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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01. 2018

바다에 안부를 묻는 일(2)

 아이는 그 밤. 그 말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이는 사내를 만나곤 불면이 길었다. 밤이 무서워 곧 잘 잠에 들곤 했는데 요즘 들어 통 잘 생각을 안 했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가 걱정스럽긴 했지만서도,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교통의 정차처럼, 아주 짧은. 일시적인 일이라 여겨서였다. 또 놀 것 없는 곳에서 마냥 늦게까지 눈 뜬 일이 생겼다는 것도 썩 나쁘진 않았다.


"할머니."

"왜."


한적한 방 안. 말들은 길게 허공을 그으며 떠다녔다.


"저 형, 뭘 찾으러 왔나 봐."

"찾으러?"


할머니가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한 손으론 종아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뭘 잃어버렸길래 여까지 찾으러 와?"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무척 중요한 건가 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어."

"몰라, 그냥.."


아이는 좀 전 사내의 얼굴 위로 설핏 드러났던, 무언갈 계속 연상하게끔 만드는 표정을 떠올렸다.


"그냥, 그래 보였어. 그런데, 할머니."

"왜”

"요강은 왜 다시 꺼냈어. 나 괜찮아. 안 무서워."


 아이는 자신의 머리맡에 놓인 요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제례식 화장실을 가지 못해 아이가 썼던 것이었다. 당시, 시골의 밤도 밤이지만 까맣게 쪼그라든 악취가 벤 컴컴함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무서웠다. 아이는 점차 이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어둠이 익숙해졌다. 우리가 보통 '하루'라 부르는 양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알았고, 밤이 무서운 이유가 실은 공포가 아닌 지루함이라는 걸 배웠다. 요강을 다락에 다시 놓아둘 때 즈음엔, 아이는 예전과 사뭇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성숙 해졌다기보다는, 제 또래 애들보다 조금 덜 놀라고, 조금 덜 무서워했다.


"할미가 쓰려고 가져다 놨어, 할미가."

"할머니가?"

"그래, 할미가. 무서워서 가져다 놨어."


 아이는 할머니가 돌연 요강을 쓰는 일이 의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도 가끔 정체모를 사나운 꿈을 꾸고 나면, 요강을 찾았으니까. 할머니가 요즘 밤잠도 밤잠이고 낮잠도 많아져, 악몽을 많이 꾸나보다, 그렇게 이해했다.


"할머니 근데, 냄새나."

"할미가 내일 아침에 비울게, 오늘은 그냥 자."

"냄새나는데.."


 아이는 자신이 쓸 땐 몰랐는데, 노폐물의 악취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걸 느꼈다. 그건 제 냄새가 아니여서가 아닌, 정말로 냄새가 참기 힘들 만큼 지독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곤히 잠을 청했다. 잘 맡지 못하는 건지, 참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긴 밤. 불면에 수척해진, 더없이 피로한 밤. 대낮에 들려오는 소음처럼, 냄새가 아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이는 불쾌한 얼굴로 밤을 지새웠다.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여전히 까맣고, 사내는 여전히 하얬다. 틈이 나면 바다를 찾았고, 파도는 동작이 커 시간이 잘 흘렀다. 반쯤은 지루하고, 반쯤은 견딜만한 하루였다. 시간의 결이 완만하게 흐르고 있었다. 지난번 잘 있던 아이에게 부모로부터 모처럼 연락이 와, 떠들썩 운 적도 있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할머니가 자꾸 잊어먹는 바람에 매 하루마다 요강을 대신 비웠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기색을 표했지만, 아이는 딱히 그런 말을 내켜하지 않았다. 그건 아이에게 호의이기 이전 버겁게 다가오는 하나의 불쾌였기 때문이었다. 또 며칠 전부턴 알 수 없는 소리로 길게 잠꼬대를 하곤 했는데, 그것도 아이에겐 꽤나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잠을 잘 자다 벌떡 일어나 뭔갈 급히 찾는 다던가, 자꾸 이상한 말을 경황없이 늘어놓는 식이었다. 그럴 땐, 아이가 '할머니, 할머니' 크게 불러도 소용없었다. 딴 세계에 갇힌 사람처럼, 할머니는 저 혼자 허우적대다 기절하듯 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통 심란해 잠을 잘 수 없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는 무서웠다.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더구나 그런 할머니와 단 둘이 한 방에 있다는 사실도 약간 겁이 났다.


