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살림 어떻게든 펴보겠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리나케 돈벌이를 하러 다녔다.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버지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도시락에 밥거리 할 것들을 채워 넣었고, 남은 찬거리는 고스란히 어머니와 내 밥이 되었다. 내 밥이 아버지가 남기고 간 그 절반의 몫이었다는 사실을, 먹고 싶은 반찬이 뭐냐는 질문에 내가 "고등어요!"하며 힘주어 답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본 이튿날. 엄마가 정말 고등어를 구워줄지, 미심쩍은 것이었다. 나는 이른아침부터 모든 조리 과정을 졸졸 쫓아다니며 지켜보았다. 엄마는 약속대로 고등어를 구웠고 살이 잔뜩 붙은 부위를 떼어다 도시락에 구겨 넣었다. 그러고 남은 부위의 살을 발라다가 접시에 차곡차곡 쌓더니 내게 밀어주었다.
나는 그 날 잔뜩 심술을 부렸다. "왜 아빠가 먹고 남긴 걸 내가 먹어야 해?" 했다. '난 무슨 거지야'하며, 내가 아는 가장 저속한 말들을 골라 스스로를 볼품없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고 여린 아이가 부릴 수 있는, 유일의 폭력 비슷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죄책감을 주고 싶었다. 얼마나 못난 취급을 받는지, 바닥인지 설명하려 들면, 그 말은 그대로 어머니의 가슴에 얹히거나 맺힐게 분명했으니까. 어머니는 울지 않았지만, 말의 음계는 점점 출렁이다 못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 무언갈 충분히 삭히고 나서야 입을 뗐다. 그렇다고, 별 다른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뜸을 오래 들여 고른 말은, 겨우 "다음에 또 해줄게" 뭐 그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너무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했지만,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방식이 늘 불만이었다. 정말 못된 아이였다.
조금 일찍 눈이 떠진 날이면 나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보다 더 부지런히면 아버지도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조금이라도 잠 때문에 늦장을 피울라치면, 아무도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늘 가족보다 먼저 눈을 감았고, 보다 늦게 떠졌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기 위해서 꼭 들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네 나이땐 밥보다 잠을 많이 먹어야 잘 자란다."라고 말했다. 마치, 뭘 해먹이는게 별 소용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밥이 고프고 나는 잠이 더 고프다는 걸, 어머니는 알았던 걸까. 그래서 내게 아버지 몫을 챙기고 난 자투리의 고등어를 챙겨주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잠을 열심히 먹고 깨어나면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까지 어떤 행동들이 한바탕 벌어졌다 지나간 사실도 모를 만큼 모든 것이 차분히 정돈되어 있는 느낌. 나는 그게 싫었다. 집 안의 반듯함이 항상 매스껍고 불편하기만 했다. 아마 '외로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겪어서였겠지만, 그때는 몰랐다. 배운 적도 없고 설명할 수는 더더욱 없는 감정에 몸이 먼저 참여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겪고 있구나.'라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경험은 언제나 말보다 이르게 도착했고, 몇 가지의 말을 배우고 난 이후엔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여기저기, 사방팔방 어디론가 열심히 튀어 다녔다. 난해한 감정에, 딱히 이렇다 할 해결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작정 밖으로 쏘다녔다. 방향이 어디인지 알지 못해도, 왜 이렇게 나와서 '아등바등 걸음을 잇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어도, 분명한 건 내가 어떤 불편한 감정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멀어지다 보면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차츰, 근처 발이 닿는 몇몇의 지명을 마음에 적어두는 일이 많았고, 검사라도 받듯 무작정 걸어서 그 장소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내기를 혼자 벌이고 있었다. 덩달아 날마다 잠을 먹는 양도 꽤 늘어갔다. 다만, 이상했던 점은 '숲 아래 자라난 마을'이란 뜻의 지명에서 '냇물이 아름다운 마을'의 지명으로 건널 때, 그에 걸맞은 광경이 갑자기 눈 앞으로 번뜩 달려들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어떤 구획을 넘고, 때문에 지명이 바뀌어서 불리어지는 이름이 달라지더라도,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마, 그 '말'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훨씬 오랜 기억을 간직한채, 한참을 고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부, 말이 새로 씌어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어딜 함부로 걸어 다니지 않게 된 것도, '외로움'이란 감정 대신 다른 감정에 골몰하게 된 것도, 아버지가 실업하고 나서였다. 아버지는 종일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특선 같지도 않은 특선영화 시리즈를 보거나, 요리 같지 않은 요리를 해 먹거나. 누구 만나러 간단 소릴 단 한 번도 입밖에 꺼내지 않는 걸로 봐선, 실업하며 그나마 남은 세상의 연까지도 애멀게 끊어진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식탁에는 아버지 몫의 밥이 배부르게 차려졌고, 나는 별 소용없다는 듯이 차려졌다.
