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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09. 2021

세상의 마지막 말이 농담이라면

 날은 여전히 비슷한 날이고, 바람은 늘 같은 세기로 불어왔다. 우리는 평소보다 말을 아끼며, 점점 더 지루해져만 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창밖으론 수평선이 길게 이어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도로 위, 바람은 차고 도로는 한적했다. 차 안에선 매캐한 가죽 냄새가 났다. 오랜 시간 우리를 제외하곤 지다니는 차는 한 대도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도로 위론 단 한 개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우리를 조금 외롭게 만들었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가서 도대체 뭘 보겠다고."


 그날 아버지는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내게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해가 저물 즈음의 늦은 오후였는데,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기억이 난다. 굳이 왜 가야하는 거냐고 따져 묻진 않았다. 그즈음 아버지는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운전하는 내내 아버지는 이따금씩 생사를 확인하듯 농담을 던졌다. 적당한 화제를 가져와 대화에 불을 지피고, 어떤 살가움을 만들어 내려 애썼다. 화제는 주로 내 어렸을 적 얘기라든가, 내가 미처 살아보지도 못한 시절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일까 농담의 저변에는 늘 과장과 거짓이 깔려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따지거나 비웃어 넘긴 적이 없었다. 원래 기억이란 수 없는 오해로 포장된 진실이기도 하니까. 단지, 아버지는 허풍이 갖는 특유의 가벼움으로 내게 어떤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까. 내가 끝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어떻게든 내게 어떤 진심 같은 것을 쥐여주고 싶어 했던 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에 관해서, 또 자신이 얼마나 젊고 건강했는지에 대하여 신나게 설명했다. 나는 아버지가 심심치 않도록 적당한 호기심을 내비치며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적잖은 기대가 묻어나왔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다름아닌 네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여, 나는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여가며 자꾸만 무언갈 물어버릇했다. 무엇이라도 일단 말을 트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다. 영 싱거운 말조차 그 순간에는 말의 잔향이 오래 남았다. 아버지도 처음엔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건성으로 듣다가도, 거듭 대화가 반복되자 퍽 의지가 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실없는 말들을 내게 곧잘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별할 것 없고, 별 볼 일 없는 말이라 해도 그러한 말들은 이상하게 가슴에 오래 남았다. 쉬이 가라앉지 않고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통 무얼 먹은 게 없어 그런가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허기가 선명해지자 말수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오랜 시간을 달려왔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한 자세로 오랜 시간 굳어 있어서인지 아버지는 자주 한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켰다. 나는 차 안 공기가 텁텁해질 때면, 창을 열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숨을 골랐다. 그렇게 올이 풀리듯 입김이 공기 중으로 아득하게 흩어지는 걸 바라보며 수시로 변하는 어둠의 농도랄까, 조금 더 짙고, 조금 더 검게 바뀌어 가는 계절의 낯빛을 망연히 지켜봤다. 주위는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날이 평소보다 배는 빨리 저물었다. 때문에, 아버지와 나는 어둠이 지상 위로 가라앉는 모습을 대책 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가는 길에 휴게소라도 들러 우동이라도 먹는 게 어때요."


몸에 얹힌 포로도 풀 겸, 잠시 쉬었다가 가자는 뜻에서 꺼낸 말이었다. 아버지가 정면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냥 가자."


이어서 아버지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바다를 보러 가는데, 굳이 휴게소에서 배를 채워야겠냐."




한 저녁의 바다는 한산했다. 짓다 만 건물처럼 황량해 보였다. 빛이 잘 들지 않아 바다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주위엔 온통 선명한 어둠밖에 없었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바다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아버지는 개의치 않다는 듯, 백사장 한복판에 눌러앉아 바다를 지긋이 바라봤다. 나는 수시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맨살에 닿는 바람이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차 안 공기가 텁텁해질 때면, 꺼내먹듯 창을 열어 쐐던 바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둠은 여름의 초록처럼 무성했고,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그러나 무척 단순하고도 명백한 의문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것일까. 바다를 왜 보고 싶어 했던 걸까.


"요새 별일은 없냐."


아버지가 대뜸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그 말이 약간 겸연쩍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아버지의 답을 받아 그대로, 몸은 괜찮은지, 요새 힘든 일은 없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서로 괜찮고, 별일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사이가 사이니만큼, 실은 별 내색을 하지 않아도 훤히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우리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보다 애써 드러내고 싶지 않은 표정이나 행동 같은 것들을 서로 숨기기에 바빴다. 어떤 우환이나 근심을 표내지 않으려고. 그런 거 다 말해봐야 다 무슨 소용이겠냐 싶은 일종의 체념과 회의로 일관했다. 오래 서로를 견뎌온 사이임에도, 이렇게까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발견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신호를 보내고 어떠한 여지를 계속 드러내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차마 가져가지 않았으면 하는 말, 마음 같은 것들이 샐까 봐 평생을 여전한 사람이, 그 평생을 지켜봐 온 사람에게 뻔뻔해지는. 아버지는 그 뻔뻔함이 얼마나 빤해 보이는지 모른 채, '이 나이에 별일은 죽는 일밖엔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반응했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얘기했다.


