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피아노

by 이음

사실,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쪽에 더 가까운 행위이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녀의 연주를 보고 나서였다. 그녀는 두 살 터울의 동네 누나였다. 나는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 들려주었고, 가끔 반말도 섞어가며 어떤 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서 한껏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는 방문의 손잡이를 쥐는 순간까지도, 어쩔 줄 몰라하며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지고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눈에 번뜩 무언가 들어왔다. 피아노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음계를 연주하는 악기인 줄은 막연히 알았아도, 어디까지나 상상이었을 뿐. 하나의 물리로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체적에 맞게 조절된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리고 나를 옆에 불러 세웠다. 연주가 시작됐다. 아마, '은파'라는 곡이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분명 그녀는 이 곡을 연주해 보이면서 꽤 우쭐한 표정으로 곡명을 말해줬었다. 그렇게 빠져들어, '다른 건 다른 건'하며 한동안 그녀를 보챘다. 내심 기분이 좋았던지, 싫다는 기색 하나 없었다. 손을 건반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잘 조합된 음이 술술 흘러나왔다. 무엇을 능숙하게 다룬다는 건 확실히 그랬다. 편안한 옷을 입은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구석이 있었다. 그 날 나는 피아노에 속해있는 그녀가, 알 수 없는 세계를 통제하고 조율하는 거대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연주란 그런 것이었다. 미지의,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어떤 공간으로 진입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에게 더 이상 시답잖은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지 않았다. 물론, 반말도 섞지 않았다.


나는 곧장 집에 돌아와, 다짜고짜 엄마를 불러댔다. 그러곤 사전 설명도 없이 딱 한 마디만 했다.


"엄마, 나 피아노 학원 보내줘."


엄마는 벙쪄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왜'라고 물었고, 나는 그 날의 일을 전부 말해주었다. 엄마는 까무러치게 킥킥대며 웃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와 목이 붉어져서는, 기침까지 쏟아냈다. 엄마는 대수롭냐는 식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엄마에겐 피아노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죄다 관심 밖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좋냐"고 나를 계속 골리듯 추궁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봐야, 소용없었다. 엄마는 늘 그런식이었다. 자신이 물고 있는 답을 받아내기 전까지, 계속 묻기만 했다. 내가 못 겨워하며 하는 수 없이 '맞아, 그래'라고 말하면, 흡족한 모습을 취해 보이며 "그렇지? 그렇지? 넌 다 이 엄마 손바닥 안이다, 머리 꼭대기에 있다."했다. 나는 '손바닥 안'이라는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발신 불명의 편지 같은 것이라고. 내가 결코 답할 수 없는, 오직 수신만 가능한 삶. 태어나기 이전부터 말들은 존재해왔고, 우리는 고작 그 말의 의미를 터득하는 것밖엔 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엄마가 고른 말에 내 삶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피아노 학원엔 또래의 아이들이 득실득실했다. 노란학원가방을 둘러메고, 이리저리 부산떠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악기였다. 조율이 안돼, 제 음을 정확히 다루지는 못해도, 열심히 웅얼거리는 악기. 진짜 악기소리가 넘쳐 시끄러워도,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최선을 다해 소란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피아노방에서 선생님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이제 막 치게 될 피아노의 첫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빼곡히 이어져 있는 건반들을 보자, 처음 든 생각은 피아노가 매우 길고 넓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내 손을 감싸 말아 쥐게 만들고, 검지만 쏙 빼냈다. 아무 건반이나 눌러보라고 했다. 피아노 정중앙 부근의 열쇠 구멍을 타고, 쭉 내려와 집히는 건반을 눌렀다. '미'하고 소리가 났다. 음은 울리다가 점점 연해지더니 곧 흩어졌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마음이 내키는 대로 짚어보라고 했다. 운지법을 모르는 나는, 같은 검지로 그 옆 건반을 눌렀다. '파'하고 소리가 났다. 이번엔 검지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손을 펼치며, 선생님 손 전체로 내 손등을 받치듯 덧대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천천히 내 다섯 손가락의 손톱을 지긋이 밀었다. 손 뒷면에서부터 서서히 밀려오는 힘이 그대로 실려, 건반이 푹 눌렸다. 또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피아노도 이렇게 운다."라고 알려주었다. 손으로 누른 건반에 힘이 실려, 내부에 가닥가닥 버티고 있던 현을 때리고 소리를 낸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방금 넌 잠시 동안 피아노가 됐던 거야. 내가 널 울린 거지." 그 말은 아주 광장했다. 피아노를 가뿐하게 치던 동네 누나가 거대해 보이기는 했어도, 어찌 못할 정도로 막강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 건 그 말 때문이었다. 내가 피아노가 된 순간 알았다. 다른 무엇보다 '악기를 다뤄요.'라는 말이 제일 근사하고 위력적으로 들렸다. 마치, 다른 언어체계에 속해있는 사람 같았다.