아버지가 처음 집 밖을 나서게 된 건 담배 심부름 때문이었다. 많은 양의 담배를 쟁여놓고 피웠고, 또 그만큼의 담배를 비워갈 동안 큰 소식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몇 장의 지폐를 넉넉히 쥐어주며 말했다.
"요 앞 슈퍼 가서 담배 좀 사와라, 네가 먹고 싶은 것도 사고."
나는 배불리 먹을 과자를 샀고, 아버지가 담배 이름이라고 적어준 종이를 피며 물었다.
"디스 있어요?"
아직도 그 가게 주인분의 표정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사람 눈의 검은자위가 어쩌면 그토록 정확하게 정중앙으로 몰리고, 흰 여백이 부풀듯 넓어지는지. 여태껏 그만큼 허여멀건하게 표백된 표정을 본 적이 없다. 종내에, 주인분은 전화를 건네주며 번호를 찍게 했고, 아버지께 "담배는 꼭 본인이 와서 사셔야 해요. 이렇게 어린애를 보내면 어떡해."라고 타박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는 내 이름을 마저 불렀다. "집으로 와라."
나는, 그 날 아버지가 직접 슈퍼에 다녀오면서 분명 무엇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을 보았고, 그래서 마음의 심지가 조금 달라졌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게으르게 늘어지던 몸이 어찌 퍼뜩 일어나 사방으로 튀어가기 시작했단 말인가. 아마 아버지는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조기축구 동호회의 경기를 보았을 것이다. 묵혀둔 갈증이 말끔히 씻기기라도 했는지, 그때부터 주말이면 매끈하게 광택이 나는 운동복을 입고, 날이 성근 축구화를 신고 나갔으니까. 아버지는 구기종목 중 유독 축구에서 만큼은 애착이 남달랐는데, 나는 그것이 사내 체육대회에서 직원들과 치덕거리며 보던 승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짜로 해, 진짜로."
그 당시, 아버지가 제일 입버릇처럼 매달고 다닌 말이었다. 자신이 넣은 골이, 단순히 공을 차서 들어간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생생하고 진짜처럼 살아있는 듯 한 말들. 다시 말해, 아버지를 수식하고 증명하게 만드는 어떤 직함 같은 것. 아버지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아버지를 둘러싼 말들이 무서워서 저리도 맥없이 길을 터주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진짜로 해, 진짜로" 그래서 그 말은 거의 불명확한 항변에 가까웠다. "진짜로 해, 진짜로" 꼭 아버지 자신이, 이미 자기이면서도 다들 헛것을 봤다는 듯이 지금의 자기가 진짜라고 우겨대는 것처럼.