"믿는다."


 무얼 뜻하지 잘은 모르겠으나, 하여튼 '믿는다'는 소릴 아버지는 사뭇 진지하게 털어놨다. 아버지는 평소 '믿는다'는 말을 잘 하는 편이었다.



정말, 아버지는 잘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진짜로 무언가를 확신하듯 소신껏 믿는 것과 부류가 좀 달랐다. 소명으로 믿는다기보다 속 편한 대로 속아주는. 책임감이 제거된 의심 없는 믿음에 가깝달까. 대학 졸업 무렵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나를 믿는다고 했다. 때문에, 사회적인 표준에 눈치를 보고 내 속도에 조바심이 날 동안. 이후에도 쭉 별다른 소식이 없어, 지극히 합당한 평균으로부터 점점 더 낙오될 동안. 나는 내가 지쳐가는 만큼 아버지를 안심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서너 곳에서 받은 면접비로 작은 향수를 아버지에게 선물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내게 '믿는다'라고 말했다. 몇 번의 낙방이 익숙할 즈음에도. 서로 '괜찮아'지리라는 말을 더 이상 섣불리 꺼내지 못하게 될 즈음에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믿기'를 잘했다. 정말 '믿는' 것 외엔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까지 아버지는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비단, 내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소문이나 유행들도 곧잘 믿고 따르는 편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뻔뻔하게 잘 삼키면서 집을 말아먹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부족한 살림을 어떻게든 펴보겠다고 나설 무렵. 아버지는 누군가 귀띔으로 건넨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부리나케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먼 시 외곽에, 각종 특장차를 생산하는 상용차 전문 공장 들어선다는 것이었는데, 아버지는 연고도 없으면서 무작정 독립하여 정착했다. 아버지가 벌인 사업은 다름 아닌 '차'선팅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 유리에 필름을 씌우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요지는 이랬다. 공장이 들어서고, 젊은 사람들이 돈을 벌러 오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겠냐는 거였다. 아버지는 그것이 바로 차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부지가 넓은 오지에선, 당연히 차가 필수적이라고. 또 차를 사면, 새 휴대폰에 액정 보호필름을 씌우듯 당연히 선팅을 하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하여 일종의 기본 소양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만큼만 차에 관해 알아 놓고 가게를 차렸다. 물건을 떼다 팔고 아는 한에서 손도 좀 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버지는 집에서 도배 한 번을 안 해본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변변한 기술 하나 없으면서 무작정 가게를 차린 셈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직원 한 분을 데려다 놔 시원찮은 돈벌이에도 꼬박꼬박 월급을 줘가며 가게를 유지해야 했다.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아버지의 밥거리와 살림을 돌보러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아버지는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무능을 잘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건 무작정 일을 벌여 놓은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자, 속 편한 믿음이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머니의 밥거리를 받아먹었다. 여전한 건 늘 여전하니까. 날은 늘 같은 날이고, 때문에 식욕은 줄어도 배는 늘 고파야 했으니까. 어쩌면, 평생을 가도 펴지지 않았던 우리의 형편이 역시, 이러한 여전함의 한 부류에 속해 있던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 변변한 재주가 없던 것도. 듣는 소문에 곧잘 현혹되는 일도 만성적으로 한결같아 온 일종의 습관이었으니까. 우리는 늘 여전하고, 세상의 유행은 한 번도 그러한 우리를 편들어주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밥만 잘 먹었다. 하루종일 심심한 손과 달리 입에는 괜한 식욕이 더 붙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찬 통을 모조리 비워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비워진 찬 통을 볼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지는 모양이었다. 나이 든 양반이 돈 좀 벌어보겠다고 빠득거리는 몸짓이 가여운 듯싶었다. 그러다 어느 세부턴가, 아버지는 꼬박 찬 거리를 비워 돌려보내지 않았다. 처음, 어머니는 아버지 몸 걱정을 했다. 이 사람이 기운이 없어서 입맛을 잃었나. 타지에서 혼자 끼니도 거르고 있을 모습에, 어느 땐 소리 없이 울기까지 했다. 큰 보온 용기를 사 와 삶은 닭을 통째로 아버지께 부친 일도 그즈음이었다. 아버지는 음식에 손을 대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식욕이 준만큼, 말 수도 점차 줄어들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버지가 돌려보낸 찬거리가 아버지의 몸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사업을 접었다. 2년도 채 안 돼서였다.


