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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04. 2018

상냥한 백색(1)

 어머니의 얼굴은 무슨 티를 부리려는 듯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눈두덩이 위, 퍼런 쉐도우가 무른 자국처럼 번져 있었고, 입술엔 탁한 고동빛이 돌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뭐랄까, 좀 과감해 보였다. 처음,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괜히 무서워 위축됐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괴하다던가, 흉측스럽게 느껴진 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순수한 무지에 가까웠다. 집에서 나고 자라, 시대의 유행이나 양식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다른 날보다 유독 과시적이었으므로 창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놓치지 않으려 손을 꼭 쥐었다. 손바닥 안쪽으로 금세 땀이 찼다. 어머니는 도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겨우 그만큼의 너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너비는 내가 아는 것의 폭이기도 해, 나는 기껏해야 동네 비슷한 광경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언 손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잠시 외로워지는 것 같았다.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고개를 틀어 주위를 살폈다. 건물은 모두 지루할 정도로 일관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 나는 눈을 흘기며, 훗날 퍽 그리워질 시대의 질감들을 의지와는 상관없이 게을리 수집해나갔다. 나는 그곳에 여태껏 있어 왔고, 또 그럴 것이란 확신 하에 사방을 등지고 무신경하게 지나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뭔갈 깨닫고 후회하기엔 아는 것이 없었고, 너무 어렸다.


 어머니가 나를 데려간 곳은 근처 초등학교였다. 건물은 아이들이 일으킨 매운 먼지바람에 가려져 조금 아마득해 보였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물끄러미 주시했다. 호기심보다 경계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거나 소릴지르며. 때론 넘어지고 시비를 가리며 각자의 행동을 이어갔다. 우리는 난데없이 밀고 들어오는 물살에 휘말린 양, 그럼에도 침착하게 무언가를 판별하려는 듯 단단히 버티고 서 있었다. 어제와 비슷한 밝기로 해는 높이 떠 있었고, 눈앞의 광경은 어제와 같지 않아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곧 여기서 공부하고, 놀고 그럴 거다."


 어머니의 그 말. 느긋한 암시가 담긴 그 말덕에, 나는 이 장면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곧이어, 운동장 한가운데로 조악한 종소리가 쏟아졌다. 잡음 섞인 멜로디는 시끄러우면서도, 아주 먼 과거를 회상하게끔 만드는 애잔한 면이 있었다. 아이들은 달아나듯, 혹은 무언가에 홀린 양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산스럽고 또 신속했다. 일제히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은 내게 부러움과 동시에 허망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들이 거기서 무얼 하는지 몰랐기에 섣불리 따라나설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한동안, 텅 빈 운동장을 서성였다. 창가 너머론 조용히 앉아 부지런히 뭔갈 받아 적는 뒤통수가 설핏 비쳤다. 내 발이 다 가질 수 없을 만큼 운동장은 넓었고, 하여 아이들의 머리는 오래 출렁였다. 조금 경직돼 갑갑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그들을 어른스럽게 만들어주는 것도 같았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규칙과 순응이. 어떤 순조로운 공감이 나는 내심 부러웠다. 날이 더워, 어머니의 목덜미로 땀방울이 날연히 흘러내렸다. 나는 어머니의 몸에 기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이제껏 보아온 장면들을 다시금 훑어 나갔다.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고, 할 수 없다면 언제까지 보고라도 싶은 광경이었다.



 나는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도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앳된 선생님은 배정된 학급 팻말을 든 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진 아이들을 달래느라 바빴다. 울음은 아이에게 전염성이 높아, 자칫 한 아이라도 울게 된다면 삽시간에 번지리란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그곳에 세워둔 후, 멀찍이 물러섰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칭얼댔다. 그리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마음 같아선 어머니를 당장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안심시키려 꾸준히 짓는 미소가 사뭇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토록 탐내던 어떤 소속감이, 질서가 썩 좋지 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수많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이 지나갔다. 가끔, 숨 고르듯 몇 없는 기념일을 속속들이 챙겨가면서 말이다. 보다 아는 것이 많아져 이제는 후회도 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후회란 것도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한에서만 표하는 안타까움이 대부분이었다. 진짜, 후회라 할 만한 것들은 따로 있었다. 그즈음, 우리 집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건 한 가계의 불행이자, 시대의 곤경이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게에 짓눌려 신음을 뱉듯, 하루 종일 한숨을 토해냈다. 후회를 하고, 자조적인 연민을 표하고. 이미 지난 시간을 불러와 서로 흉을 봤다. 현재의 결과에서 원인을 도출한 후, 그 원인을 다시 결과의 자리로 가져와 그보다 더 오랜 원인을 찾아 또 후회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난 것을 후회했고, 나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다'는 거였다. 반면에, 아버지는 자신이 이직한 직장을 후회했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 전망조차 밝지 않은 산업에 발을 들였다.'는 요지였다.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살아온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그러한 시간을 거슬러 부정할 일도 갖가지였다. 후회의 이유는 단순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그리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에 와서야 이토록 후회한다 한들 소용이 없는 것은, 언제나 후회란 사후(事後)에 검증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한이 섞인 말을 가만히 듣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쳤고, 그러다 보면 하는 수 없이 울고 싶어 졌다. 한 때의 시간을, 단숨에 잘라버리려 하는 데에. 더구나 그 시절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라는 데에 큰 서글픔을 느꼈다. 산 날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거진 다 기억할 수 있었지만, 마치 그것이 별 필요도, 쓸모도 없다고 일러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슬픔에 끼워진 서표, 하나의 단락이 되어버린 듯했다.


