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고 파랗고 노란 사람.

by 이음

토너 공장이라고 했다. 종잇장에 무엇을 인쇄할 때, 내부의 열에 의해 녹아내리며 흔적을 남기는 염료 가루. 내가 좀처럼 모르겠는 표정을 짓자, 알선해줬 던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 토너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일의 강도는 그리 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뜸을 들이듯 오래 늘여 말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내게 몇 가지 주의 아닌 주의사항들을 일러주었다.


"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잖아. 아르바이트 좀 하겠다고 오는 애들을 싫어해, 그래서 심하게 부려먹어. 특히 뭐 좀 배우러 다닌다 하는 애들은 더 싫어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가 내게 말한 것은 이랬다. 공장 쪽 과장님에겐 몇 달간 만 일하겠다고 미리 사정해두었으니, 넌 그냥 아무 소리 않고 일만 해라. '자퇴를 하고 악착같이 돈 좀 벌어보려고 한다, 나도 당신들 만큼은 거칠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들이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그런 사람들'이란 말을 놀랍도록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언제부터 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고작 두 단어를 가지고 한 삶을 묶어 매듭짓고 다녔던 걸까. 소화시키기 좋을 만큼 이토록 단단하게 압축해 놓은 말이란, 또 얼마나 부실한 걸까. 그러다, 나도 누군가의 한 부류 속에 딱딱하게 굳은 채로 갇혀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은 이런 사람,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고 표를 받아 든 승객처럼 배정되어버리면, 진짜 이해 가능한 삶은 무엇일까. 나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인 삶은 그 얼마나 외로울까.



다음날, 그 공장으로 출근했다. 산업단지에서도 가장 끝, 제일 부실하고 허름한 외관이었다. 페인트가 거의 벗겨져나가 오돌토돌한 벽면이 다 드러날 정도였는데, 거기서 색을 입히는 무엇을 만든다는 게 좀 신기했다. 건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 모순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과장은 팔로 내 어깨를 감싸듯 걸친 채, 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오늘부터 일하게 될 새로운 식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며, 과장은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가득 밀어 넣었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꾸벅 내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허나 그들은 많이 야위어 날 선 눈빛으로 날카롭게 고개를 흘겨보거나, 몇몇은 알은체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과장은 별다른 말 없이, 나를 그대로 두고 돌아갔다. 한동안 전지가 빠진 로봇처럼 멍청하게 그들의 행동을 느긋이 바라보아야 했다. 말을 걸어오기는커녕, 아무런 지시도 없었다. 그들과 나는, 단단히 층이져 도무지 섞여들 수 없을 정도의 다른 성질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들은 그런 어긋남을 꽤 즐기는 사람들이란 생각에 불편해졌다. 게다가 그들이 내게 처음 보인 행동은, 밥시간이 다 되어서야 내게 빗자루 하나를 쥐어 주고 간 일이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빨갛다가, 파랗기도 노랗게 바뀌기도 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몸에 그런 색을 입고 다녔다. 나는 그 이유를 그들과 몸을 부대끼는 일이 막 익숙해질 때 쯔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규모의 공장에선 갖가지 색의 염료를 생산할 설비가 부족했던 것. 어느 날은 붉은 토너를 만들다가, 공장의 기계들을 분해하여 세척하고 푸른 토너를 만들기도, 그런 방식으로 똑같이 노란색의 토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규모로 벌어지는 분해와 조립과정에서 꼼짝없이 갖가지 색을 몸에 들이부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날 것의, 야생적이어 보이는 사람들이 씨발 씨발 거리면서, 하나같이 무언가에 범벅이 된 모습은 정말 우스웠다. 얼굴이 웃지 않아도 몸만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기분이 들어 썩 좋았다. 그런 날은 유독 농담이나 장난 같은 것을 쳐가며 놀려대는 일에 열심히였고, 그러면 어디서 이런 애를 들여다 놨냐며 귀찮다는 듯이 나를 멀리하면서도 곧 잘 같이 웃어줬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이렇게 설비가 부족해서 매번 분해하고 씻고 조립하고 하는 게 귀찮지 않아요? 그냥 색깔별로 기계 한 두 대씩 넉넉히 있으면 좋을 텐데.. 그죠?"


정말 그랬다. 해야 할 일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이었다. 세척하며 들이붓는 약품들의 냄새가 너무 독해서 하루 종일 얼얼한 두통을 앓아야 할 정도였다.


"야, 기계설비가 좋아지고, 그래서 관리도 쉬워지면 어떻게 되겠냐. 아마 여기 직원 중 몇몇은 일거리가 없어질걸. 너도 그렇고."


그 말이 꼭, 어서 도시로 함께 가자고 사정하는 자식에게 난 괜찮다며, 팔순의 노모가 으름장을 놓는 모습 같기도 하다. 왜 하필, 그 모습이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괜찮아지고 나아지리라는 말은 그들에겐 틀림없이 불편했을 것이다. 누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일방적임, 그 난폭함.