 그 후로,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어설픈 눈치가 늘었다. 어떤 사회의 기류에 편승하려는, 그 기회를 잡고 또 놓지 않으려는 악착이 생겼달까. 아버지는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그 유행은 남이 다들 하는 유행이었고, 아버지가 늘 그렇듯 속아오고 배신당한 유행이었다. 스몰 비어 집이라던가, 각종 안주가 저렴한 술집을 차렸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빚은 성실하게 늘고,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빠르게 망해갔다. 그리고 그 보폭에 맞춰 서서히 삶에 애착이란 걸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놀랍도록 생의 의지를 불태웠는데, 물론 그것은 활력적이고 자발적인 다른 의지들과는 조금 달랐다. 무기력하고, 부득이한 의지였다. 다행히도, 어머니에겐 아버지가 갖지 못한 재주가 있어 그 의지는 나름의 제 역할을 잘 해줬다. 판도를 뒤집을 만한 것은 못됐으나 적어도 악화가 되는 것만은 막아줬다. 우리는 어머니가 가까스로 찾아낸 의지의 불씨에 둘러앉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며,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에게 있어, 어머니의 의욕적인 모습은 다른 증오나 비난보다 효과적이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일을 벌이지 않았다. 하물며, 언제부턴가 밖을 나서는 일도 드물었다. 아버지는 삶에 의욕이 준 만큼, 딱 그 정도의 너비만큼 삶의 반경도 덩달아 줄어든 것 같았다. 해서, 아버지가 그날 내게 바다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퍽 의미심장한 결의처럼 느껴졌던 건 그 때문이었다.



 초저녁의 바다는 음산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종종 가볍게 몸을 떨었다. 몸에 땐 열기가 사그라들자, 더 큰 추위가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외투를 벗어 아버지 가슴께에 덮어주었다. 아버지는 고맙다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제지의 시늉이나, 별다른 거절의 의사 표현도 없었다. 입에선 연거푸 허연 김이 피다 지기를 번갈았다. 아버지는 왜 바다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일까. 나는 속으로 이런 질문들을 꼭 쥔 채, 가만히 아버지의 숨소리를 가만히 주워듣기만 했다. 이 추위에도 올이 풀린 듯한 호흡 소릴 듣자니 밀린 졸음이 쏟아졌다. 숨결의 박자감은 부드러웠다. 사방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침묵을 깨려는 듯,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아마 조관우의 '늪'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사는 하나같이 진솔하고 서정적이었다. 직접적이면서 동시에 은유적이었고, 단순하면서도 마냥 유치하지 않았다. 한 소절 한 소절 부를 때마다 숨은 형태를 잃으며, 제 몸을 버리며 금방 사라졌다. 딛고 있는 세계는 반쯤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몰린 아버지의 노랫말은 조각조각 바스러지며 까마득히 멀어졌다. 숨죽여 듣고 있자니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견뎌야 할 밤은 아직 오래 남아 있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불러 놓곤 쉽게 말을 떼지 못했다. 한동안 서로 긴 정적만 삼켰다. 나는 속으로 물으려 했던 질문들을 곰곰이 되뇄다. 그러다, 결국 끝내 묻지 못했다. 낯부끄럽다거나 민망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 아버지에게 보다 좋은 말을 쥐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노래가 듣기 좋다며 실없는 소릴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대신, 잠시 뜸을 들이다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바다를 보러 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유구하고 피로한 밤. 눈에 잘 비치지 않는 바다를 겨우 감상하곤, 이윽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되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농담 대신 한 저녁 라디오의 우스운 사연들을 경청했다.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라디오에선 수시로 잡음이 섞여 들려왔다. 낡고 허름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가 어디로부터 멀리 떠나온 것이 아니라 겨우 살아남아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마지막 농담을 듣는 기분이었다.


집에 막 도착했을 무렵, 시간은 이미 저녁의 한창때를 넘긴 뒤였다. 마침, 어머니는 우동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주눅 든 얼굴로 바람 좀 쐬고 왔다며 둘러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변명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저 아버지 옷깃에 묻은 모래를 털어줄 뿐이었다. 재킷을 가볍게 두드릴 때마다 옅은 바닷내가 났다. 그날 밤, 아버지는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오랜 시간 몸을 뒤척였다. 문틈으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불면이 길어질수록, 함께 바다를 보러 간 일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다가 아니었다면, 그날, 그 밤이 아버지에게 무척 어려웠을 거란 마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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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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