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양보했다.

by 이음

무엇이 마음에 내키는지, 기사님은 앞 유리판으로 뒷 편 승객의 얼굴을 살피느라 운전대를 평소보다 꽉 쥐셨다. 나는 그 승객이 내 앞 건너편에 앉은 분이라고 넘겨 짚다가, 고개를 떨구던 뒷모습에 두 손을 오므려 덧대는 것을 보자 확신이 들었다. 흐느끼듯 발작하는 어깨의 들썩임은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오목한 손을 가면처럼 얼굴에 덧대 울다 보면 어느새 접시가 되어 있을게 뻔했다.


그제야 기사님은 운전대를 헐거웁게 고쳐 잡으신다. 걸음수를 셈하지도, 아니 셈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서둘러 도로로 시선을 돌린 것은 '그리 참았으면 됐다.'라고 위로하기 위한 그만의 유난한 방식이겠거니 싶었다. 그 말을 알아 들었던 것일까, 울음은 더욱 격양되고 짙어졌다. 어느 누구도 그 울음에 토를 달지 않았다. 더욱이 애써 가리려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소리를 양보했다. 한 승객은 꾸깃한 귓바퀴에 비집어 있던 이어폰을 내려 놓았고 또 다른 승객은 식사 때를 놓치었는지, 김밥 두 어개를 쑤셔 넣은 입을 숨이 모자라도 성급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비슷한 이유로 얇은 종잇장을 책 한 권처럼 무겁게 들고 있어야 했다. 고유한 소리는 제 몫을 접고 자리를 내주었다. 단 한 가지, 도로의 질감을 고스란히 전해받은 차체의 덜컹거림만은 어찌 할 수 없어, 부둥켜 토닥이는 것으로 에둘러 믿어야 했다.


등살이 일었다 가라앉기를 여러 번. 요동치던 물살이 제 수면을 찾아가듯, 썩 반듯하지 못하더라도 그 떨림은 제법 잔잔해졌다. 음을 튕기는 서투른 기타 연주처럼 이따금씩 한 호흡을 튕구어 간신히 들이마셨다. 손바닥을 가슴 정중앙에 얹었고 다른 한 손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애꿎게 목은 매어서 나오는 말을 도로 삼키길 반복했다. 숨은 버릇처럼 제때 쉬어줘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죄이는 목을 벌리고 힘겨이 넘어온 말이지만 서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어느 이의 부고였다. 그 분의 말은 곧대로 이어져도 들리지 않았다. 화창한 날에, 따사롭게 빛이 재주를 부릴 적에 어찌하나, 그 생각만이 오롯했다. 초점을 잃은 눈엔 그 어떠한 눈부신 광경도 뿌연 안개에 자나지 않듯이, 한 이의 죽음으로 그는 일순간 세상을 등진 꼴이 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못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탓에 창밖 트럭의 등을 동여매고 펄럭이는 고무줄 조차 내겐 그렇게 촐싹대 보일수가 없다. 하물며 가을을 으스대는 몇몇 풍경들은 오죽할까. 사람이 때를 기다려 가을의 여물음을 수확해 간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신께서 보이지 않는 사람 명줄에도 제 각기의 끝은 있는 법이라고. 죽음을 겸허히 감내토록 부추기는 명분이라 말한다면 딱히 좋을 수 만도 없는 계절일 것이다. 하필 그때에 그 계절의 모습을 본 것은 내 눈의 죄가 되었다.


나는 시외버스 중간 오른편 창가에 앉았고 내 옆엔 이어폰을 두르던 이가 앉았고, 그 앞에는 김밥을 드시던 몇 분이. 마지막으로 내 앞 건너편엔 소리 내어 울던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분명 들어올 이도 이탈할 이도 없을게 분명한데 나는 왜 그들의 자리를 눈에 새기려 들었나. 나는 버스기사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들의 자리를 눈에 새기려 들었을까.


꿈이라고, 호도하게나마 꿈결이 묻어나오기를 바랬던 것은 나였다. 누군가가 갑작스레 버스에 들어와 앉거나 숨죽여 끅끅대는 울음보다 더 조용하게 버스에서 사라지거나. 애석한 것은 꿈에선 꿈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현실에서만이 꿈을 확인하고 그 경계의 불명확함을 반추한다. 대게 그것은 두 갈래로 나뉜다. 무척이나 경이롭거나 참을 수 없이 비통하거나. 그 날은 후자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