺼내 들었다.
“3등 우승자는 바로!!”
지역 매니저가
봉투를 열어젖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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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뀨!!!
내가 너 상 하나 딸 줄 알았어!!!!”
크리스가
환호를 질렀다.
와…..
이게 되네…
이게 되네!!!!
내 영어가 통하다니…!!
지역구 챔피언십 3등이라는 것보다
10분 동안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영어로 전달할 수 있었고,
그걸 심사위원들이 알아 들었다는 것.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상을 탈 정도로
영어로 완벽히 전달됐다는 것.
그게 그렇게 의미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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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라떼 레시피 못 외워서
자괴감 빠졌던 게 엊그제 같던 내가
이젠 매장 대표로도 서 보고,
서툰 영어로
손님 주문 못 알아들어서 쩔쩔매던 내가
영어가 모국어인 이 사람들 앞에서
10분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스타벅스 지역구 3등도 해보다니..
의미 있다.
가치 있다.
‘나… 정말 잘 살았네”
–
–
워홀 종료까지
3주 남은 시점이었다.
한정된 시간.
학생, 월급쟁이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의 귀중함”
‘돌아가기 전에 이건 한 번 해봐야지.
있을 때 잘해야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감사해야지’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기회를
더 잘 보내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낼지를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은 언제 종료될까?
20대? 50대? 100세까지 가려나?
예정된 종료일까?
예기치 못한 종료일까?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내 눈빛은 어떨까?
빛날까? 탁할까?
내 마음은 어떨까?
가뿐할까? 한스러울까?
분명한 건,
언젠가 찾아오는 그 종료선 앞에서
적어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단 것.
사랑하는 것, 감사하는 것엔
아낌없이 표현하고,
선택하지 않은 길을 후회하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은 주저 없이 도전하는 것.
그렇게 시간의 귀중함을 마음껏 느끼다
‘이왕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다 간다’
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나는 잘 살아갔다.
내일도 잘 살아야지.
그렇게 나는
오늘을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