 어머니는 동네를 종일 어슬렁거리며 정보를 수집하고, 일거리를 받아왔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번듯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뜻은 아니다. 일감이 드는 대로, 일손이 부족한 대로 어머니는 충원하듯 빈자리에 앉혀 일시적으로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선지, 어머니는 누군가의 대리인이자 수많은 죄를 대신해 짊어진 수난자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자신이 둘러멘 수고의 무게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여, 아버지의 등짝을 발로 툭툭 건드리거나 손으로 쳐가며 곧 잘 티내길 잘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돈이 제 발로 찾아 오냐',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지.' 어머니가 아버지를 다그치고 나무라는 데엔, 평소 타인에게 함부로 위로받는 성격이 못 된다는 점도 있었지만, 괜한 감정으로 보답받길 원치 않을 만큼 생계가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처음,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불편이 서러워 혼자 넋두리를 늘어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한 번을 흔들리지 않았다. 어쭙잖은 위로라도 절대 건네지 않았다. 도리어, "지금 누구 앞에서 신세타령을 하냐"며 매섭게 쏘아붙이곤 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신문지의 구직란을 살피거나 내게 이런저런 교훈을 늘어놓는 일을 정말 일처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어디서도 들어 볼 수 없는 '진짜' 가르침을 꼬박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늘 아는 것이 많은 오만 가득 한 눈빛과 함께, 지금의 곤궁한 처지는 아주 작은 실수나 우연, 예기치 못한 착오 탓이라는 듯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고, 머지않아 그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공연히 내비치며 말이다. 아버지의 말은 하나같이 시답잖고, 지루했다. 그럼에도, 나는 가만히 버티고 앉아 주의를 기울였다. 혹여 내가 그 말을 정말 시답잖게 흘려 들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크게 상처받을까 싶어서였다.


딱 한 번 솔깃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점잖은 자세로 말을 꺼냈다.


"성공이 뭔 줄 아니."


나는 성공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성공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간절히 바라는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건 말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바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나는 '과연'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이어서, 더 비장해져 물었다.


"그럼 넌,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는지 아니?"


나는 알 수 없었다. 동시에 그게 무얼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돈을 쥐어본 줄만 알았지, 벌어본 적은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앉아 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건 바로"


이번에는 진심을 다해 기대에 찬 눈빛을 쏘아 보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귀찮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겉으로, '그런가요, 아버지' 수긍하면서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어정쩡하게 까딱였다. 무릇 아버지가 이해한 블루오션(Blue ocean)이란 이랬다.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꺼려하는 일을 찾아 하라고. 그래야 돈이 되고, 불필요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상하고도 기막힌 논리에 감탄하다, 이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가계의 빈곤이 아버지의 귀찮음 탓이란 말인가, 싶어서였다. 다행히, 우리의 가난은 아버지의 만성적인 귀찮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말에 감춰진 진정한 속뜻도 '아버지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실은 당연하다' 쯤에 더욱 가닿을지 몰랐다. 아버지는 세상살이의 원리를 영리히게 파악한 것 같아 우쭐해져 있었지만, 그건 시스템이 얼마나 간사하고 기민하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형편없는 고백과 다를 게 없었다. 세상 돈 냄새는 그런 어설픈 영리함으로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것이니까. 돈 낀 일에 사람이 안 낄 리 없고, 돈 난 곳엔 언제나 사람도 나기 마련이니까. 다시 말해, 아버지는 아직 뭘 모르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몇 주, 한 달이 흘렀다. 아버지의 허풍은 계속됐다. 아버지는 여전히 당첨된 복권을 쥔 사람처럼 그 사실을 내게만 실토하듯 은밀하게, 진짜 '가르침'을 연설했다. 나는 매번 진지하게 아버지의 허풍을 귀 기울여 들었다. 결국, 나중에 가서야 그 초라함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길에서 우연히 듣고만 철 지난 유행가처럼, 그런 볼품없는 소리가 아쉬울 적도 있었다. 허무맹랑한 말들이 갖는 특유의 경쾌함과 더불어, 진지하면서도 혹여 그 진중함 안감에 숨겨진 허황이 들킬까 애써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태도가 우습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성의껏 주억이는 고개를 보곤, 어김없이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심 권위나 어떤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느 땐, 자신이 내놓은 말들에 단단히 힘을 줘 강조하기까지 했는데, 특히 '이치'라는 말을 자주 써 버릇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바로, 세상 이치라는 거다. 이치."  


 이치란 말은 무척 무결하고, 말 스스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논리를 갖춘 것만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말들이 전부 가짜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치'라는 말만은 너무 사실적이고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건 아버지의 허풍 중 '거짓'이 아닌 유일한 '진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빤한 말들 앞에서 어쩌다 경외심이 들었다면, 분명 '이치'라는 단어 그 자체였을 거였다. 그러니, 아버지가 '이치'란 말을 꼬박 썼던 까닭은. 논리의 부실함에 아랑곳 않고, 끝내 그러한 말을 집어 든 연유는, 아마도 그 '이치'에 조금이나마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소문이 소문이라 설득력을 갖는 것도, 때론 논리 정연함이 아니라 일종의 가벼움이니까.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별 수 없다는 식의. 소문은 거짓이 되지 않을 만큼의 당위만 있으면, 누구도 설득하려 한 적 없다는 바로 그 태연함으로 사람들을 믿게끔 만드니까. 마찬가지로, 아버지 역시 태생지를 알 수 없는 풍문처럼 대부분을 의심으로 쌓아 올린 뒤, '이치'라는 말을 꺼내 허풍에 약간의 그럴싸함을 내보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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