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후 행하는 모든 일들이 도리어 예정된 것이었다고 둘러댈 수 있는 최상의 변명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불명확함과 명확함은 서로 혼융된다. 적확해야 한다는 강박은 불안과 공포를 무모할 정도로 버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여행에서 마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막연함은 때론 헐거워서 썩 마음에 들기도 하는 것이다.
구두는 뒷 굽부터 녹듯이 닳는다. 눈은 서늘하고 조밀히 쌓였다. 뽀얀 쌀알 한 줌을 쥐고 돌돌 말린 손가락을 서서히 벌리듯, 한 걸음마다 한 차례씩 눈이 발 안쪽으로 들어찼다. 느즈러지게 풀리거나 켕기듯 당겨지는, 유동적인 걸음을 되풀었다. 미끄러지고 휘청여도 다만 내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방향의 목적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은 삶을 체험하는 하나의 방식이거나, 길이 흔히 생의 유비로 일컬어지는 이유기도 했다.
눈은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내렸고, 쌓이는 것마다 족족 반문하듯 아래에서 위로 치켰다. 모든 사물들의 윗면은 그러한 눈의 밀담을 차곡차곡 기록했다. 닿을 때마다 층을 이루는 눈 속에서 허공을 유영하던 시간조차 유연하게 퇴적되는 것 같다. 맹렬히 질주하는 시간은 쉼 없이 움직이는 행인의 머리와 출렁이는 우산의 얇은 막 따위에나 얹혀 발견되었다. 그것에는 결코 눈이 쌓이지 않았다. 골목의 눈들은 수 많은 발자국을 받아냈어도 좀처럼 구정물을 토해내지 않았다.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아마도 색색의 천을 펼쳐 놓고 좌판을 벌인 것은 골목의 눈들이 쉽게 녹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습기가 짙은 봉제인형들의 몸엔 허기가 가득 차 보였지만, 눈은 거슬릴정도로 명료했고 실반지와 귀걸이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하나같이 품에 안기거나 매달려야 하는 것들인데 위독할 정도의 체온은 거부감만 줄뿐, 그들의 처지는 흥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내놓은 좌판의 가게는 주황빛 수은등을 켜놓고 있었다. 서리는 투명하고 맨질한 창에서 자라나는 하얀 능소화 같다. 서리 틈에서 간간이 빛은 새어 나왔지만, 볕은 창에 부딪쳐 매번 사그라들었다. 창은 빛보다 볕에게 더욱 매정했다. 어쩌면 서리는 허기와 한기로 집약된 물품이 창을 통하여 번지는 절박한 호소였을지도 몰랐다.
모든 가게들의 품목은 짐짓 비슷해 보였다. 주인분의 취향에 따라 그 모양새가 조금씩 차이 날 뿐이었고 그 취향은 대체로 지긋하게 나이가 드신 분들의 것이었다. 모자나 재킷, 액세서리마다 회화 작품의 서명처럼, 자신의 고유 표식을 고집스럽게 박아놓았다. 짤막한 목의 기린이나 눈이 가는 부엉이와 같은 모순된 동물 모습이었다. 그것은 기이한 와펜이나 이국적인 문양을 곁들인 자수로 꿰어졌다. '살 수 있을까'에 관한 물음은 슬쩍 훔쳐본 주인장의 표정을 의식한 '그것을 제거할 수 있을까'의 순화된 표현이었다. 내 손의 움직임은 그의 표정을 예민하게 변주했으나, 서로의 표정은 계속해서 엇갈렸고 취향은 좀처럼 세대를 넘지 못했다. 그가 가끔씩 자신이 만들어낸 물품들을 향하여 환하게 미소를 지을 때마다 나는 결코 마주 할 수 없는,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그 무엇이 발견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는 그에게 분명했던 것도 돌연 감춰지거나 희박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 윗머리엔 굳은살이 골무처럼 박여있었고, 자주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 모을 때마다 그러한 손가락이 희미하게 내비쳤다. 누군가의 손을 들여다보았을 때 굳은살이 들춰지는 일을 동작이 아닌 살갗의 수화라 부르고 싶어진다. 우리는 육체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지만, 육체는 몸속에 머물러 자신이 몸을 사용한 기억을 경미한 자극으로 반응하고 흔적을 기록해 놓는다. 굳은 살은 육체의 연혁이다. 굳는 일은 언제나 시간을 동반했고 그것은 삶이 자신만의 수공예로 몸에 새겨 넣은 인장이었다. 그가 물품에 밀어 넣은 자수나 와펜처럼. 그러니까, 굳는다는 것은 육체가 한 부위에게 기꺼이 의식을 잃어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한 육체가, 무지막지한 노동으로 집약된 살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내어준다는 이야기다.
