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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ug 02. 2021

별이와 달이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기 전부터 소란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짖는듯한 소리였다. 내가 약간의 의문과 의심, 그리고 피로가 얽힌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거기엔 작은 개 두 마리가 나를 보며 짖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개들이었다.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그녀가 눈물 고인 얼굴로 말했다. 두 눈이 붉게 부어있었다. 개들은 나를 경계하느라, 연신 쉴 새 없이 짖어댔고 거실에선 습하고 퀴퀴한 사료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집 안 가득 개 냄새가 났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렇게 물어놓곤 바닥에 눌러앉아 가만히 주워들었다. 그녀가 가까스로 울음을 참으면서 얘기했다.



개를 처음 본 건 사내 매점에서였다. 버려진 개였는데, 사장님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데려와서는 변변한 입양처가 구해지지 않아 난처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임시라도 돌봐주겠다고 선뜻 나서서 개를 받아왔다. 한데, 그중 한 마리가 유독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고. 물을 마시거나 사료를 먹는 때를 제외하곤 통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말하는 와중에도 어느샌가 자신이 붙여준 이름으로 불러가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달이, 별이, 하며 제 이름인 줄도 모르고 관심 없어 하는 얘들을 앞에 두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암컷은 달이고, 수컷이 별이야.


진단을 받았다. 가만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달이는 무릎 쪽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배 부근엔 오백 원 동전만 한 종양이 겉으로 다 드러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별이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입안엔 온통 치석이 가득 껴 있었고, 무엇보다 심장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2년도 채 살 수 없을 거란 말을 들었다. 수술을 해도 좋지 않고, 한다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취 도중 죽을 수 있는 확률도 삼십 프로나 된다고 했다. 둘 다 중성화는 하지 않았다. 더구나 달이는 그 작은 몸으로 임신을 서너 번쯤 한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하는 내내 별이는 달이의 뒤 춤을 들추며 교미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무릎이 좋지 않아 수시로 주저앉는 달이를 두고도, 별이는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우리는 그 광경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어떤 본능이 살아남아 그러도록 부추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아주 질긴 인연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천성처럼 별이에게 깊게 박혀있었다. 그건 잘못된 운명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철저한 비극처럼 보였다.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든 해결되리란 근거 없는 낙관으로 이 모든 상황을 견뎌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결과적으론 크게 나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수시로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면서 하나씩 치료를 진행해 나가면서 들은 얘기들은 고스란히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됐다. 왜 애꿎은 일에 돈을 들이면서까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냐고, 하는 소릴 들었을 땐 며칠을 괴로워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긴 말을 다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밤이 되면 조심스레 내게 털어놓았다. 고백하듯 말하는 내내 그 누구도 흉을 보지 않았고, 제게 상처를 새겨 넣은 사람에게 어떠한 원망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에도, 최대한 속뜻을 헤아려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놀라웠다. 그녀는 늘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일까."



 몇 번의 수술을 치르고 그 과정에서 많이 울고, 난처함과 당혹스러움이 적당히 섞인 시간을 보내면서 거진 시간을 다 보냈다. 별이와 달이의 모습에선 수척한 기미라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점차 살이 붙으며 확실히 이전보다 눈에 띄게 활력이 돌았다. 아직 더 자랄 날이 많이 남은 아이처럼 날마다 태가 남다르게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입양 받길 원한다는 사람들이 드물게 의사를 표해왔다. 나는 그 사실을 순조롭고 다행인 양 여겼지만, 한편으론 크게 기쁘지 않았다.


