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사람이 귀가 작으면 팔자를 못 핀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귀가 작을까."
나는 별 시답잖은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내 오른쪽 귀를 잡아보았다. 엄지와 검지, 중지 손가락으로 감싸 쥔 귀는, 공간이 얼마 남을 정도로 가뿐하게 들어왔다. 내 귀가 작은 편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바로 그 친구가, 내게 가게 좀 대신 봐줄 수 있겠느냐며, 간만에 부탁을 했다. 봐줄 수는 있는데, 괜찮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다. 나는 직업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툰 것은 물론, 내어가는 요리는 또 어떻게 손을 보아야 하나, 일체 아는 것이 없었다.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소규모의 맥주집이니, 별 어려울 게 없다고 했다. 테이블 다섯이 벅차게 들어갈 정도의 작은 공간이라는 것과 자신이 직접 반죽한 음식을 튀겨 내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켰다.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만해 보였다. 자잘한 소음들과 엉켜 책을 읽는 것쯤은 문제도 없을 것 같았고, 그러다 바(Bar) 자리에 앉은 손님과 좋은 구절 한 두 개쯤을 나눠갖는 일을 상상하니, 또 괜찮겠다 싶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해가 스멀스멀 들어가, 가로등과 교대할 즈음 가게를 열었고, 그 가로등을 애인처럼 부둥켜안는 사람들이 서 너명 보일 즈음 가게를 닫았다. 건너 가게엔 옅은 회색빛 털의 강아지 한 마리를, 문 앞에 묶어 기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몇 번씩 개의 털을 더듬고 갔다. 그러다 너무 엉망으로 취한 손님이 거칠게 털을 쓰다듬을 땐, 플라스틱이 대충 얹혀진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가게 부엌엔 밖으로 난 겹창이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열어버릇 하지 않아 부식되고, 그렇게 굳어 단단히 응축돼버린 창. 남에게 자신을 거뜬하게 열어보인 적이 까마득한 창. 그 창에 눈을 걸쳐두는 일이 많을 정도로, 친구의 가게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렇더라도, 가끔씩 이가 빠진 잔을 확인도 못한 채 음료를 따라간 적이 있는가 하면, 주문을 실수로 잘못 받아 덤처럼 음식을 주는 일도 몇 번 있었다. 무엇보다, 가게를 하면서 알게 된 건 바(Bar) 자리는 생각보다 잘 앉지 않는구나, 의외로 맛과 향을 분리해내는 사람도 많구나, 안주도 없이 쓴 술만 들이키면서 달다고 말하기도 하는구나 였다. 일은 손에 차츰 익기 시작했다. 시간을 재지 않아도, 튀김 겉 반죽의 색만으로 어느 정도 익었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어떤 식으로든지, 요리란 음악으로 따지자면 편곡 같은 것이라고 믿는 편이었다. 최대한 본연에 집중하면서 무언갈 더 보태게 되는. 비록 튀김뿐일지라도 나는 아주 근사한 연주를 해내고 있는 중이란 기분이 들었다. 기름은 맛을 좀 더 묵직하게 가라앉히고, 채도를 낮추는 과정 같았으므로 그건 악기로 치자면 피아노의 건반 중 제일 무거운 음계. 둥둥 안쪽으로 깊게 웅크리는 낮은음이었다. 두껍고 길게 뻗는 낮은음.
점차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내가 주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끔 들었다. 친구가, 어딜 좀 더 멀리 다녀오거나, 가게에 아예 싫증을 느껴버려서 한 동안 내게 떠넘겼으면 싶었다. 그래서 손님이 주인분은 어디 가셨어요 물으면, 원래 제가 주인인데요 하고 장난도 좀 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몸이 많이 불편한지, 한 손으로 문을 쥐고 그 사이로 어깨를 들이넣어 비집듯 열었다. 한쪽 팔이 지나칠 정도로 가볍고 경쾌했다. 마치 뜯거나 파먹어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제일 먼저, 내게 몇 장의 지폐를 꺼내 보여주며 맥주 한 잔 마실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그러겠다고 했다. 맥주를 최대한 거품 없이 가득 따라주었다. 그는 손보다 먼저 입을 가져가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저 돈 낸 거예요. 계산 끝난 거죠?" 그대로 받아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말, 어지러운 말이었다. 발음이 심하게 일그러져, 체내에 많이 밀려있는 말. 입이 생각을 좇지 못해서 한스러울 것 같은 말. 나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그 날은 손님이 가득 몰려들었다. 그 남자가 어떤 출발선을 끊은 주자처럼, 이후에 사람이 가득 가게를 메웠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여러 개의 튀김기를 한꺼번에 켜놓고, 그 사이에 맥주를 실어 나르고, 가끔씩 포장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아까 저 돈 냈어요. 계산 끝난 거 맞죠?"하고 물었다. 한 번이 아니라, 끝을 두 어번 반복하면서 확인하듯 물었다. 술을 내가고, 다시 받아와서 잔을 씻고, 그 잔에 다시 술을 부을 동안, 그는 계속 말했다. "아까 저 돈 낸 거 봤죠. 계산 끝난 거 맞죠?" 내가 한 번이라도 알아 들었다는 시늉을 보이지 않으면, 재차 물었다. "아까 저 돈 낸 거 봤죠. 계산 끝난 거 맞죠?"