 그래선지 아이는 최근 들어 사내의 방에 자주 들락였다. 사내와의 사이가 보다 애틋해졌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무언가와 멀어지기 위해. 기꺼이 결별하고, 또 잊기 위해 아이는 다른 한쪽으로 거리를 좁혀가고 있던 것 뿐이었다. 사내가 떠나기 근 일주일 간은 거의 살다시피 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아이의 오해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끊임없는 이해와 배려, 요구에 지쳐가던 때. 마침, 할머니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무렵. 아이는 점점 할머니가 꺼려졌다. 이제는 할머니가 손으로 집어 떠 먹이는 음식들도 선뜻 받아먹지 않았다. 한 번은 손주 새끼 입에 넣어주고 싶다며 딸기를 들이댄 적도 있었는데, 그때 아이는 무척 난감했다.


“이거 먹어라.”


 할머니의 손에는 이쁘게 꼭지가 잘린 딸기 한 알이 들려있었다. 하나 아이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바로 할머니의 손이었다. 아이는 한사코 받아먹고 싶지 않았다. 냄새도 냄새일뿐더러, 손등에 핀 검버섯이 아이는 돌연 불청결하게 여겨졌다.


“괜찮아, 할머니. 배 안고파.”

“또 나중 가서 먹고 싶다 떼쓰지 말고, 어여 먹어.”


 아이는 고개를 숙이곤, 그 소릴 못 들은 척 흘러 넘기려 애썼다.


“할머니 일 두 번 시키지 말고, 줄 때 먹어. 얼른.”


 따지고 보면 이제껏 먹어온 밥이 몇 낀데. 그런데도, 아이는 입에 음식을 들이기가 껄끄러웠다. 그동안 아이의 입에 들인 할머니의 정성이 무안할 정도로 그랬다. 아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곤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아서 먹을게 할머니. 할머니 먼저 먹어, 밥 안 먹었잖아.”


 아이는 할머니가 상처받을까 걱정됐다. 해서, 아이는 자신의 거북함을 숨기려 걱정하는 투로 할머니를 속 깊게 나무랐다. '할머니 요즘 아프잖아.', '할머니 빨리 나아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여 자신의 의도가 들킬까 초조했다. 아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안색을 살폈다. 할머니는 의외로 감동하는 눈치였다. 아이는 이때다 싶어 얼른 딸기를 집어 들곤 할머니의 입가로 가져갔다. 할머니는 아이의 작은 엉덩이를 툭툭 치며 '할미도 챙겨주고, 다 컸네.' 했다. 아이는 그와 상관없이, 다시 한번 분명히 하듯 재차 말을 꺼냈다.


"나는 내가 알아서 먹을게, 할머니 먼저 먹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겠다' 말했지만, 그래서 할머니는 '얘가 다 컸다'고 장하다 여겼지만, 사실 아이로선 싫은 티를 부린 거였다. 하루 이틀, 아이는 선심 쓰듯 어물쩍 상황을 넘겼다. 할머니도 더 이상 아이에게 손수 뭔갈 권하려 들거나 하지 않았다. 아이가 정말 '다 컸다'고 여겨서는 아니었다. 다만, 매운탕집 저녁때를 치르고 돌아온 어느 날. 아이가 마루에 누워 사내가 주는 사과를 선선히 받아먹는 걸 본 직후였다. 피로가 가득 낀 얼굴로 멀찍이 건너보는데, 할머니는 괜히 몸에 힘이 빠져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서운한 나머지 홧김에 야단을 치고 말았다.


"그렇게 좋으면 가서 살어!"


 물론, 아이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할머니가 그랬듯, 아이 역시 말에 속아 "정말?"하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마당 수도에서 발바닥과 얼굴을 대충 헹군 뒤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그 행동이 선뜻 허락으로 읽히지 않아 내심 불편했다. 그렇다고, 아이가 사내의 방을 찾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이는 곧 입으로 깨물어 버릇해 모서리가 다 헤진 배게를 들고 사내의 방에 들어섰다. 사내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차마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날은 일찍 저물고, 그리하여 하루가 짧은 긴 밤. 아이는 더 이상 밤이 무섭지 않았다.

