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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11. 2018

상냥한 백색(2)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갔다. 나는 더위와 추위, 각 계절에 온몸을 문지르며 기지개를 펴듯 자라났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곤 나를 바라봤다. 익숙한 단어가 대뜸 생경해져 낱말의 생김새와 구조, 그 발음을 일일이 되짚어 보듯 그랬다. 당연하고 또 마땅한 일인데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라 방심해, 뒤늦게 뭔갈 놓쳤다는 아쉬움이 든 걸지도 몰랐다. 물론, '자란다'는 건 무척 조심스럽고 미미하게 이루어지는 일 중 하나였다. 성장의 보폭은 은밀하면서도 한편으론 노골적이었고, 오랜 잠복기를 거친 질병처럼 느닷없이 나타나 통보하듯 일방적이었다. 때로 그 갑작스러움이 사뭇 버거울 적도 있었는데, 누군가 계속 내 등을 떠밀어 내쫓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 덤덤하고 서늘한 기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집에는 주로 어머니가 없었고, 아버지는 자꾸 시시한 소리만 늘어놓기 바빴다. 하나 그 시시콜콜한 소리란 것도 4학년이 되자, 더는 들어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가 서서히 집 밖을 어슬렁 거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딱히 일감을 찾아 나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 말로는 '저 양반이 집에만 있기 좀이 쑤신 모양'이라 했다. 하굣길, 길목에서 마주친 아버지는 어느 과일가게 앞에서 무른 사과를 껍찔째 씹어 먹고 있거나, 분식집에서 한 손에 어묵을 든 채 몰래 남을 흉보기도, 참견을 하다 일을 거들기도 했다. 훔쳐들은 바로는 돈을 꾸러 다닌다는 것도 같고, 물건을 수집한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통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밤늦게, 피로해져 수척해진 얼굴을 들고 와 그런 아버지의 행적을 캐물었다.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집에서 애 숙제나 좀 봐줘라.' 평소엔 기가 죽어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으면서. 웬일인가 아버지는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내 다 생각이 있다, 생각이."


 순간, 어머니는 모처럼 할 말이 생긴 아버지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이번엔 정말인가' 싶어 말을 삼갔다. 아버지는 의기양양해져 목소리를 세웠다. 어정쩡한 말을 꺼내 관심을 유도했고, 어머니를 몰아붙일 말들을 내밀었다.


“지금, 이때 딱 좋은 사업이 하나 있거든.”


어머니는 통 말이 없었다.


“곧 할 건데, 얼마 안 남았어.”


 말은 하나같이 거창했다. 또한 아주 먼 미래를 예견하듯 암시적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일련의 말들 중 어떠한 것도 명확히 말해주는 바가 없다는 거였다. 말에 확신은 있으나 실체가 없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표정만은 줄곧 생글생글 살아 눈에 띄었다. 진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마치, 근사한 선물을 숨긴 사람이 '가짜'를 내보이며 든든한 거짓말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세상 이치'를 파악하기라도 한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아버지는 이제 사람 구실을 하려는 걸까. 혹여 지나친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세상에 일방적으로 내쳐진 사람이 그런 기회로 편승해보려는 건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모처럼 한껏 지어 보이는 아버지의 웃음은 조금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예민한 시대의 감을 먼저 알아채 짓는 미소였다.


머지않아, 우리 앞에 아버지가 내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용달 트럭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 낡고 추레한 트럭의 외양을 천천히 훑어나갔다. 타이어를 툭툭 건드려 기압을 확인해 보거나 문짝을 열었다 닫아보는 둥, 사람이 살 곳을 따져보듯 특정 형태가 갖는 양식을 점검했다. 그렇게 어머니가 골몰히 뭔갈 들여다 보고, 눌러보고, 판단에 신중을 가하는 동안, 아버지는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해명하느라 바빴다. 결론은, "'겉은 이래도, 속은 거의 새 것과 다름없다.” 뜻이었다. 이어서 어머니는 도대체 무얼 할 계획이냐며 물어왔다. 아버지는 잠시 차체에 기대 눈으로 차 윤곽을 쓰다듬었다. 위에서 아래로. 시선은 아버지의 용달 트럭처럼 초라하고도, 어떤 동질감에서 비롯된 단단한 믿음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입을 뗐다.