입양을 받기로 한 건, 다름 아닌 주말농장을 차린다던 사람이었다. 직접 농장에 방문했을 땐, 손수 울타리를 치느라 정신없던 차였다. 간이 컨테이너 앞엔 마침, 달이와 별이의 이름이 쓰인 나무 팻말이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플라스틱 수납함을 개조해 만든 집도 눈에 집혔다. 안에는 편히 쉴 수 있도록 보드라운 방석이 깔려 있었다. 달이와 별이는 아까부터 주위를 뛰어다니며 냄새를 맡곤, 제 집인 걸 실감한 듯 곳곳에 영역표시를 했다. 보는 내가 다 서운할 만큼, 금방 정을 붙이곤 눈에 집히는 모든 사람에게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걱정보단 서운함이 여러모로 나았다. 그렇게 두 아이를 보내고 오는 차 안에선 그녀는 몹시 속상해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론 그간 지내온 시간을 쉽사리 소화시키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의 제자리로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 같았다. 집 전체에 낮게 깔려있던 근심의 기색도 거진 다 사라진 듯 보였다. 입양 받은 분의 연락을 통해 주기적으로 달이와 별이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사진 속에서 달이와 별이는 이전의 윤곽은 남아있지만,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새 몸이 더 불고 털에 윤기가 났다. 그동안 스트레스성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간만에 달게 잠을 잤다. 밤 사이, 이를 가느라 턱에 통증이 올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늘 잠을 필요로 하는 표정을 짓던 예전과 달리, 확실히 개운한 얼굴을 지어 보일 때가 많았다. 우리가 어떤 고비를 겨우 넘어왔고, 그래서 앞으론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순조로운 암시가 어렴풋이 매만져졌다. 그러자, 문득 그녀에게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이토록 경계를 허물고 들어오는 그녀의 마음은 무얼까. 이렇게 빈번히 한 세계를 향해 제 몸을 밀어 넣는, 그 한복판에서 철저하게 무너지는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그게 미안했고, 어느 때는 의아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의 안도감은 얼마 가지 않았다. 달이와 별이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게 되자, 우리는 그 사실을 불길한 증상처럼 받아들였다. 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연락을 기다렸다. 나는 종종 불안한 그녀에게 위로랍시고, 날마다 연락하는 것도 일이지 않느냐며 둘러대곤 했다.


겨우 연락이 닿았다. 실은 답이 통 없자 무작정 방문하겠다는 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나서야 받은 답장이었다. 통화 내내 입양을 받은 사람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고, 또 대화에 두서가 없었고, 무언갈 가리려는듯 화제를 계속해서 돌리려는 말을 이어가는데,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단도진입적으로 얘기했다. 별이와 달이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거였다.



마당에 풀어놓고, 점심을 먹느라 잠시 외출한 사이 사라졌다고. 간이 울타리도 쳐 있고, 더군다나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두고 온 참이었는데도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찾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제 사정을 해명하는 내내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우리로서는 쉬이 이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얼이 빠진듯 허공만 바라봤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이. 사라졌다는 그 말이, 해석되지 않는 문장처럼 오래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 하나 하나에 불명확한 이물감을 느껴졌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말에 들러붙어 있던 거북함이 다 가시고 나서야 우리는 완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주말에 농장을 찾아, 달이와 별이의 모습이 인쇄된 전단지를 곳곳에 붙였다.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 근처 아무나 붙잡곤 행방을 물었다. 방문객들의 연락처를 받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전단지 한 장 한 장을 인쇄해 코팅하는 일에 몰두했다. 혹여 종이가 비에 젖어 찢기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거듭 지나갔다. 큰 성과없이 시간은 흐르고, 반복적이고, 마음은 물기를 잃고 서서히 말라가고, 점차 무뎌졌다. 종일 내내 불안함을 달고 살던 예전과 달리, 마음에 긴장이 풀리고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이전만큼 안 좋은 경우들을 가정하고 힘들어하지 않았다. 어느덧 근거없는 낙관이 자라났다. 당시에 나는 별이와 달이가 어디선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불분명한 근거들을 속속들이 찾아내 사실처럼 여겼다. 주말 농장에 잠시 들른 가족이 버려진 유기견으로 오해해 데려갔을 거라고. 주위 마당에 풀어놓은 강아지들이 가구 곳곳마다 널려 있었는데, 별이와 달이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진 건 말이 안 된다고 믿었다. 순간의 괴로움이 잦아들자 그런 생각은 굳어져 확신에 가깝게 자리잡았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놀랍도록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는 예전만큼 힘들어 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무언가 비어져나오듯 두 아이를 떠올린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하지만, 잠깐의 힘듦이 잦아들면 없던 일인 양 금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가 거리를 좁혀 올 때 두 팔 벌려 받아드는 사람이 아닌, 그 충돌을 피하고자 최대한 부피를 좁히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자 이제껏 나는 누군가를 가까스로 외면하며, 또 알량한 선의를 내비치며 살아왔을 거란 생각이. 언젠가 타인을 조용히 박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며칠이 괴로웠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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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mail : sks93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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