 

 아이는 그간 사내와 많은 밤을 함께 했다. 단 둘이 천장을 보며 시답잖은 얘기를 하고, 허밍 하는 소릴 듣고, 그 소리의 제목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사내가 한쪽 귀에 꽂아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가만히 주워들으며 그 음들을 쉬이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떤 가사들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 기뻤고, 어느 말들은 이해할 수 없어 좋았다. 또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이렇게 사람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려 끊임없이 요동친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지난밤, 사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은.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가야겠다'는 말은 사람이 하는 말들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세상 복잡한 말처럼 들렸고 '다음'이라는 말, '조만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안심이라기엔 퍽 야위고 체념이라기엔 또 조금은 벌려져 있는 자신을 경험했다. 결국엔, 아이는 변변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종일 울기밖엔 안 했지만. 그래서 지루한 밤이 기지개를 켜듯, 잠시 들썩여 동네에 드문 생기가 돌았지만 말이다.


 아이는 '그만 가야겠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사내와 잠시 사이가 멀어졌다. 떠나야겠다는 말이 '배신'에 가깝게 들려서였다. 아이는 소극적인 복수를 하고 싶었다. 사내도 나와 같이 아쉬움에 마음이 흔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사내가 떠나는 일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양 행동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수 없이 들었던, '의젓함'이라는 걸 그렇게 활용했다. 무언갈 애써 가리기 위해 점잖을 뺐다. 하나 그것도 잠깐. 아이는 사내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평상시 잘 서운해하고, 쉽게 용서했다. 물론, 그 용서란 것도 따분함에 못 이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사내는 그런 아이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동안 남겨질 아이를 생각하면 또 쉽사리 밀쳐내기가 어려웠다.


 할머니는 간간히 매운탕 집에 나가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가게 앞을 지나기라도 하면 주인분 아저씨가 들렀다 가라며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때마다 바쁜 양 모른 채 하고 지나쳤다. 귀찮기도 했으나, 평소 장난이나 농담을 건넸던 사람이 요즘 여간 이상했다. 사람이 차분하니,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아이는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주인분의 태도가 무섭게 느껴졌다. 처음, 아이는 뭔가 큰일이 난 건가 싶어 말도 통 붙이지 못했다. 원래 같았으면, 한껏 진지한 분위기를 잡아놓곤 아이 고추나 만지며 낄낄댔을 텐데. 요 며칠은 '말은 잘 듣느냐' 물어온다던가, 용돈이나 하라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는 둥. 전에 없던 행동들을 내보였다. 아이는 종종 그런 요상한 낌새를 지닌 친절함, 자상함을 경계했다. 그것은 아이가 이곳에 오기 전 부모가 내비쳤던 태도이기도 했다. 어떤 성의는 무언갈 가리기 좋은 위장처럼 느껴졌다. 이후, 아이는 부러 길을 돌아 바다를 찾았다. 아이는 자신이 겪는 거북한 감정들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소화했다. 눈을 돌려 모른 채 하거나, 고개를 뻗어 거리를 잰 뒤 최대한 멀어져 안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이여서 무언갈 잊길 잘했으므로 얼마 못가 가게 앞을 다시 기웃거렸다. 주인 분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말을 거는 쪽은 대게 아이였다. 아이는 제 말을 바르게 듣고 끄덕여주는 아저씨가 살가웠다. 다정하게 구는 주인분에게 아이는 퍽 의지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아침 상을 차리고 일을 나갔고, 늦은 밤 돌아와 몸을 씻었다. 그리고 어제는 드물게 비가 내렸다. 세계가 점차 그늘에 가려져 잠시 낯빛이 어두웠던. 연신 무언갈 덜고 씻겨내느라 부산스러웠던 한 밤이었다. 그때, 아이는 안색을 걱정하듯 방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깥과 더불어 방 안이 빗소리에 잠시 소란스러웠다. 물소리가 사방에서 두서없이 쏟아졌다. 사내는 얌전히 추적이는 빗소리를 경청했다. 추위에 살갗이 돋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노곤해지는 걸 느꼈다. 하나 그런 사내와는 달리, 아이는 좀처럼 마음이 어수선해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무언가 자꾸 신경 쓰였다. 딱히 사내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기엔 아이는 퍽 불안했고, 애가 탔다. 비는 오래도록 내리며, 공기의 질감을 하나 둘 바꿔놓고 있었다. 마당에 놓여있던 다라이 안쪽으론 빗물이 고여, 아이의 침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달빛은 멀겋고, 아이는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틈을 내려 계속 한숨을 쉬어 버릇했다. 바로 저 앞, 건너편 너머로는 말끔하게 닫힌 방문이 보였다. 가끔, 기침소리가 사내의 문 앞까지 분분히 흘러들어왔다. 아이는 미처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내가 떠나기 직전, 아이는 사내와 마지막 바닷바람을 나눠 마셨다. 둘은 바다를 한 번도 질려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이곳엔 남은 볼거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무슨 말을 쥐어줘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잘 가세요'라느니, '다음에 또 와요'라는 말들은 시시할 것 같았다. 그런 말들은 너무 뻔해서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듣는 순간, 그 말들은 의미로 다가오지 못하고 하나의 습관처럼 잊힐 터였다. 아이는 잠시 미적거리다 말을 꺼냈다.


