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장수

by 이음

그는 두부장수였다. 아, 얼마 동안 게으르게 팔다가 그만두었으니, 장수라고 하기엔 좀 뭣하다. 그냥 두부를 잠시 팔았던 사내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어느 분식집에서 손바닥만한 두부 한 모를 들고 머뭇거리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어느새부터인가 젊은 두부장수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른 아침경 시작해서, 주먹만 한 종을 대충 굴리며 '두부 있어요' 하다가, 저녁이면 판을 접는 식이었다. 그런 일이 얼마간 계속됐다. 어느 날은 그 사내가 분식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뜸 하는 말이 "두부 필요해요?"였다. 주인은 무슨 영문인가 싶어 "두부는 왜요?"하고 물었고, 사내는 꺼내도 괜찮을까 싶은 말이었는지, 한참 뜸 들이다가 가까스로 말했다.


"저기, 혹시 두부로 떡볶이랑 바꿔먹을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주인아주머니는 떡볶이와 몇 가지 건더기를 국자로 가득 떠줬다. 혹여 다른 먹고 싶은 것이 뭐 있는지도 물었다. 그러곤 그의 사정을 대충 알겠다는 듯이, "그럼, 괜찮지 많이 먹고 가."라고 답하며 말을 맺었다. 그렇게 사내는 잘 포장된 떡볶이를 들고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주인분은 그 사내가 두고 간 두부 한 모를 그 자리에서 대충 썰었다. 입에 대지도 않고 죄다 썬 두부를 양념에 버무리더니, 내게 밀어줬다. 사내와 두부, 그 둘의 조합만으로도 주인분은 충분히 많은걸 느꼈던 듯싶었다.


"한창,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은 나이일 텐데 그죠?"


요 며칠 그 가게에 들러 먹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창문 건너로 그 사내가 이따금씩 두부와 떡볶이를 바꾸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렇게 하도록 주인분은 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참 순해 보이는 맑은 기운의 시내였다. 잘 웃고 다녔는지, 앳된 얼굴엔 정성이 들어간 눈주름이 몇 가닥 접혀있었다. 어딜 가나 선뜻 막내 노릇을 도맡아 할 것처럼, 싹싹하다고 해야 하나 무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면이 보이는 사내였다.


허나 다른 무엇보다, 젊고 창창한 사내가 하는 일이 두부장사라는 게 쉽사리 이해가지 않았다. 자신에게서 뻗은 많은 곁가지 중 왜 하필 택한 것이 두부였을까. 만약 사람 생이 길이라 한다면, 어느 부근에서 방향을 틀고, 그래서 어떤 국면에 접어들었고, 그런 방식으로 몇 번쯤을 헤매어 도착한 길일까. 정말 두부가 좋았다면, 만들 수도 있고 그것을 가지고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 팔아도 되었을 텐데, 왜 겨우 허름한 수레에 두부를 실어 다니는 일을 시작했을까. 왜 그는 두부를 팔러 다니는 걸까.


딱히, 내가 그를 만나 뭘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성질의 사람일지 궁금했고, 마침 그가 파는 두부로 전을 부쳐먹어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매일같이 그가 들르는 장소를 순례했다. 그렇게 몇 날, 사들고 온 두부는 전이 되기도 했고, 조림이 되거나, 찌개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모든 요리과정은, 비단 음식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의 관계에 대한 조리과정이기도 했다.



두부로 만든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가는 것만큼, 그에게 말을 붙이는 재주도 갈수록 나아졌다. 이제 조금 깊숙이 들어가도 괜찮겠다 싶어, 말을 던졌다.


"그런데, 왜 하필 두부예요, 왜 두부를 팔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사물의 지문을 뜨는 일이 근사하다'라고 말했다. 그 부근에서, 내 속으로 짧게 더운 바람이 부는 것도 같았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사진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후 멀리멀리 타지로 다녀오는 일이 많았다. 어김없이 그날도, 사진 한 번 건져보겠다고 강원도 어느 경치 좋은 곳에 들러 사진도 좀 찍고, 겸사해서 며칠간 편히 쉬다 올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를 돌려세워야 했다.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부고. 그것은 그가, 단 한 번도 가정해본 적이 없는 일. 근거 없이 확신한 예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거짓말 같았다. 정말, 끔찍하리만큼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다.


"원래 없던 사람이, 그저 영영 없어진다는 느낌이었어요. 무슨 느낌인지 알겠죠? 제가 이상한 걸까요."


소식은 들었는데, 실감은 아직 먼발치에서 이제 막 출발할 채비를 마친 것이라 이해했다. 혹은 아버지라는 한 존재의 냄새가 그에게 너무 옅어진 탓 일지도. 그게 아니라면, 삶에 너무 거대하고 명확한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 되려 감정이 아직 갈피를 못 잡는 것 일수도. 어찌 됐든, 그러리라 하는 감정들은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여차저차 큰 일을 치르고, 집으로 내려와 두부를 팔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잡은, 작은 소일거리였다. 그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좀 짚이는 게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이어서 내가 물었다.


"그래서 뭐 좀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갑자기 기억나는 게 있다던가. "


그가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는 말도 그렇고, 결국 사람이 사람을 떠나며 남기는 것도 역시 기억으로 남게 되는, 사진 비슷한 것이라 믿기에 물어본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무르고 있던 주먹만 한 종을 뒤집어 수레 안쪽에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왜, 그 기억이 나는진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아버지가 일어나, 잠결에 부엌으로 간 적이 있었 거든요. 목이 말랐나 싶었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바지춤을 들추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볼 일을 보셨어요. 한 손으론 가스레인지의 화력 조절판을 딸깍 거리시면서. 그게 아마 5년 전 일 거예요. 아버지가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그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죠. 혹여 어머니가 보실까 봐 안방 문을 닫아두고, 부엌을 치웠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다시는 집에 내려와 본 적이 없어요. 슬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감정이 더 큰 것 같았어요. 하필, 생각나는 기억이라곤 온통 그 날의 일 뿐이에요. 왜 그런 걸까요. 왜 전 그 장면을 기억하는 걸까요. "


지금 그가 내게 했던 말을, 나 혼자 전부 들어버려도 괜찮은 걸까. 슬픔은 힘이 세다. 금방 소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고 가는 기억도 결국 그런 것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의 많은 감정을 걷어내다보면, 그 끝에는 슬픔이 고여있을 것만 같다. 가장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감정이어서가 아니고, 가장 무게가 나가서도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슬픔은 거의 모든 감정에 섞여있어서 그렇다. 우리가 그토록 멀리 달아나자고 했던 슬픔에, 실은 가장 의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두부를 얼마간 더 팔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어떤 해답을 내렸다기 보다 그냥 마음에 이고가기로 결정한 것이라 믿기로 했다. 한동안 두부를 더 먹어도 물리진 않을 것 같다. 두부를 먹으면서 덤으로 다른 무엇도 같이 삼켜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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