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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08. 2018

바다에 안부를 묻는 일(3)

 아이는 혼자 남아 집으로 돌아갔다. 사내를 쫓아가 손이라도 흔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심문이라도 당하듯 마음이 초조했던 까닭이었다. 이른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들고 걸었다. 크게 야단을 맞고 내쫓긴 것 마냥 약간의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리고 곰곰이 지난 일에 대해 떠올렸다. 크게 잘못된 건 없어 보였지만, 그러한 방심이 큰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판단하면서도, 아이로선 사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는 자주 한 숨을 내쉬었다. 매운탕 집을지나, 또 다른 매운탕 집과 횟집 서너 곳을 더 지나쳤다. 보폭은 좁고, 걸음은 느렸다. 보던 길이고, 가던 길인데 오늘은 낯설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저 어디선가, 거침없는 욕설이 들려왔다. 아이는 놀라 화들짝 고개를 틀었다. 시비가 난 모양이었다. 불콰해진 얼굴로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채, '이 씨발.'하며 사람을 향해 내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풀벌레가 울고, 간간히 파도소리가 얹혀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어이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이는 울음을 참으려, 멀리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사람 눈처럼, 검게 시든 하늘이 눈에 보였다. 아무런 대답도 바라지 말라는 단호한 눈빛 같다.


 집은 컴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이는 지루함이 주는 적막함과는 별개로, 힘겨이 다가오는 침묵을 느꼈다. 안방에서는 빛 한점 새어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할머니."


 말 들은 텅 빈 허공을 길게 가로질렀다. 아이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그 말들에 초조함을 느꼈다. 아무런 대꾸도 들리지 않자, 아이는 다시 한번 소리 내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이번엔 안방에서 어렴풋한 기척이 들렸다. 아이는 다소 안심한 상태로, 안방 앞으로 가 귀를 기울였다. 철썩. 기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는 곧장 방 문을 열었다.


 아이가 문을 연 순간, 지독한 악취가 몸을 훑듯 쏟아졌다. 공기에 점성이 느껴질 만큼, 냄새가 심했다.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치곤 퍽 불쾌하고 지독한 냄새였다. 아이는 당장 표정을 찡그리며 방안을 재빠르게 둘러봤다. 제때 헹구지 않아, 오줌이 늘러붙은 요강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취한 듯 의식 없이 몸을 좌우로 뒤척였다. 철썩,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몸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부드럽게 휜 등뼈 뒤로, 요에 노랗게 젖은 자국이 눈에 집혔다. 아이는 할머니에게로 가 몸을 흔들었다. 할머니는 눈을 반쯤 뜨다, 다시 기운 없이 스르르 감았다.


"할머니, 일어나 봐."


 할머니가 가까스로 입을 떼 뭐라 중얼거렸다. 온전치 않은, 의미 없는 말이었다. 아이는 그와 상관없이 할머니를 더 격하게 떠밀었다. 눈에 초점이 잡히고, 서서히 의식에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냄새를 하도 맡아, 아이는 머리가 저렸다. 그럼에도 자리를 떠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는 아이가 낸 소리에 놀라 황급히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위태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할머니는 정신없이 잠을 잔 터라, 약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밖을 보니 이미 해가 저물어 까마득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그러곤 이내, 축축이 젖은 기운을 느꼈다. 순간, 할머니는 놀라 요를 밖으로 밀쳐냈다. 부끄러움, 창피함에 얼굴이 뜨거웠지만서도,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설령 아이가 개의치 않는다 해도, 그건 철저히 개인의 문제였다. 어쩔 수 없고 마땅한 일이라 해도, 어느 일들은 그런 자연스러운 수순을 거부하고 모른 채 살고 싶었다. 아이는 거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곤 할머니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내심 다행인 마음이 들었지만, 또 쉽사리 안도하지 않았다. 아이는 직감적으로 할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차렸다.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기보다 조금 덜 떼쓰고, 조금 더 곁에 머물러야겠다는 정도였다. 할머니는 요를 대충 말아 방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할미 냄새난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두 눈엔 물기가 가득했다. 할머니는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어여 가 밥이나 먹자."