이후로도 종종 나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아주 능숙하게 피아노를 다뤘다. 누구나 발로 걸을 수 있듯, 누구나 손으로 짚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은 물론 손 전체를 교차해가며 건반을 짚었다. 그때, 나는 매혹이라기엔 어딘가 조금 모자라고, 예리한 감정에 휩싸였다. 내가 피아노가 되었던 순간에도 그와 비슷한 걸 느꼈다. 내 손이 건반이 되고, 선생님의 살갗이 내 손톱 윗면을 문지르며 움푹 들어갈 때. 더욱이 피아노에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복잡한 과정이 체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리란 사실은 이제 막 건반을 주므르기 시작한 아이에겐 버거운 것이었다. 허나, 분명한 건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몸을 밀착시킨 채 건반을 더듬는 모습은, 도저히 듣는 것 만으로는 불충분한 어떤 의식 같아 보였다.


나는 피아노를 쳤다. 배우겠다고 떼를 부렸으니, 그래야 했다. 하지만 두 눈으로 보고 듣던 것을, 내 몸으로 옮겨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점점 피아노를 치는 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다가도 괜히 선반 위의 메트로놈을 똑딱거리며 건드리거나, 곡을 친 횟수를 표시해놓는 수첩엔 연주와 상관없이 지루할 때마다 서너 개씩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다 얼마 못가 학원을 그만두었다. 꼭 피아노를 그녀만큼 능숙하게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피아노의 다른 한 쪽면을 기웃거리고 싶었던 것 같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음을 듣는 것뿐 아니라 만질 수도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는 퍽 심각한 표정을 그려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왜 그 애가 너보고 싫대냐?" 난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그냥 "응"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그 질문은 분명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지만, 질문이 입밖에 나온 순간 이미 내겐 답이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렇지? 그렇지?'하며 되묻지 않았다. 밥을 차려놓을 테니, 얼른 씻고 오라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떠먹으면서도, 걱정스러운 엄마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정말 아무 일 없고, 괜찮았는데,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엄마는 몇 번씩 반찬을 집어 밥에 얹어 주었다. 나는 그 불편함이 어째선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사실 아무일도 없는데, 큰 일을 혼자 벌려놓은 엄마가 나를 대하는 모습이 워낙 진심어려서 그랬다. 집어주는 반찬을 열심히 자식처럼 받아먹으며, 속으로 많이 웃었다.


이상하게, 피아노에 급하게 반했다가도 어떻게 돌아섰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다 가지 않았겠지. 허나 살면서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떠나는 것들이 무수히 많을 테지만, 그것이 피아노여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마음을 줘 버릇하는 어린 시절엔 그런 것들이 많고, 그럼에도 호되게 당해서 몇 달쯤 마음을 못쓰게 만들거나 하지 않아 더욱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피아노란 듣는 것이 아닌 보는 쪽에 가깝다고 믿는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손끝으로 흘러들어와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두 개체 간, 일종의 전염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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