"저기.."


사내가 아이를 바라봤다.


"찾았어요?"


사내는 그 말을 정확히 모르겠으나, 가늠 가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응, 이제는."


 바다가 기침처럼 철썩였다. 파도는 가고, 간만큼 다시금 돌아왔다. 날은 제법 차가웠다. 모래바람이 발에 걸려 간지러웠다. 사람들은 취한 듯 휘청이며 가까스로 방파제 위에 매달려 있었다. 사내의 눈은 크고, 아이는 그 눈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사내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든 걸 내어줘도 마음이 허기질 것 같은 미소였다.


"이제 갈까?"


아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시간을 확인한 후, 마저 말을 이었다.


"시간이 조금 남으니까. 그전에..."


아이는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가게 좀 들렸다 가자."


 아이의 몸이 빳빳이 굳었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직감적으로 그곳에 가기가 꺼려졌다. 저 멀리 힐끗 드러난 매운탕집 간판의 생선 꼬리만 봐도 신경 쓰였다. 아이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할머니 바쁠 텐데, 지금"

"얼굴만 보고 가는 건데 뭘."


 사내는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사내는 이미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가자니 꺼림칙하고, 안 가자니 난처한 상황이었다. 아이는 약간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끝내 사내의 손에 이끌려 가게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내에게 조금이나마 밉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당장에 건네는 사내의 손이 지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탓이었다.


 멀리서부터 비릿한 기운이 물씬 올라왔다. 수조 가득 생선들이 서로 부대끼며 서늘한 살내를 풍겼다. 그 냄새를 맡자, 아이는 머리가 퍼렇고 검게 물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가게 안은 바삐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아이는 초조한 눈치로 창 너머를 살폈다.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 계시나 본데, 금방 인사만 드리고 나와야겠다."


 아이는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꺼림칙한 낌새가 느껴졌다. 그걸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으나, 썩 좋지 만은 않은 감정이었다. 아이는 사내에게 '할머니가 많이 바쁜가 보다'며 이만 가자는 티를 부렸다. 그런데, 저쪽 구석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주인분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

"아, 안녕하세요. 민박집에 묶었던 사람인데, 가기 전 말씀 좀 드리려고요."


주인분이 '아, 아.' 하면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듣던 대로 아주 잘생겼네, 그런데..."


사내가 고개 숙여 집중했다.


"지금 할머니 안 계시는데, 요 며칠 잘 안 오셨어."

"아, 안 오셨어요?"


사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차 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금방 떠나야 할 상황이었다.


"꽤 됐는데, 할머니가 별말씀 않던?"


 그렇게 말하면서, 주인아저씨가 어물쩍 아이를 넘겨봤다. '정말 몰랐냐'는 듯한 눈치였다. 순간, 아이의 몸이 저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뭔갈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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