 그 밤. 아이는 할머니와 모처럼 단 둘이 방안에 드러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놨다. 사내가 자신에게 들려준 소리와, 말들, 그에 수시로 뒤척여야 했던 불면의 밤들에 대해서. 할머니는 얌전히 주워듣다 가끔 구성진 소리로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냐'던가, '어쩌냐'던가 하는 식이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잘 모르는 아버지 관한 흉을 봤다. 듣고 있자면 든든하고 믿음직해 보이던 아버지가 무슨 소릴해도 가볍게 비웃어 넘길 만큼 아주 조그맣게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아이 할애비가 고약하기로 동네에 소문이나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던 얘기와 태어났지만 살지는 못한 자식들에 관한 얘기를 늘어놨다. 그 자식들 중 하나는 애가 벤 줄도 모르고 고된 밭일을 하다 유산이 된 아이도, 무척 예쁘고 고와 이르게 하늘이 데려간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어떤 가난과 시대에 관해서도 아이는 주의 깊게 들었다. 물 붓듯 쏟아지는 삶을 착실히 쌓아보진 못했으나, 그래도 간신히 받아냈다는 특유의 긍지 같은 게 말끝마다 배어 있었다. 아이는 바르게 들으며, 할머니의 얼굴을 몰래 훔쳐 살펴봤다. 할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 모든 감정을 걷어낸 사람처럼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실은 '거짓'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정연한 태도였다. 어떠한 감각 한쪽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무엇이 할머니를 그리 초연하게 만든 걸까, 아이는 궁금했다. '다 지난 일이다, 지난 일.'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되풀어도. 그래도,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할 일들도 있을 텐데 그런 건 누가 어떻게 해결해주나. 어쩌면, 무엇도 해결한 것 없이. 이해나 납득한 적도, 바란 적도 없이 그저 모른 척 살고 있는 걸까. 아이는 울지 않는 할머니가, 왠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할머니가 제 눈앞에서 울음을 쏟아냈을 때, 아이는 돌연 생경해져 어쩔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허기에 눈이 떠졌을 때 아이는 문틈으로 밀려들어오는 작은 기척을 느꼈다. 일어나 먼저 요강을 비울 요량이었는데, 요강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어딘가 사뭇 어색해진 분위기를 뒤적이며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일찍부터 빨래를 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콘크리트 마당 한 구석, 말끔하게 헹궈 놓은 요강도 눈에 띄었다. 한데 아무도 없는 와중, 할머니는 혼자 무어라 말을 걸어 버릇하는 것 같았다. 한탄하는 일이 대게 그렇듯, 자책하는 말투로였다. 아이는 그 소리를 몰래 주워 들었다. 말의 마디가 점점 흐려지고, 추위를 타듯 말 끝이 떨렸다. 할머니는 곧 뭉개지는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손엔 널다 만 팬티 자락을 쥔 채였다. 젖은 팬티에선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그 모습이 참 슬프다고 생각했다. 울음은 아이의 마음 한 켠에 걸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가도 어설프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경계를 넘나들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어떤 과정 속에 갇힌 사람 같았다. 아이는 농담 사이 불쑥 드러난 진담처럼 이내 선득해졌다. 새가 날아들고 젖은 옷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울음은 소리가 작아 동네의 활력이 되지 못했다. 마당 위론 생선 핏자국이 묽게 번져 있었다. 한 껏 내리쬐는 볕에 아이의 이마가 뜨거웠다.