"고물일을 하려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로, 내 옆으로. 그 공간에 있던 무언가들이 단번에 증발한 것 같은 짙은 고요가 찾아왔다. 곧 어머니는, 그 침묵 속으로 작은 말 몇 마디를 던졌다. 말은 텅 빈 공간의 부피를 헤아리며 담담하게 퍼져나갔다.  


"고물 볼 줄은 알아?"


아버지가 트럭 뒷 타이어를 밟으며 말했다.


"배워야지, 이게 계속 들여다보고 그러면 금방 익힌다고."


 어머니는 그 외에도,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 물었다. 고물 시가는 아는지. 자리다툼과 같은 관행이 얼마나 심한데, 당신이 거기서 자리를 필 수나 있을런지. 하나, 아버지는 계속 '처음 하는 일인데, 배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며 자신의 부주의를 충분조건처럼 포장하려 들뿐, 마땅한 대안책은 염두에 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기껏 깨달은 이치란 것이 내심 창피했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가 그토록 우쭐하게 감춰뒀던 '진짜'가 이것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답답하다는 눈빛을 부여잡곤 놓을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요즘 경기 불황으로 이사를 밥 먹듯 할 정도인데, 그러면 당연히 폐기될 물건도 상당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더욱이 폐지와 고철값이 부쩍 올라 수입이 짭짤하지 않겠느냐며 확신을 증명하는 말들을 이어갔다. 말하는 내내, 아버지의 눈빛은 지난번 '블루오션'을 언급했을 때처럼 번뜩였다. 반면, 어머니의 얼굴은 믿고 싶고 믿어야만 하는 체념 어린 눈빛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이 장면이 내게 기이한 무늬를 남겨, 기필코 삭제되지 않으리란 예감에 휩싸였다.



  아버지는 아침일찍부터 메가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나는 자그마한 공을 튕기며, 그 소리를 몰래 훔쳐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아.'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났다. 나는 공을 한 번 '콩'하고 튕겼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쏟아내며, 다시 목을 골랐다. 나는 공을 두 번 튕기곤 제자리에서 한 바퀴 휙 하고 돌아, 재빨리 공을 잡았다. 아버지가 나를 쳐다봤다.


"웬 공이냐."


나는 가슴팍에 공을 꽉 안은 채, 대답했다.


"이번 가을 운동회 단체 무용이에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건, 저기 멀리서 해라.”


나는 조금 봐달라는 식으로 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봤다.


“지금, 녹음 중 이잖니."


나는 금세 시무룩해져 공을 옆구리에 끼곤 멀찍이 물러섰다. 아버지는 목에 낀 가래침을 뱉어내곤, 녹음에 집중했다. '아, 아.' 목소리는 한결 가볍고 여유로웠다. 나는 발을 모으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번엔 공을 양손으로 높이 추켜올린 뒤 좌우로 출렁이며 움직였다. 옆에선, '고장 난 세탁기, 티브이, 전자레인지, 냉장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어마다 힘이 바짝 들어 있어서 인지 아버지는 단어를 읊다 얼마 못가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말을 붙였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대답했다.


"왜 그러냐."


나는 자만 가득한 얼굴을 띄며 한 껏 부풀어 말을 걸었다.


"선생님이 제가 달리기를 잘한대요. 이번 운동회.."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확성기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시무룩해져 공을 머리 위로 높이 세게 던졌다. 고개를 치켜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공에 걸린 공은 밀도 있게 뭉쳐진 하나의 덩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다시금, 아버지가 말했다.


"고장 난 세탁기, 티브이, 전자레인지, 냉장고, 기타 가전제품.."


