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는 머리를 깎았다.

by 이음

어느 장소에 가건 마중을 나오는 건 늘 얄갑게 부는 바람이 먼저였다. 발화하지 못하고 고정된 향취와 질감을 묵묵히 꿰매어 바람은 싣고 왔다. 골목을 쏘다니는 아이마냥 덕지덕지 얼룩을 진득하게 묻히고선, 나는 그 냄새를 단서로 아이의 행적을 유추했다. 엄마는 항상 아이의 앞서 간 말보다 주저하는 마음을 더 잘 알듯이, 딱딱한 쇠판에 획으로 찍찍 그어진 이정표는 쭈뼛대는 아이의 말이었고, 다소곳한 연풍은 주저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창으로 반쯤 고개를 뻗었다. 옆머리를 바짝 잘라 듬성히 보이는 머리숱은 그 수를 셈한데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법했다. 아버지는 매번 미용실에서 상고머리를 고집하셨다. 진동이 심한 바리캉을 귓가에 대고 지잉지잉 연거푸 밀어 대면 흰 살이 드러났고, 어쩌다 수습 미용사가 삐끗할 적엔 귓등을 배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안전부절 요란하게 촐싹대는 일은 미용사가 다 했고 그래 봤자 고작 볼 일 없는 귓등인데 대수롭냔 식으로 내 귀를 자기 것처럼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아픈 내색을 아버지의 눈치를 봐가며 골라 부려야 했다. 사내란 이마를 훤히 드러내야 얼굴이 산다고, 눈썹을 절취선으로 조금 모자라게 잘라내서 앞 머릿 칼은 눈가 근처에 걸려본 일이 없었다. 바람은 불어도 너풀거리지 못하고 빳빳히 점잖빼는 머릿 칼이 내심 볼만스러워도 그 투정은 아버지께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쇠똥 냄새에 정신이 번쩍 해 급히 창문을 올려 닫으면, 뒷짐을 지신 할아버지가 눈에 슬며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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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손을 흔들어 대면, 가늘게 눈 한번 오므리시고는 그제야 더불어 흔드시며 답하신다. 할아버지의 발에는 고무신이 감겨있고, 그 집 철제 대문은 바닥에 심지 해 허공에 어정쩡하게 걸어놓은 듯 매달려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문턱은 내 정강이 부근까지 떠 있었다. 그 대문도 할아버지 만큼은 나이가 든 터라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녹이 슬고, 아버지는 자꾸만 정강이를 문턱에 꼬라박았다. 아버지의 정강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문턱은 쓸린 다리춤에 칠이 벗겨졌다. 몸이 다 자라면 으레 자신의 몸뚱이를 과신하는 까닭에, 올 때마다 두세 번은 통과 의례처럼 정강이로 문턱을 치며 종을 울렸다. 아버지는 "이게 높이가 올 때마다 오르나 자꼬 부딪치네."라고 멋쩍어 말했지만, 결국에야 늘고 주는 것은 무심한 철제 문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느는 나이가 젊음을 보증할 땐 호기롭게 그 순간을 기념할지 언정, 되려 늙음을 증명하고자 할 땐 속절없이 무력하고 기만적이다. 이제껏 나는 한 번도 걸려 넘어진 적이 없었다.


"아고, 먼 곳 오느라고 고생했지."


작은 몸뚱이에 손이 붙고 그 손엔 또다시 작은 갈래로 돋아난 손가락이 참 신기하다고, 자라다 만 건지 잘리다 만 건지 바짝 세워진 수염을 손바닥에 비볐다. 그러면 나는 달팽이의 눈을 건드린 것처럼 손을 꼬깃꼬깃 움츠렀다. 사실, 수염보다 거북했던 건 불에 그을려 쪼그라진 고무같이 박힌 손의 굳은살이었다. 그것에는 차마 쉽사리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살이 죽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세게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고, 어른이 되면 몸이 굳듯 살도 굳는다고. 거기에 대고 짜증을 부려서 그 어느 곳을 더 이상 굳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중지와 검지 그리고 엄지의 마디마다 정직하게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정직하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간격이 균일해서다. 나는 할아버지의 세 손가락만 유독 딱딱히 굳은 이유를 잘 안다. 할아버지는 이 작은 동네에서 제법 오랫동안 이발소를 하셨다. 이곳 남정네들의 머리는 짐짓 다 비슷해 보이던 것은 소위 할아버지 만의 확고한 스타일 일수도, 그것밖에는 할 수 없는 유일한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가 유난히 상고머리를 고집하던 것도 보아온 머리가 죄다 그 머리였으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할아버지 댁에 가리라는 사실은 근 한 달간 머리를 깎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는 에둘러 예고했다. 어차피 어느 미용실에 데리고 가건 '상고머리'라는 주문을 받은 미용사들은 균일하게 찍어 나오는 공산품처럼 그 맵시가 별 반 다르지 않았으므로, 그렇다고 할아버지라고 유난한 방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돈이 굳는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것이 못됐다. 애초에 아버지는 이발에 비용을 더 들여가며 꾸미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를 손 볼 적엔 꼭 담배를 태우고 오셨다. 어린 얘 몸 상할 줄은 알았어도 자기 몸 상할 줄은 모르셨던 분이라, 지금처럼 흡연이 죄스러운 시절도 아니었는데 찌던 춥던 밖에서 담배 불을 심으셨다. 그 일은 빗물이 추적이는 습한 날에도 변함없었다. 맛을 세분화하여 구분할 줄 알거나 나름 습득된 철칙이나 기준 같은 게 있어서 가려 피우는 것이 애연가라 말한다면, 할아버지는 썩 애연가는 못 되셨다. 매번 이곳에 올 적엔 아버지는 담배 두세 보루를 포장할 것도 없지만 봉투에 담아두지도 않고 벽돌처럼 턱턱 쌓아 놨는데, 각기 다른 종류의 담배를 뭉터기로 사와도 할아버지는 군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몸이 필요해서 연신 쓴 연기를 속으로 들이 부으셨던 것 같다.



