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또 다른 눈금

by 이음

더러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날 유난히 안온하다던가 늘 먹던 음식의 맛이 혀에서 세밀하게 부서진다던가, 혹은 비산하는 냄새가 머릿속을 콕 쑤시거나 길을 걷다가 대뜸 그 걸음이 어설퍼 보이거나. 그리고 이러한 생경함이 예기치 않은 기억을 억지스레 환대할 때, 그래서 사실 기억이란 머리를 빌려 몸이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때가 있다.


새로운 것들을 담아내면 기억의 끝자락에서 위태롭게 흔들대던 낡은 것이 떨어지고 길고 짧은 시간에 상관없이 담아내기 버거웠던 기억이 먼저 탈락되기도 한다. 그렇게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의 대열을 거스르고 삶에 압착된 몇 기억들이 온전히 나를 이룬다. 기억은 흡사 분주한 사무실의 모습과도 닮아, 수납장에 가지런히 꽂힌 서류뭉치처럼 분명한 기억이 있는 반면 수거함에 구겨진 이면지같이 별 볼일 없고 희끗한 기억들도 있는 법인데, 다만 우스운 점은 삶의 동력으로서 기억은 구겨진 이면지같이 하찮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었다.


지나쳐온 세월에 이정표가 혹은 계기판이 있다면 얼마 되지 않는 소박한 공간, 불특정 한 풍경이나 각인된 인물의 모습은 아닐까. 조금씩 더디게 걸어온 시간은 매몰찬 세월의 급류, 그 낙차를 실감하기엔 예민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들을 미지근히 뭉개어 가라앉히곤 한다. 그러니까, 습관적으로 잡숫는 나이는 축적된 시간만을 사열할 뿐 그 이상의 것을 가리키기엔 너무 도도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세월을 재는 또 다른 눈금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차라리 낯익은 것에도 무작정 서글플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었다. 어린 시절 흰 도보 사이 균일하게 박힌 붉은 벽돌에 각 발을 맞춰 한 걸음으로 닿으려 하면 늘 반걸음이 모자랐다. 미치지 못한 반 걸음은 당시 내겐 자라야 할 높이었으나, 지금은 나이는 늘어도 보폭이 늘진 않는다. 되려 그 폭이 줄어들 날을 기다린다. 늙으면 으레 입이 오므라지고, 날 선 주름이 지고, 부리처럼 뭉툭하게 접히는 줄 알았고, 그러한 입으로 귤을 채 드시지 못해 가까스로 잇몸을 짓이 즙만 빨아 껍질만 솎아 뱉는 모습이 웃키득 될 때도 여럿 있었다.금에야 철없던 그 시절이 죄스럽기만 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무척이나 사소해서 뭐라 이름 질 수도 없는 그 무엇들이 삶의 진리라도 되는 듯 누군가의 귀에 대고 조곤히 속삭여 말하던 나는, 이제 삶의 진득한 무게가 얹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연신 휘젓게 되었고, 물이 고인 웅덩이에 더 이상 발을 들이밀어 첨벙 대지 못해 점잖빼거나 축축해질 신발을 염려해 우회하여 지나갈 때, 나는 지나치게 곱씹는 사람이었다. 계산적인 정 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세월을 각기 다른 곳에서, 시간에서 통과 한들 그것을 재는 눈금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축축한 술잔에 기대어 새의 둥지처럼 얽힌 회포를 하나씩 덜어낸다. 각자의 삶을 점과 선으로 긋다 보면 가끔 포개어진 어느 순간을, 어떤 모습을 발견하고는, 미처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속편처럼, 때때로 프리퀄처럼, 은밀한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이어 붙인다. 그때, 술잔은 시간을 석화하는 능한 재주가 있었다. 건조한 흙에 빗물이 스며 마르면 울퉁불퉁 모난 흔적들이 그대로 새겨지듯이, 삼키기 버거울 정도의 빗물이 스미면 질척여 흙물을 토하듯이. 뻑뻑한 가슴에 술은 딱 그 정도의 것이었다.


원래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수업료를 치르기 마련인데, 정작 그 시기에는 그렇게 아프고 쓰라릴 수가 없다. 더욱이 삶을 배우고자 할 때 유독 까끌하고 시리고 보잘 것 없는 얕은 생채기에 호들갑을 떨어도 그것을 다독이는 건 매번 자신을 그토록 만든 세월이었다. 그것은 세월이란 말 그 자체에 되돌릴 수 없는, 막연한 애틋함이 서려 있어도 한편으로 딱딱한 시간의 퇴층을 들이대며 현재를 한없이 후락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언제나 세월은 낙원과 불모지 그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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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을 각자 살아낸다 하더라도 일종의 성장통처럼, 혼곤히 헤매는 특정 시기가, 일정 근사치가 있는 듯 싶다. 경험은 다르더라도 주제는 같다고 해야 하나. 수로를 비틀어 옮기는 것은 쌓여 걸리는 돌들이기에, 그 누군가는 나의 지난 시절을 제 식대로 경험하고 나 역시 그 누군가의 지난 시절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체험하게 될 때, 그 과정이 연거푸 반복되는 어떠한 흐름을 생의 순리라고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연신 덧칠되는 두터운 캔버스는 아닌가 한다. 앞서 지우지 못한 희미한 얼룩을 가늠하거나 덧씌워 지워질 내 흔적을 보고 만다면, 텁텁한 숨을 끓여 뱉고 미처 훔치지 못한 시린 눈물을 쏟고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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