 그때부터였다. 아이는 할머니와 종종 먼 바다를 찾았다. 이곳에 온지도 꽤 되었는데도, 둘이 함께 바닷바람을 맞는 건 처음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던 까닭이었다.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리곤 바다의 맛을 봤다. 할머니 역시 그런 아이를 따라 혀를 내밀어 바다를 음미했다. 짠 기운이 몸속으로 물씬 들어왔다. 아이는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했던 말을 또 했다. 가끔 울컥 짠내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괜한 요의를 느꼈다. 물 위론 기포처럼 자글자글 빛이 울었다. 여느 날과 같이 바다는 자신의 속내를 컴컴히 숨기고 침묵했다.


 하루, 이틀, 몇 밤에 걸쳐, 할머니와 아이는 바다와 마주 앉아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할머니는 그 말들을 까맣게 잊은 듯 다시금 들어줬다. 이제는 여행객들도 거진 다 떠나 외지인이라곤 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제 말을 꼬박 집중해 열심히 듣는 할머니와는 달리, 따분한 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주억거리며 집중해 들어준다 해도, 스스로 반복적으로 되푸는 말이 영 지겨웠던 탓이었다. 아이는 뭔가 새로운 말을. 이전에도 해보지 못하고, 또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신선한 충격 같은 걸 주고 싶었다. 아이는 멍하니 바다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허튼 말을 뱉고 말았다.


"할머니, 수영할래?"


할머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놀라고만 쪽은 아이였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러자'는 것이었다.


 아이는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한편, 할머니는 신을 벗어 구석에 가지런히 개어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이는 제 말에 책임을 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신을 벗기 시작했다. 다행히 물살은 거칠지 않았다. 발 한 폭에 바다를 딛고 올라설 수 있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바다는 깊은 그늘을 간직한 채 둥둥 떠 있었다. 저만치 앞서가던 할머니는, 뒤돌아 아이에게 손짓했다. 이리오란 뜻이었다.


 서늘한 기운이 발끝에 닿자, 아이는 소스라쳤다. 할머니는 덤덤히 다음 걸음을 짚었다. 할머니는 바다에 들어가며 몸 한 번 움츠리지 않았다. 무언갈 갈아타듯 자연스럽게 흡수되어갔다. 바닷물은 발바닥 위로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점점 눅눅히 젖어가는 걸 느끼곤, 요의에 고추가 저릿했다. 할머니는 어떠한 말도, 반응도 없었다. 걸음에 주저가 없었고, 그래서 몸은 빠르게 젖어들었다. 아이는 저 혼자 다급해진 나머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벌써, 무릎이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괜찮냐. 이정돈 괜찮아, 할머니. 바다는 가만히 서 있고, 둘은 바다를 더욱 끌어안았다. 아이는 견디고, 또 참으려 몸에 바짝 힘을 줬다. 할머니의 허벅지께 닿았을 즈음, 아이는 이미 배꼽까지 가라앉은 뒤였다. 아이는 슬슬 숨이 찼다. 수면 위로 손을 찰방이며 간신히 걸음을 이었다. 바람은 둘의 정수리를 가볍게 훑곤 멀리 흩어졌다. 물표면이 눈부셨다.



 아이는 뿌리처럼 제 몸을 성실히 기어올라오는 물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가슴팍까지 찬 물에 호흡이 서서히 가팔랐다. 발 끝 모서리가 허공에 뜨자,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목 밑으로 칼을 댄 듯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왜, 아가. 할머니 나 발이 안 닿아 무서워. 할머니는 곧 아이를 손에 받쳐 등에 업었다. 아이는 할머니 등에 볼을 부비며 품을 파고들었다. 할머니 몸이 비늘 같아. 물고기처럼. 그 말을 하는데, 엷게 웃음이 번진 할머니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 할머니, 할머니 안 차가워? 할미는 안 춥지. 할머니는 더 깊게 물속을 걸어 들어갔다. 아이는 조금 겁에 질려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나가자, 힘들잖아.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몇 발자국 걸음을 더 디뎠다. 아이는 계속 ‘할머니, 할머니.’하며 어떤 다급함을 표했다. 어죽을 처음 입에 댔을 때처럼, 아이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할머니, 할머니. 파도소리가 철썩, 들렸다. 할머니, 이제 가자 늦었어. 할머니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저쪽 먼 곳을 바라봤다. 몸이 천천히 뜨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물이 출렁이며 아이의 턱을 건드렸다. 할머니, 할머니. 무서워 오줌이 지릴듯한 아이와 달리, 할머니는 물살을 간신히 몸으로 받고 있으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왜 아가.”