 공은 내 손을 벗어나 퉁퉁 바닥을 퉁기며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아버지는 '기타 가전제품 사압'하다 말고, 자신의 발목에 닿은 공을 화들짝 쳐다봤다. 그러곤 이내 힐끗 노려보았다. 나는 움츠러들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상냥하지도, 성질을 내지도 않은 무덤한 손으로 훌쩍 공을 던져 버리고는 문장을 재차 읽어나갔다. 나는 공이 멀리 떨어진 자리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공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도 어쩐지 초라해 보였다. 아버지의 입에선 같은 말들이 다시금 흘러나왔다. '고장 난 세탁기, 티브이, 전자레인지...' 나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 동작과 호흡을 꽉 붙들었다. 아버지는 신중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냉장고, 기타 가전제품..'같은 말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주변은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겨우 말끝을 맺으려 입을 벌렸다.


 "삽니다."


그제야, 나는 공을 힘껏 던져 올렸다. 공이 이대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동네 어귀, 사방에서 새어  나왔다. '고장 난'이라든가, '안 쓰는 물건'과 같은 말들을 매달고. 뭐가 됐든, 내가 다 거둬들이겠으니, 어서 팔아달라는 호소를 내비치며 말이다. 아버지는 '사겠다'는 말을 연신 퍼뜨리고 다니면서도, 전혀 그럴싸해 보이지 않았다. 구매자로서의 권위, 어떠한 위치.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또 소유함으로써 획득되는 무엇들이 없었다. 필요에 의한 구매일지라도, 지불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일종의 '자격'이. 상상력, 생활력 할 때 그 힘(力)이 갖는 구매력이 아버지에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판매하듯 구매를 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쥐어주며 돈을 지불했다. 나는 그러한 아버지의 태도가 부끄럽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건 '남의 돈 가져가는' 사람이 의당 취해야 할 자세였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을 의심으로 쌓아 올린 뒤, 제법 그럴듯함을 내보이는 아버지의 이치란 게, 생각보다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말들은 곳곳에서 새어 나왔고, 나는 매번 그 말들을 맞아야 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교실 창가에서도, 혹은 단체 무용을 하느라 공을 힘껏 내던지며 빙그르르 몸을 회전하는 순간에도, 그 말들은 쉬지 않고 불어왔다. 나는 좌우 대열에 맞춰 동작을 익히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말소리에 놀라 발을 헛짚을 때도 많았다. 물론, 그러한 말들에 반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것이었으므로, 나는 소리가 아닌 사람이 짓는 표정처럼 느껴졌던 탓이었다. 낡고 성급한 소리는 허공을 배회하다 내 앞에서 포개졌다. 그러곤 익히 보아온 아버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나만 알고, 나만 의식하게 되는 그런 얼굴로. 운동장 한복판에 등장한 아버지의 까만 얼굴은 새삼 남부끄러웠다. 어느 누구도 떠올릴 수 없음에도,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전시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아버지가 창피하진 않았다. 다만, 아버지를 향해 만들어낸 나의 추상적이고 명백한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면, 나는 황급히 얼굴을 가리듯 팔을 뻗어 동작의 순서를 되짚어 나갔다. 열심히 동작을 반복 시연하는 선생님은 벌을 서듯 고단해 보였다. 공은 일제히 떠오르다 가라앉길 되풀었다. 혹은 바닥을 세차게 튕기며 '퉁' 소리를 내며 아버지의 목소리를 밀어냈다. 딛고 있는 세계의 부피는 점차 팽창하는 중이었고, 그렇게 내몰린 아버지의 말들은 계절처럼 지치지 않고 동네를 돌아 다시금 도착했다.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한동안 트럭에 수북한 폐지를 이고 다녔다. 이따금씩 고장 난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몇몇 사소한 가전제품을 실은 적도 있긴 했으나,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철과 비철을 구분할 줄 알았지만, 비철 중에서 신주, 동, 납, 양은, 알루미늄, 스텐을 구분할 줄을 잘 몰랐다. 