다행히 직원분들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개의치 않고 그런대로 꽤 열심히었다. 누군가의 스파이크가 아버지 정강이 옆면에 박혀선 그대로 내리그으며 심각한 구멍을 뚫은 것이다. 살갗 내부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던 뼈가 훤히 드러났지만, 아버지의 입은 귀에 걸리다 빠지고를 반복했다. 그 상처를, 직위로 골을 넣은 게 아니라 진짜 제 몸을 열심히 굴리고 투닥거리며 넣은 증표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흉한 상처가 만들어낸 어떤 과도한 기쁨의 표정을, 그 기이한 순간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어느 군인이 새겨놓았다던 "나는 천국에 갈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살아서 지옥을 봤으니까."같은 문구의 지포 라이터처럼. 그것은 인생에 한두 번쯤은 과감히 내어줘도 괜찮을 흉, 그럴싸한 빈티지 비슷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꼬박 주말이면 뽈(Ball)을 차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 공이 아니라 꼭 '뽈'이어야 했다. 입을 한번 휘감고 착 떨어지는, 그 입맛 좋은 소리를 아버지는 듣기 좋을 만큼 기분 좋게 냈다. 그럴 때면 또 빈티지 하나를 만들러 가나 싶었다. 사실 말이 좋아 빈티지지, 아무런 멋도 없고 그냥 헌 것에 지나지 않는 쓸모없는 몸뚱이었다. 어릴 땐 그 모습이 왜 그렇게 그럴싸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어김없이 "뽈 차고 올게" 하고 집을 나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쏘다니며 거의 날라다니다시피 한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가만히 누워만있다, 늘 정확한 시간에 밖을 찾았다. 이상하게 그 날은 '뽈'의 어감이 평소보다 유독 식욕 좋게 들렸다. 이제는, "진짜로 해, 진짜로" 하지 않아도 이미 진짜인 아버지가 방방 뛰어다니며 '뽈'을 차는 모습이 머리속으로 술술 그려지기까지 했다. 간만에 아버지가 자신만의 수공예로 그럴싸한 빈티지를 하나 더 만들어 올지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어딘가 지쳐보이고,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은 몸을 예전처럼 써보려고 바둥대는 몸들이 서로 거칠게 붙고 떨어지고를 되풀고 있었다. 아버지들의 몸은 죄다 같은 몸처럼 보였다. 시원하게 허연 몸은 찾아 볼 수 없고, 검게 그을린 육체들만 땀 때문인지 윤이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움직여대는 그 몸들에 눈을 걸치며, 마치 고무같다는 생각을 했다. 팽팽한 탄력을 지닌 고무가 아니라, 삭을대로 삭거나 한계치까지 늘어나 조금만 당겨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고무. 나는 그걸 아버지들의 몸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아버지를 찾으려 열심히였다. 정강이 부근의 흉, 아버지가 만들고도 그렇게 맘에 들수가 없어 웃어 보이던 빈티지, 그걸 찾기만 하면 금방이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뽈'을 차러간다던 아버지가 도무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불편해진 마음으로 걸음을 이제 막 돌리려던 차, 익숙한 무언가가 눈가에 슬며시 잡히기 시작했다. 점점 선명해졌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가시가 잔뜩인 장미 덩쿨로 범벅된 담벼락 건너에서 무얼 앓거나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어찌 해야할지 잘 몰랐다. 그건 지금의 나라고 해도 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떤 성질의 사람인가' 얼핏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러 모른채 해도 됐을 순간을 못 견뎌 한다는 것.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에게 억척스레 말을 붙이는 사람. 남겨둔 말을 꼭 들어야만 하는 사람. 예감은 반드시 확신이 되어야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냥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 결국 다가가 아버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째서 인지 아버지는 놀라지 않았다.
"아빠, 왜 안해. 사람들이 안껴줘?"
아버지는 아무말이 없었다. 나는 할 말이 없도록 만드는 말을 잘한다. 그건 어려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내게 도착한 말들이 몇 가지 없어서 무작정 뱉고 보는 말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곧 실없는 웃음을 그려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소리로 입을 뗐다.
"그러게, 내가 못 해보이나. 안껴주네"
딱, 한마디였다. 아버지는 '뽈'이 어쩌니, 뭐니 같은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조막한 손 하나를 감싸듯 쥐고 근처 슈퍼에 데려갔다. 담배 심부름을 시키던 그 슈퍼였다. 아버지는 '먹고 싶은 것들 다 담아라.'했지만, 나는 눈치를 살피며 살살 고르는척 하다 말았다. 아버지는 자꾸 내 등을 툭툭 건드려가며 '골라라, 골라라' 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열심히 달려들었을텐데, 더불어 '과자같은거 자꾸 먹어버릇하면 입맛 다 배린다'했을텐데, 마치 그 날은 서로 다른 역을 맡기로 약속한 배우들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척 해 보이는 모든 시늉들이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정말, 나는 그 순간 아버지를 뒤척이고 있을 기분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 때도, 내가 아직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몸이 먼저 동참하고 있던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흉을 만드려고 간 사람이 자식에게 겨우 "사람들이 안껴줘?" 같은 말이나 듣고, 하여 과자를 사먹으라 떠밀고, 갑작스레 철이 들어버린 자식은 짓궂게 또 사들지는 않고.
나는 그 감정을 누구나 생에 한 두번쯤은 의무적으로 마주쳐야 할 과제쯤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도록 부지불식간에 밀려드는 것이고, 적당한 말을 찾으려면 대게 한 삶을 살아보아야 한다. 허나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소용이 없어서, 자신만의 언어를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말이 모자르다고 생각될 때가, 그때가 우리에겐 몇 번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