의자 뒤편을 발로 꾹꾹 눌러 펌프질을 해가며 내 키를 길어 올린다. 부족한 높이는 손걸이에 얹힌 분홍색 간이 받침대로 조율하는데, 그 거울은 몽땅한 아이를 집어삼킬 듯 과도하게 여백이 많았다. 적당한 몸집의 사내아이 두 세명도 들여와 거뜬히 깎일 수 있는, 그런 크기였다. 동네 할아버지 몇 분은 알이 부족한 장기판에 바둑알로 자리를 대충 때우고는, 제법 매섭고 거칠어도 어딘가 구수한 살내음이 벤 말들을 주고받으며 장군 멍군했다. 장기판은 바둑알이 대신 사정을 봐주러 갔어도 치사하고 뻔뻔하게 바둑판에는 장기알이 대신 들어차는 법이 없었다. 아마, 바둑을 두신 게 아니라 오목을 두었을지도 모른다. 희한하게 할아버지가 머리를 다듬으실 때면 조악한 기계의 진동음보다 상대적으로 사각거리는 가위질이 이명처럼 조잘댔다. 사각거리는 그 소리가 작은 과도로 천천히 돌려 벗기는 사과나 연필 자루, 단 번에 휘갈기는 필기와 닮은 구석이 있다. 무엇을 자르거나 긋는 소리는 얼핏 들으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 묘한 접점의 틈새에 내 의식을 비스듬히 뉘이면 할아버지는 서투른 손으로 사과를 깎기도, 신중히 한 글자의 획을 긋기도,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내 머리를 싹둑 자르기도 한다. 나는 기분 내키는 대로 불쑥불쑥 그 소리를 지휘했다. 견딜 수 없는 얼마간의 지루함이 싫어서 그렇게 주어진 것들을 변주하여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차라리 삶을 더욱 생기 있고 미려하게 만드는 것은 맹렬히 질주하는 시간 앞에 그 어느 단락도 취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발소를 가기 위해선 자박한 개울 하나를 건너야 했다. 뜨끈한 볕은 결코 해소되지 못할 해갈을 갈구해도 조급한 법이 없어서, 물을 조금씩 몰래 홀짝인다. 헌데, 그 개울물은 미처 마시지 못한 그릇의 잔여물처럼 높이가 터무니없이 얕았다. 돌덩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하나 같이 잠기지 못해 반쯤 몸을 젖혀 흉상같이 서 있었고 물고기는 제 몸 드러난 줄도 모르고 느릿느릿 유영했다.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울음으로 가늠되는 들짐승들이 일제히 목을 축이고 가기 때문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자그만 얘한테 들려줄 짐승이라곤 기껏 해봐야 토끼나 다람쥐, 뭐 그러한 소동물이 전부였지만, 아이에겐 판타지와 리얼리티는 양가적인 곳이 아닌 공존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개울물의 질척한 황토 바닥에 푹푹 꺼지는 신발을 벗고 다시 손으로 뽑아 신고 걷고를 반복했다. 일회용 신발을 번갈아 신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북함이 들었다. 진흙 자국을 발로 흘려가며 이발소에 도착하면 할아버지는 먼저 내 발을 씻겨주셨다. 푸른 타일로 된 세면대인지, 수돗가인지 아리송한 곳에서.


내게 아스라이 남은 것은 그곳의 밤하늘은 별이 무척이나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달이 뜨고 기우는 공간에 조밀하게 수 놓인 별들이 마치 하나의 회중시계같아 보였다. 분명 별과 별사이는 까마득히 먼 거리일 테지만, 당시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저 별들은 톱니바퀴처럼 조금씩 서로의 손을 쓸어내리며 해와 달을 길어 올리고 저물게 하는 것이라고. 한 바퀴에 한 뼘씩, 째깍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도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지금 할아버지는 가위질을 그만두셨다. 아버지는 더 이상 상고머리를 고집하지 않으시고, 더욱이 나는 돈을 들여가며 머리를 가꿀 만큼 머리가 컸다. 그 장소에 대한 여분의 마음만이 남아 수시로 옅은 잔상을 기억에 오버랩한다. 머리를 깎는 일은 그래서 내게 좀처럼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