가게를 얼마간 더 보겠다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많은 양의 튀김을 튀기고, 너무 오랜 시간 가열된 기름에선 연기가 자욱하게 피었다. 이 갑갑한 가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 좁은 틈을 가까스로 통과하려고 기어들어가다, 몸이 끼어버린 것처럼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괜히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도식적이고 반복적으로 묻는 남자의 말은 끊임없이 뭘 부추기는 기분을 만들었다. 가끔씩 정확한 사실보다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에 더 숨 막힐 때가 있다. 당시, 그의 말이 그랬다. 밀려드는 주문보다 그 질문을 견디는 게 더 고된 일이었다.
왜 그는 나를 이토록 다그치는 것일까.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애쓰는 걸까. 하필, 처음 바(Bar) 자리에 앉은 이가 이토록 불쾌한 사람일까. 가게가 어느 정도 정돈된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계산은 끝나셨어요. 더 이상 추가 지불할 것도 없고, 가실 땐 그냥 가셔도 됩니다."
다시는 묻지 말란 의미로 답한 말이었다. 더 이상 그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동생분이 없네요. 아, 내 친구를 말하는 건가 싶어, 며칠간 대신해서 가게를 보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한 후, 말을 이었다. 고마워요.
나는 그 고맙다는 말을, 질문에 답해준 수고 때문인 줄 알았다. 정말, 그뿐인 줄 알았다. 그가 다시 말을 꺼내기 전까진.
"고마워요, 저 같은 사람을 술 마시게 해줘서"
그가 한 '같은'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알았으나, 그렇다고 그 말이 술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같은'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연신 뱉은 돈을 지불했다는 말도, 얼추 감이 잡히려는 듯했다. 어쩌면, 돈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떠한 관계. 주인과 손님이라는 가장 거리낄 것 없고, 정당한 관계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걸 수도 있었다.
"술은 그냥 마시면 되는 거잖아요."
그는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술을 마시려 꼭 이곳에 들르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술을 편하게 마실수 있는 곳은 이 곳뿐이라고. 동생이 참 친절하다고. 그러면서도 지금 하는 이야길 친구분께 하지 말아달라고, 관계를 조심하려는 부탁도 했다.
어떤 연유로 그의 팔이 심하게 뭉개졌는지, 그 충격 때문에 말이 어눌해진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그 일을 겪은 후, 제일 먼저 감당해야 했던 것은, 그 사고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앗아갔는지 실감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걸 일일이 소화해내는 과정을 끔찍하지만, 밟아야만 했을 것이다. 대게 사람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벌어진 사건보다, 그 사건으로 인한 타인의 더 일방적인 면을 의식해야 한다. 순간은 너무 간결하지만, 가혹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이러니, 그가 내게, '계산 끝난 것 맞죠?'하며 물었던 것도 사실, 별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터득해버린 어떤 습관이었을 것이다.
그는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했다. 여러 가지 재료가 혼합된 맥주를 입으로 부으면서, 기분 좋은 표정을 그렸다. 그 와중에, 고맙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계산은 끝난 거죠? 이거 마시고 그냥 가면 되는 거죠?"라고 물었고, 나는 "그럼요."대답했다. 친절하게도, 그는 자신이 비운 잔 세 개를 한 손으로 동시에 쥐어 주방까지 들어와 건넸다. 내가 그 잔을 받아 들고, 등을 돌린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만, 아찔했다. 그의 옆 열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귀가, 나와는 다른 아주 넓은 귀가 그에게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