그들이 누구와 섞이길 죽도록 싫어하고, 입안에 안개가 서려있을 것만 같이 말 수가 적어진 이유는 어쩌면, 밥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식단은 항상 간이 센 음식들만으로 차려졌다. 음식들의 일반적인 염도가 꽤 높았다. 밥을 식판 가득히 쌓아두고 먹는 일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나는 물었다. 언제나 궁금하고, 왜 그래야만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참지 못하고 매번 물었다. 그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해도, 어쨌든 묻기만 하면 무언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항상 제자리였다. 아주머니는 내게 말했다. "간이 세야 오래 먹지. 안 그럼 얼마 못가 쉬어. 오래 먹으려면 간이 세야 해." 혀에 어떤 맛이 묻는지, 혹은 짠 음식이 혀를 물어뜯고 지나가기라도 하듯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 그들의 배를 지속적으로 채울 수 있는가. 그것이 그들에겐 거의 한 삶의 방식에 가까워 보여, 내 마음의 올이 대책 없이 풀어졌다. 나는 다음 날, 식당에 작은 박하사탕 한 통을 사다 놓았다.


아마, 그날도 그렇게 짠 음식들을 무더기로 먹고 나왔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빨간 토너가 가득 칠해진 기계의 내부를 이제 막 분해하느라, 몸이 시뻘게져서, 씩씩거리던 날, 무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게 나아질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누군진 모르겠지만 모든 게 어긋나고 잘못되기만 하라고 간절히 바래서 만들어진 것만 같은 날. 한 사람이 기계를 열심히 분해한다. 그를 돕던 또 한 사람이 무어라 무어라 트집을 잡아댄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어가고, 나는 그 옆에서 더 골리려 잔뜩 장난기를 품고 달려들었을 텐데, 그 날은 좀 다르다. 한 사람이 말을 받아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고는, 꽉 움켜쥔다. 말이 잘못되었다는 건 발화된 순간이 아니라 그 말이 어떤 반응을 이끌어 올 때 알게 된다. 문제점은 항상 시작점이 아니라 종착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때는 너무 늦은 것이다. 그가 "뭐?"라고 말하면서 그 모든 게 시작됐다.


그들은 거칠게 욕지거리를 주고받았다. 몇 번씩 주먹이 오가기도 했지만, 나는 그 둘을 말릴 재간이 안됐다. "저기요, 저기요"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최선이었다. 한참을 엉키고 설키다 가까스로 떨어진 시뻘건 몸뚱이엔, 그보다 더 붉게 잔흔들이 벌어졌다. 씨뻘개진 몸뚱이는 그들의 말보다 더 붉고 짙게 악을 쓰듯 보였다. 서로의 말이 게세게 부딪치고, 그래서 깎이고 깎이고, 다듬어져서 날카로워지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긁고 박히길 오래, 둘 중 하나가 마스크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나가면서 상황은 끝이 났다. 그는 "더럽다"하며 거칠게 침을 뱉고 나갔다. 그리고 조장이 말했다.


"아마, 저 사람은 이제 이곳엔 안 올 거여. 내가 저 사람하고 일을 한 지가 십 년이 다되었는데, 자존심이 엄청 세서 분명 돌아오진 않을 거여. 그러게들 잘 좀 지내라고 왜 그래 갑자기, 뭐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조장은 분명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만약, 그 사람이 온다면 다투던 그 사람을 때려죽일 정도로 독한 사람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쯤 하고 더 이상 이번 일에 관여하지 말자고 했다. 다음 날, 나는 일찍부터 도착해 빗자루를 집어다가 구석구석을 거듭 쓸면서, 어떤 분위기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조장이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했던 그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올 것 같던 사람이 오지 않은 경우는 많았지만, 오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거짓말처럼 그는 돌아와 내게 말을 붙였다.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그는 심하게 부끄러움을 타는 듯했고, 여러 직원들이 도착하고 난 후에도 이야기는 그의 입에서 물러날 줄을 몰랐다. 나는 그가, 낭비하듯 쏟아놓은 말들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지금 갖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진통제로 쓰는 법을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그와 함께였다.



기한이 많지 않았다. 나는 딱 세 달간 일하기로 사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마지막 근무 날 팀장은 그들에게 내게 볼 일이 있으니, 좀 데려가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당연히 그들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 둘, 기계설비의 부품을 뜯고 안쪽 면에 묻은 토너를 세척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노란 토너였던 것 같다. 개 밥그릇 같은 접시에 투명한 약품들을 풀어 적시며 이곳저곳을 긁어 문지를 것이다. 문지를 때마다 날카롭고 독한 냄새가 잔뜩 덤벼들어도, 미간을 몇 번 좁히거나 푸는 것밖엔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당신들 몰래 짐을 싸고 있었다. 몇 벌의 옷가지들과 물품들을 챙기며, 눈 앞에서 영영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무가 마칠 무렵 하나둘씩, 그러다 점점 무더기로 연락이 쏟아졌다. 내 모든 짐들이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어디를 갔느냐고 물었다. 쌓이고 쌓이는 문자와 연락들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걸음이 잠시 무거워졌지만 괜찮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것 같았다'는 문자를 보아도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 발을 멈추거나, 고개를 가져가지도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아무 마음도 두고 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끔 현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을 쳐야 할 때가 있다.


다만, 나는 부디 그들이 더 이상 간이 센, 짠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그래서 죽을 만큼 덥거나 몸이 시뻘게지도록 물이 들어도, "더럽다"하며 거칠게 침을 뱉고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아니, 빨갛고, 파랗고, 노란 토너에 번갈아 물들지 않아도 될 만큼 시설이 충분했으면 좋겠고, 그러나 그 누구도 흔적을 지우며 사라지지 않으리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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