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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06. 2018

견디는 소음(1)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서울 전역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있는 사람처럼, 근심에 안색이 어둡다. 아마 이 비는 한동안 내릴 것이고, 그러면 긴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한 철을 넘기려 할 것이다. 비는 계절의 모든 마디마다 작은 쉼표 하나를 찍고 사라졌다. 각 계절이 다음 계절을 맞으려 할 때, 비는 분주해졌다. 급하게 내리고, 오래 내리며 많은 것을 덜고 씻겨 내려갔다. 그러면 그사이 계절은 자신의 계절을 적느라 성급해지고, 많은 기운과 흐름을 바꾸어 놓을 게 분명했다. 사람이 백지 앞에서 무언가를 쓰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계절도 분명 그럴 것이다. 계절은 자신의 계절이 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 역시 무언가 되려 하겠지. 그게 도통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으면.


 형에겐 아직 연락이 없었다. 나는 형이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걱정됐다. 일찍부터 집을 나섰던 탓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은 오늘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일을 하는데,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한 곳이라고. 나는 그 말이 언뜻 이해가지 않았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요즘 들어 우리에게 납득할 만한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형이 집을 나선 뒤, 집 안으로 긴 휴지(休止)가 찾아왔다. 나는 한동안 바닥에 드러누워 무기력하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구석에 쌓아둔 짐이며, '집'의 상태를 확인했다. 장판은 규격이 맞지 않아 벌어져 곰팡이가 열꽃처럼 피어 있었다. 형의 말로는 전 세입자가 얼마 살지 않고 나갔다던데,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것이 꼭 전 세입자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외 몇 가지 사소한 일들로 시간을 때웠다. 수건에 물을 묻혀 바닥을 쓸고, 싱크대 배수구를 비웠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집안 곳곳의 구멍들을 휴지를 뭉쳐 틀어막았다. 그렇게 갖가지 일에 신경을 쏟고 있는 와중,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형인가 싶어 얼른 화면을 들여다보니 배송 문자였다. 지난번 온갖 쿠폰들과 할인 혜택을 따져가며 주문한 것들이었다. 쌀과 식수, 몇 가지 가공품이 우선 배송되는 듯했다. 그 외에도 필요한 품목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나, 그것들을 모두 구입하기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물론 가격이 비싼 탓도 있었으나, 싸더라도 우리가 채 쓰지 못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양이 많을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보통 필요한 만큼만, 그때그때 장을 봐 해결했다. 소비할 몫만큼, 적당한 양을 사기엔 그쪽이 더 편했다. 나는 곧 생필품의 여분을 파악해 목록을 간추렸다. 그러곤 이내 장을 볼 채비를 했다. 어차피 근방을 산책할 겸, 이 일대를 한 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늦은 오후였고, 미세먼지가 짙어 날이 흐렸다. 골목은 뭔갈 관통하는 소리로 연신 왕왕거렸다. 어디선가 보수를 하는 모양인지 온종일 소음으로 들끓었다. 소리는 쉽사리 흩어지지 않고, 자꾸만 고여 불규칙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두통에 머리가 저려올 정도였다.