아이는 했던 말을 또 하길 잘했고, 하여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괜찮아?”

“할미...”


할머니는 정면을 주시한 채, 마저 말을 꺼냈다.


“할미 아퍼, 아퍼 죽겠어.”


 할머니의 뒤통수 위로 드러난 빛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아이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괜찮냐고 물어본 뒤, 처음 접해본 대답이었다. 아이는 마음이 엉키고, 구겨지고, 말이 흩어져 어질러지는 걸 느꼈다. 아이는 미약한 멀미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아이가 여태껏 들어본 말 중, 가장 무게감을 지닌 말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했던 말을 다시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아파?”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하나 그것은 아프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하든, 스스로에게 먼저 묻게끔 만들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어떡하냐'는 말도, '그만 나가자'는 말도, '아프지 말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이제껏 견뎌왔을 '괜찮다'는 말의 안감이 어렴풋이 매만져졌다. 그러자, 느닷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부끄럽다거나, 창피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잘 모르는 감정에 격양된 탓이었다. 별안간 아이의 눈덩이 속으로 물이 가득 고였다. 마음에 물이 찼다.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서글픈 소리를 냈다. 그러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아가, 왜 울어. 할머니가 어르듯 등을 들썩였다. 철썩, 파도소리가 났다. 아이는 울지 말라는 말이 서러워 더 크게 울어댔다. 누군가 듣고, 꼭 응답해줘야 할 것마냥 서럽게. 울음은 물 한복판에서, 갈 길 잃은 사람처럼 먹먹히 울려 퍼졌다. 할머니의 등을 부여잡느라, 아이는 눈물을 채 훔치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할머니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려 하늘 어디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것 봐라, 아가. 허공을 향하는 손 위로, 빛을 등진 새가 퍼득이며 날아다녔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울음은 질기도록 이어졌다. 아이는 울면서도 숨이 차 헐떡거렸다. 물 마시듯 숨을 삼켰다. 할머니는 발꿈치를 들썩이며 아이를 달랬다. 울지 마라, 아가. 울지 마라.


 이제, 이곳에서 더 이상 아이의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건 아이가 성숙해졌다는 뜻도, 할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아이가 이곳에 없다는 것뿐이다. 아이는 할머니와 작별하기 전,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던 대낮이었다. 울음은 길 한복판에서 드센 파도소리마냥 파다하게 떠다녔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좀 무안했다. 자신이 마치 불청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제 목구멍에서 자꾸만 걸리는. 나오려다 도로 몸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말들에 애를 먹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서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려, 왜. 아이는 다시 한번 울음을 꾹 누르고 입을 뗐다. 할머니. 그러곤 다음 말을 생각했다. 사내가 작별하며 남긴 말 중, 아이가 퍽 안심했던. 그 밤, 아이를 지탱해준 어떤 말과 마음 같은 것을 떠올렸다. 하나, 그러한 말들은 동시에 아이가 줄 곧 의심했던 말이기도 했다. 사내가 남긴 말은 며칠간,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문득, 아이는 그간 사무쳤던 밤들이 기억났다.


"어여 가."


할머니가 말했다. 아이의 입에서 울음이 찔끔 새어 나왔다.


"어여 가, 춥다."


 할머니가 손을 들어 내쫓듯 저리 가라 휘저었다. 아이는 도무지 떠오르는지 않는 말들을 까맣게 잊은 채,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손 사이로 소금기가 벤 바람이 입맛을 다시며 불었다. 며칠은,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남겨질 무료함에, 동네는 벌써부터 지루해 보였다. 땅 끝 어디선가 철썩, 하는 파도소리가 아프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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