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의 술자리

by 이음

그가 내게 술을 꼭 함께 마시고 싶다고 했고 나라도 좋다면,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며 벌어진 술자리였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편할 것도 없었다. 허나 그가 이런 이야기를 내게 갑자기 펴놓는 것은 좀 의아했다. 지난했던 한 시절의 이야기였다.


새카맣게 타들어간 속을 어찌해야 하나 혼자 긍긍거렸다고 했다. 주위에선 위로랍시고 ' 괜찮다고' 연신 그랬을 테지만, 감당하는 일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므로 소용이 없더랬다. 그렇게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눈에 걸친 게 겨우 술이었다. 뭘 해야겠는데, 그게 또 뭘 해야겠는지 도저히 감은 안 잡혀서 가득 한 번 부어보자고. 이상하게 붓고 부으면 어떻게든 답이 나왔던 거 같다고. 무슨 큰 결심을 먹은 때는 늘 술에 거하게 취해서 정신을 못 가눈 후였다고 했다.


말을 쭉 이어가나 싶던 그는, 마음 어딘가 딸깍하고 맞물려 걸리기라도 한 듯, 뭔갈 열심히 기억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닥이 좀 잡혔는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술잔은 이미 마시고 비워져 있었다. 잔을 채우지도 않고선, 이것 좀 들어보라며 분위기를 먼저 거들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면. 답을 받아보겠다고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술독에 빠져 지내던 날. 이젠 슬슬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술이 답을 내주기는커녕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지금 대체 이게 무언가, 왜 이 모양인가 싶어 지면, 또 그 날이 떠올라 괜히 술만 더 부어 속을 뒤틀었다고 했다. 술은 자기가 어렴풋이나마 어떤 답을 상정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못 되는 것이었다고. 다시 말해, 술은 어떠한 결심을 선명하게 떠주는 조력일 뿐, 갈피를 못 잡는 마음에선 걸려 들어올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술이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매달렸는데, 막상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알자, 그게 또 어떤 식으로 답을 내주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밖엔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죽기로 결심했다. 차라리 깨져 부서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의 선택이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난폭한 애착이었다. 그는, 그가 죽기로 마음먹은 날 아침에 관한 기억을 들추려는 듯하다 곧 그만두었다.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던 일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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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지 않기로 한, 그 단 하루는 대체 어땠을까. 어쩌면, 더 이상 거둘일이 없는 생이어서 차라리 손을 놓겠다는 거였으니, 그 그 하루는 다른 어떤 날들보다 어지간히 건조하고 텁텁하진 않았을까. 그럼 그건 보통 같은 일상보다 더 보통 같은 일상이었단 말일까. 마음이 아프기는 했을까. 가끔씩 뒤로 고개를 가져가 누군갈 그리워하듯 어떤 이름이 혀에맴돌다 끝내 고이기도 했을까. 아니, 그냥 그런 건 다 소용이 없어서 가던 길 돌아보지 않겠노라고 복사뼈를 바닥에 심을 듯 꾹꾹 걸음마다 힘을 주어 걸었을까.


서로 술을 잔에 가득 따랐다. 그의 말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러니까, 그는 물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고, 마침 숲길을 좀 건너다보면 규모가 꽤 되는 저수지 하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한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물에 빠져 죽어야만 할 것 같았어요.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가장 번거로운 선택을 한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하네요."


실행에 옮기기로 한 날, 그는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고 했다.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 어느 쪽으로든 강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아침이었다고 말했다. 저수지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가지런히 포개 놓았다. 아니, 그는 다시 펼쳐 입었다. 움푹하게 무언갈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면, 무게가 나가는 돌이란 돌은 죄다 담아 저수지에 뛰어들 예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바지 속까지 돌을 채워 넣은 것은 물론, 큰 바위만 한 돌 하나를 가슴 팍치 들어 올려 무게를 더하기까지 했다. 물가 쪽으로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하면서, 허리춤만큼 물이 차오르자 괜한 요의를 느꼈다. 그건 마렵다기 보단 몸 안쪽과 바깥 사이 더 이상 무엇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비슷한 성질 간의 인력에 가까웠다고 했다. 꾹 참았다. 물은 점점 그를 삼켰고 그가 들어 올린 무거운 돌의 높이까지 먹어치웠다. 이제, 머리 부근만 잠겨준다면 모든 것은 끝이었다.