 서울에 정착한지도 어느덧 넉 달이 다 되어 간다. 서울에 막 도착했을 때, 내가 보인 반응은 감탄하는 일도, 헤매고 어색해하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서울'이라는 그 사실 앞에 압도당하고 주눅이 드는 일이었다. 나는 당장 서울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부담이 됐다. 왜냐하면, 서울은 소문이 우거진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며 나는 내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계속해서 서울 속으로 사라지는 걸 배웅했다. 서울의 매료에 홀려 부푼 꿈을 간직한 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야 할 곳을 몰라 그 불안에 못 이겨 무작정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서울은 무언가 '되기' 위한 곳. 꼭 무언가가 되려는 마음이 없어도, 언제나 고정된 자리에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추기는 태생지같이. 언젠가 꼭 한 번 들러야 할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 살 터울의 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형이 상경하던 날. 우리 가족은 온갖 걱정과 잔소리를 늘어놨다. 형은 그 앞에서 우리가 내비치는 우려를 비웃듯 흘려들으며 까불었다.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고, 마치 떠나는 사람이 아닌 금방이라도 다시 올 사람인 양 굴었다. 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의당 내보이는 정형화된 태도랄까. 어쩌면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농담 같은 걸지도 몰랐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서운해하지 않았다. 물론, 형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형의 소식은 종종 들려왔다. 먼저, 형은 정착의 '사실'을 티 내느라 바빴다. 요 앞에 시장이 있어 찬거리 걱정을 덜 수 있다든지, 인적이 드물어 번잡하지 않아 좋다, 하는 소리를 늘어놨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하루 일과나 계획에 대해 말하더니 점차 소식이 드물어졌다. 우리를 안심시키려 한사코 쥐여주던 말들도 이해나 양해를 구하는 말들로 바뀌어갔다. 형은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선지, 형은 늘 미안쩍은 태도로 자신의 정황을 먼저 알려왔다. 한 번도 성과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우리가 건네는 안부가 어떠한 추궁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 탓에 우리는 선뜻 연락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관심이 혹여 부담으로 작용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요원해지기 시작했다. 몇 달이 흐르고 나서는 명절이나 기념일을 제외하곤 통 연락도 없었다. 대신 형은 긴 시간, 그 유속에 쓸려 허우적대다 드문드문 고개를 뻗어 생사를 알려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간신히 드러낸 형의 손을 귀하게 붙잡곤 안부를 물어버릇했다. 형은 언제나 건조한 목소리로, 변함없는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별일 없어, 괜찮아.”


 내가 서울에 오게 된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제 초조에 떠밀려 떠난 다른 이들처럼, 정말 딱 그 정도의 이유로 서울에 들어섰다. 형이 떠나고 난 후, 근 이 년만이었다. 그 날 형은 터미널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타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향사람의 얼굴마냥 그랬다. 나는 형을 그토록 밝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런 형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낯설게 다가왔는데, 선명하고 명랑한 표정에서 밀도 높은 불안의 낌새를 맡고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알 수 없는 호소가 언뜻 비쳤다. 겸연쩍고 어찌 보면 측은하기도 한 표정. 서울이 내게 건네는 첫인상일지도 몰랐다. 형은 내 손에 들린 캐리어를 얼른 가져갔다. 그러곤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오느라, 많이 힘들었지?”


 소음은 억세게 이어졌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언덕을 내려갔다. 건물은 전부 비스듬히 어깨를 뉘인 채, 매달려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어딘가 기형적이고 피로해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구에겐 가만히 서 있는 일조차 엄청나게 소모적인 일이 될 수 있듯 건물들도 그런 듯했다. 그리고 나는 저기, 저 끝. 내 앞으로 이어진 서울의 한 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멀리 지상에서 고개를 한껏 치켜든 남산타워가 보였다. 매캐한 대기에 가려져 이그러진 형상으로 희미하게 자신을 내비치고 있었다. 약간의 쓸쓸함을 갖고서였다. 언뜻 보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산타워가 애처롭게 느껴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뭐가 됐든, 어떻게 됐든, 늘 나보다야 나은 사람의 안부를 걱정하는 일처럼, 쓸데없고 괜한 짓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산타워가 마치 우리의 포부처럼 느껴져 좋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러니까, 바로 그 날. 캐리어를 끌며 언덕을 오르면서, 형은 내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저 음식집은 어떻고, 저 카페의 분위기는 어떠며 한참을 늘어놨다. 형은 내게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형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치며 좋다는 티를 부렸다. 형은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곤 형이 '앞으로 운동 걱정은 없겠다. 그지?'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어느새 우리는 언덕을 다 올라와 있었다. 나는 언덕 정상에서 멀찍이 보이는 남산타워를 한동안 감상했다. 문득, 이곳의 위태로움과 높이가 남산타워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물론, 이곳을 관광하기 위해 부러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형은 손가락으로 남산타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봐. 서울이야."


