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넘기고 계절을 넘기며

by 이음

계절의 한창을 목도하는 것은 눈일지라도 철을 넘기는 미묘한 흐름은 촉각이 더 잘 안다. 눈이 번뜩이는 찰나를 호기롭게 새겨 넣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촉각이 늘어지게 익숙한 것들과 조금씩 변주하여 철의 길목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가을은 오기 전부터 한기를 서려 몸을 시리게 했고, 온몸의 감각들을 세차게 당기어 예민하게 움츠르게도 그러다 유독 날 선 서늘바람 하나를 불어내 베이듯 스치면, 팽팽해져 부르튼 볼에 붉게 꽃물을 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바람 한 번 넘길 적, 몸은 그 계절에 맞도록 차츰 길들여졌다. 봄에는 꽃들이, 여름엔 녹림이,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눈이 그 궂은 길들임에 대한 일종의 불충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저만치 앞서 간 계절을 몸이 뒤따르지 못하고 호되게 앓았던 적도 많았다. 매번 비슷한 시기에 그 계절이어도 무딘 몸은 기운 없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몸은 지난 계절에 쓸데없는 정을 붙여두느라 그랬고, 몇 발자국 걸으면서 그 걸음만치 더불어 늘은 여운을 돌보느라 그랬다.



한동안 걸음이 자리한 구석구석을 눈에 담아 본다. 나무는 자신이 드리웠던 무성한 그늘을 회고하며 발 밑에 잎으로 퍼즐을 맞추고 있던 것일까. 한 장 한 장의 이파리는 게으르건지, 진중한 건지 허공을 유영하듯 제 자리를 찾아 누웠으나 얕은 바람이 불자 맥없이 일거에 흩어 갈렸다. 그 순간 야윈 나무의 앙상한 가지는 곧 성난 가시로 돌변했다. 파카에 달린 털모자는 아이를 흡사 사자의 갈기처럼 앙칼지게 만들어도 걸음이 서툴러 영락없는 얘로 돌아왔고 뜀박질하는 이들의 후끈 히 데워진 몸은 서늘히 언 공기와 살갗을 비비며 뭉근히 녹아들어 그 균형을 조율했다. 하지만 끈덕지게 후더운 공기이건 응결된 냉혹한 공기이건 그것은 늘 연인 앞에선 좌초되었다. 서로를 부둥켜 체온을 확인하는 것 외엔 어느 것에도 그 온도를 맞추지 않는 탓에 그들에게 더위나 추위는 매번 허사였다. 연인에게 그날의 기온이란 언제나 상대의 체온이었다.


어느 가게, 길가에 삐죽 튀어나온 입간판이 이것 좀 보라며 짙은 녹빛의 배를 들이 민다. 자몽주스, 라임주스, 유자차, 대추라떼. 적당한 크기의 나무판자 둘을 포개어 놓은 입간판에 가게 이름을 크게 써놓으니, 메뉴 네, 다섯 들어가기도 비좁다. 선별된 메뉴들은 가장 솜씨 좋은 것들로 고르고 골라 간추렸을 것이었다. 자몽은 빨간 분필로 라임은 초록 분필로 유자는 노란 분필로, 그 열매에 어울릴 법한 색을 짝지어 입혀 준 것과 별개로 붉은 고동색의 대추는 파란 분필로 칠해졌다. 서슴없이 섞은 대추와 라떼의 조합만큼이나 그 색은 대추에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마셔볼 이유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몇 평 되지 않는 협소한 가게의 문을 열자, 볶은 커피콩의 향내가 그윽하게 전신을 휘감으며 한기를 떨어낸다. 으레 듣던 "어서 오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로 손님을 반기는 주인 분의 말은 수 많은 인적을 들먹이며 왔어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람이 오고 가도 안부 한 번 묻기는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앞서 눈여겨 본 대추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차가운 것으로. 이어 가게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이 양손을 오목하게 접어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니 아차 싶었다. 가게 안이 꽤나 묵직하게 뎁혀진터라 무작정 쏟은 말이었다. 나는 밖으로 되돌아 가야 함을 순간 잊고 있었다.


책장에는 꽂힌 이후로 서 너번 나왔을까 한 두터운 양장본의 책 몇 권이, 그 옆 간이 가판대에는 손수 그린 엽서와 둥그런 입욕제, 손톱만 한 액세서리가 층지어 정돈돼고 반듯한 글씨로 '현금함'이라 쓰인 네모난 상자는 제일 꼭대기에서 갖가지 잡화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돈 몇 푼이 들어간 다음에야, 그 금액에 맞게 골라 풀어 주었다. 엽서는 한 장에 천 원에서 이천 원으로 가장 저렴했고, 액세서리는 가장 저렴한 것이 만원을 웃돌았다. 외면을 가꾸는 일보다 내면을 전하는 일이 저렴하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꾸덕지게 흰 음료 하나가 나왔고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처럼, 달짝지근한 대추 열매 몇 알도 얹혀졌다. 얼핏 보기에도 모자란 양의 대추 열매는 마시느라 연신 출렁일 목과 달리 적적할 입안 식구를 위해 마련된 조막스런 장난감이 아닐까 싶었다.


기껏해야 들어왔던 밖으로 되돌아갈 뿐인데 대단한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조일수 있는 끈은 죄다 동여매고, 소매를 늘여 컵홀더로 대신했다. 바람이 한 켠에서 쉬이 불어 오자, 행인들은 일제히 양 어깨를 목 가까이에 붙여 대었다. 무슨 율동이라도 하는 듯이. 바람이 건반의 한 음을 늘여 부르는 단조한 반주라도 되는 듯이. 포장된 흰 벽돌 보도 사이엔 왜 간간이 붉은 벽돌을 박아놓았을까. 그것은 혹시 오선지의 작은 음표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소슬한 바람은 길을 훑어가며 거리거리마다 행인의 귀에 숱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일까.


가을이 조금 이른 시간부터 해를 황급히 몰아낸 탓에, 대추라떼만큼이나 진득한 어스름이 묻었다.

그것은 어딘가에서는 송골히 꽃봉오리가 맺혔다는 뜻이기도 했고, 더 이상 이곳에는 눈을 매어둘 볼거리가 없다는 뜻도 , 일찍부터 꿈의 요정을 움푹한 눈꺼풀 구덩이에 잠 재운다는 것과 저마다 마음에 수줍던 아이들의 속삭임을 듣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흐르는 단풍, 낙엽 몇 장, 파카 모자를 쓴 아이와 뜀박질하는 사내, 연인, 입간판과 새겨 있던 메뉴들 그 중 대추라떼, 어스름, 바람소리. 나의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크고 넓은 백지에 하루동안 수 많은 점을 찍어낸 것처럼. 그리고 그 잔해처럼 널브러진 점의 궤적을 살피는 것이 내가 하루를 마감하는 유별난 방식이었다. 거창한 서사가 아닌 단출한 에피소드만이 나열된 곳에선 단지 이 모든 일을 연결 할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뿐인 삶에선, 나는 늘 살아낸 날을 역으로 추적하는 점궤를 쳐보아야 했다. 결과는 매번, 여느 때처럼 시간은 균질히 흘렀어도 하루로는 턱없이 모자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무척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