턱 밑 부분까지 수면이 닿았다. 고개만 둥둥 뛰워졌다. 딱 그 지점에서, 그의 몸이 갑작스러운 반응을 보이더란 것이었다. 포착되지 않는, 너무 추상적인 무서움이었다고. 그것을 단순히 죽음이라 말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이미 깊게 잠겨있어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를 더욱 깊게 잠기게 만드는 느낌. 몸 안쪽으로 무언가 마구 밀려들어와 한꺼번에 팽창할 듯 한 기분. 그는, 그것을 두 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흠뻑 젖은 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저수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져 울었다.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잘 몰랐다. 아무튼 어떤 감정이 그에게 도착했고 그것을 게워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것은 알았다. 울음은 거의 모든 감정에 관여하는 일이므로, 딱히 슬픔 때문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 날 돌아와, 그는 자신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게 하는 모든 수단들을 치워버렸다. 누구 와든 관계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죽지도 못 할 것이라면, 차라리 생의 바깥을 떠돌기로 한 것이다. 자살 이전보다 더 못한 상태가 돼버린, 그는 자신 스스로와 체스를 두는 일이 많았으며,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을거리를 입에 가져갔다고 했다. 그로 인해 몸의 골격이 서서히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눈의 색도 흰 서리가 낀 것처럼 뿌옇게 바랬다. 그렇게 얼마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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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을 만큼만 살기 위해선, 그만큼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는 몇 가지 과일들과, 우려먹을 티백을 사러 나갔다고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이른 새벽이었다. 그는 다리를 건너면서 한 여자를 보았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기로 결심한 여자였다. 다리의 난간을 딛고 서서, 다른 무엇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여자는 거세게 흔들렸다. 아무런 의지도 없이, 마치 쓸려가는 게 제 생인 줄 착각하며 곤두박질치는 촛불처럼, 그렇게 거의 벼랑에 매달린 듯 서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 여자가 죽기로 결심했다는 걸 단번에 알았다. 여자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에 가까스로 걸쳐있는 사람의 어떤 위태로운 활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짐을 바닥에 던져놓고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아 뒤쪽으로 쓰러졌다. 죽고 자하는 심정을 지금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막상 눈에 닥치고 보니 일단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몸을 부추기더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거의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대신 작은 수첩 하나가 쓰러진 자리에 놓여있었다. 그 여자는 지금 자기가 대체 뭘 했는지도 모를 테니, 실수로 흘리고 간 게 분명했다.


그는 그것을 간직하기로 마음먹었고, 내게 꺼내 보여 주었다. 거의 다 뜯어진 실밥, 아주 오래된 듯 한 매캐한 냄새, 누렇게 변색된 내부의 종잇장, 일그러진 접면이 빼곡한 삭은 가죽. 광장했다. 그래서 마음이 근질거렸다. 얼른 눈으로 문질러 읽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엔 더없이 좋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술 몇 병을 더 주문해올 테니, 그것을 읽어도 좋다고 했다. 그게 자신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까지 유일하게 간직했던 것이 이 수첩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살에 관해선 단 한 차례도 수첩에 쓰여있지 않았다. 때마침, 오래된 포장마차에선 라디오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화에 관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하필 영화 속, 영화 밖 자살의 이야기였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바로 그 이야기였다. 자살에 관한.


그 내용은 이러했다.


"흔히 자살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 인물이 어떤 식으로 죽을 건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인물이 갖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고층에서 맨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강물 위로 뛰어내리는 것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고 해요. 땅으로의 투신은 "더 이상 할 말 없다. 똑바로 봐라."이고, 강으로의 투신은 "우리는 가요. 찾지 말아요"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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