 다름 아닌 '서울'이라는 걸. 우리가 지금 머무르는 곳이 바로 그 '서울'이라는 걸, 형은 왜 말했던 걸까. 기대와 낙관이 꿈처럼 붙은 '서울'이라는 단어에 조금 기대길 바랐던 걸까. 나는 한동안 집 앞 편의점에 들르거나, 버스를 타러 가는 와중에도 수시로 남산타워와 맞닥뜨렸다. 남산타워는 서울 전역 어디에서도, 고개만 들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서울임을 표 내듯 서울의 중심에서. 도심 전체의 시선이 닿을 듯한 규모와 높이로 품위 있게 세워져 있었다. 서울의 북극성. 서울을 상기시키게 만드는 많은 것들 중 유달리 눈에 잘 띄던. 지대가 높아, 아울러 우리가 사는 동네의 몸집이 작아 더욱 선명히 드러나던. 나는 남산타워가 너무 노골적으로 눈에 집히는 것이 점차 신경 쓰였다. 내게 자꾸만 뭔갈 부추기고 채근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나는 내가 서울에 온 '진짜' 이유를 몰랐다. 서울은 크니까. 서울은 크고, 그래서 그 범위 안에는 왠지 내가 되려는 '무엇'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으니까. 나의 꿈은 입체적이었지만, 동시에 구체적이진 않았으니까. 그래선지, 남산타워는 종교적인 표식처럼 나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거리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간이 방독면마냥, 정화통이 부착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저렇게 번거로운 마스크를 쓰면 호흡이 결리진 않을까.' 싶었지만, 목이 상하는 것보다야 괜찮을 듯했다. 시장 가판대에도 사람 마스크 씌우듯 얇은 비닐이 덮여 있었다. 나는 장에 도착해, 우선 평균적으로 형성된 가격을 살펴봤다. 눈으로 가격표를 힐끗 훔쳐가며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대체로 가격은 일정했다. 부득이하게 값으로 경쟁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는지, 가격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책정된 가격이 아닌 사람 간 어떤 상도의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합의된 가격. 값으로 실체화한 선의 같은 거였다. 나는 당장 필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간하며 돌아다녔다. 뭔갈 사려 할 땐 적잖이 고민하는 시늉과 엄격한 표정, 상품을 사면서 그 상품을 잘 이해하듯 두드리고 만져보는 행위도 빼놓지 않고서였다. 내가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물건 앞에서 매번 스스로를 심문하듯 이렇게 물었다. '이게 정말 필요할까.', '우리가 이걸 다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가격 앞에서 취하는 소극적인 자세와 비등하게, 소비 가능한 기한에 관해서도 충분히 따져봐야 했다. 그건 내 생활의 규모가 얼마나 좁은 가를 의미했다. 그렇다고 이전의 내 소비 습관을 반성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절약'의 미덕이라느니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벌써부터 '낭비'가 그리웠다. 뭔가를 소비하며 '충분한 만족'을 느껴 본 감각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초과분의 몫을 쓰고, 허영이라는 죄책감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는 데에는 소비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으니까. 누군가의 소비가 이토록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거리낌 없이, '그거 통째로 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괜한 질투가 일었다. 내게는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생각하니, 더 그랬다.


 예상보다 적게 구입한 뒤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묵직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머리 위로 어떤 무게감이 전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얼굴을 구기며 시커멓게. 순식간에 낯빛이 바뀐 사람처럼, 조금은 서늘하게. 바람도 모처럼 드세게 불었다. 잔잔했던 대기가 올이 풀리며 펄럭였다. 차갑고, 무거운 바람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잡았다. 스산한 감촉이 피부에 와 닿았다. 하늘은 차츰 가라앉고, 그럼에도 닿을 수 없는 높이가 나와 하늘 사이에 가득 떠 있었다. 머지않아 비가 올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 형에게 '비가 오면, 우산을 가지고 역에 마중 나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공사는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관통하고, 뚫고, 으깨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끓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며칠간 골목은 수다스러울 것이었다. 별 일이 없다면, 아마도 그러할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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