접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변변한 거래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에게 선뜻 가져가라며 큰 고물을 건네주는 지인도 없었다. 아버지는 고물행상을 다니며, 얻어온 것들을 소상에 내다 넘겼다. 아는 대로 깎고, 부르는 대로 받아가며 팔아 치워버린 것이었다. 틈나는 대로 근처 공단 일대에 명함을 돌리며, 소위 말하는 영업을 뛰었고 하루에 열댓 번은 넘게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고물을 수집하러 정처 없이 시골로 내려가, 며칠씩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묵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벌여놓곤, 정말 바닥에 머리만 박아대고 있었다. 그 사이, 날은 식어가고 바람은 늘상 불어왔다. 한 동안 대차게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한 날이 아닌 한 생을 뛰어 넘어온 느낌이 들만큼 안개가 짙을 적도 있었다. 하루는 날마다 어김없이 하루 분의 몫을 내놓았고, 아버지는 하루 분의 몫을 사는 사람이라 성실히 그을려갔다. 그건 우주가 작동하는 거대한 원리이자 동시에,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내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부득이함 같았다. 그래선지 아버지의 노동에선, 노동이 갖는 숭고함과는 별개로 마지못한 하찮음이 느껴졌다. 노동의 질이나 환경과는 상관이 없었다. 사람이 자식을 낳고 또 기르는 듯, 주기를 거치고 순환을 만들어내며, 태고부터 이어져온 삶의 방식처럼. 우리가 예상하는 너무나 뻔한 말들처럼, 그저 식상한 경이가 술렁이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점차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신문 한 면에 실린 ‘재생산업 열풍'이라는 말과 폭등하는 고철값에 관한 기사를 번뜩해 읽어 내려갔던, 바로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을지 몰랐다. 혹은, 결함 가득한 '이치'를 예의 바르게 듣던 내 몸가짐을 못내 원망한다거나, 돌연 '나는 왜 이모양인가' 싶어져 서럽게 눈물을 찔끔 짜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아버지는 좀처럼 고물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신나게 줍고 얻어온 고물들을 분류해 팔아 보겠다고, 외곽지역에서 며칠 열심히 뜯고 분해하며 야적하다 그곳이 그린벨트였던 바람에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던 날은, 아버지는 정말 죽을 작정이었다. 하나 그 죽음을 어머니는 위로나 격려로 달랜 것이 아니라, '그럼 그렇지'라든가, '돈 벌 줄을 모르면, 쏟지라도 말아야지.'하며 성질을 돋워 어거지로 일으켜 세웠다. 훗날 어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당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영영 주저앉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사람이 다리가 한 번 접히면, 피기가 힘들다고. 어떻게든 피고 있어야 다음 동작에 수고가 덜 든다고. 주저앉아 버릇하면, 그다음부턴 낙담에 맥이 풀려 걷지를 못한다고. 말하자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기꺼이 제 목에 이고서라도 걷기를 자처한 거였다.


 아버지는 다리를 채 피지도, 온전히 물러앉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삶에 애착이란 걸 다시금 쌓아갔다. 하지만, 애착은 조금 쌓일 성싶으면 금세 부서져 내렸고, 때론 자기파괴적으로 혹독하리만큼 비관적으로 굴었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이, 사랑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내 무너져 내렸을 때 흔히 보이는 반응이었다. 어떤 미움과 회의는, 그런 방식으로 태어나기 마련이었다. 대상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와 혐오가 아닌 애착의 낙차로, 그 반동을 이고 솟아난다. 아버지는 며칠을 쭉 내리 잔다던가, 술에 취해 들어와 온갖 주정을 부렸다. '실은, 기대 한 번 바란 적 없다'는 투로 그랬다. 재차 삶의 영역을 마련하고, 다지는 데엔 이해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이해 속엔 어떤 후회가 수시로 감지되는 터라 지나치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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