어느 가게 건 빈 손으로 나온 순간, 모종의 죄의식이 축축하게 들어찬다. 주인 분의 수고로움이 못내 아까워서. 혹시라도 그가 공공연한 자랑을 위하여 이 가게를 차렸더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도 내키지 않는다. 살면서 괜한 고민인걸 알면서도 결국 하게 되는 고민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것은 늘 뻔한 장소에 정박하지만 마음은 대뜸 헐어버리기 일쑤여서,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유약함을 생의 성질이라 믿어야 했다. 사람 마음이 닿는 것에는 모두 그러했으니, 사랑이나 여행은 오죽할까.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은 군청색에 가까워졌다. 추위도 그만큼 짙어졌다. 어느 가구도 화분을 실내로 들여놓지 않았다. 모자를 귀까지 덮고 웅크린 채 페달을 밟는 이들의 발동작은 어딘가 둔 해 보였다. 그들에게 추위는 쏟아지듯 몸을 훑었을 것이다. 스산한 골목에서 가로등은 주황빛 테두리를 그으며 핀 조명을 만들었고, 장례식 행렬처럼 사람들은 몸을 떨며 무대를 점차 벗어났다. 관객이 막 자리를 비운 극장에서 홀로 팸플릿의 시놉시스를 읽어야 했던 슬픈 연극이 떠오른다. 또 다른 공간의 내부같이, 스스로를 감추고 있는 골목은 은밀하기도 했고 헐벗은 나신처럼 가엾기도 했다. 골목은 길이라는 말보다 공간과 공간 사이, 틈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골목 안 쪽, 입술을 힘껏 포개 놓은 이들의 적요는 막차가 끊긴 대합실을 닮았다. 가끔씩 추위를 참으려 몇몇은 신음 비슷한 소리를 흉내 냈다.
초코바 몇 개를 집어와 먹은 이후, 제 때 먹지 못하는 바람에 배는 입보다 자주 옴지락거리고 수채 구멍으로 빨려가는 물줄기 소리를 낸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소리를 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기는 제 몸이 고파도 먹이지 않는 이의 무능함을 소리 내어 창피를 준다. 그래 봤자, 겨우 카페로 방향을 잡을 뿐. 얼마 못가 또 창피를 당하겠단 소리다.
문을 여는 순간 눈이 부셨다. 거무스름한 잿빛의 색에만 집중하다 다채로운 색을 마주한다는 건,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하여 목도한 빛처럼 부시다. 빛의 세기가 아니라 색의 교대에도 눈에 예열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게 안은 시끄러웠고,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그 소란을 잠시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이전의 행동들을 이어갔다. 2인용 테이블 한 자리만 비어있었다. 가방을 얼른 앞좌석에 던져 놓아 일행이 없다는 것을 에둘러 전했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받아 마셨다. 만일 내가 이 가게로 발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숨이 말들의 시중을 들다 죽을 것처럼 가게는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제 무리의 테이블에서 재밌는 이야기 오고 가다가도 그 화제는 금세 두 테이블의 공통 주제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의 고민을, 주인장은 적당한 손님에게 풀어놓는 듯했다. 필사적으로 말해야만 하는 사람과 최선을 다해 들어야만 하는 사람 간의 치열한 경합에 가까웠다. 물 한 잔을 비운 다음에야 메뉴판을 받을 수 있었다. 유독 초콜릿이 입맛에 잘 받는 날이었는지 어딜 가건 초콜릿 만큼은 엇비슷한 맛으로 수렴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코코아를 가리켜 보여주었다. 어떠한 이국의 언어로도 훼손할 수 없을 정도로, 타자기의 발음처럼 코코아의 발음은 간명하다. 하지만 코코아의 맛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물을 더 자주 마셨다. 밖을 채색하는 것은 온통 남청색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어서 실내보다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뿌옇게 서리가 번진 창은 가로등의 밝기를 줄였고, 비치는 모든 색을 연하게 배색했다. 검게 그을린 윤곽으로만 가늠된 행인은 빛에 유배된 그림자가 낮동안 바닥에 쓸리다 밤만 되면 벌떡 일어서서 유령처럼 떠도는 것 같았다. 환대받지 못한 여행객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소외뿐이었다. 코코아는 반이나 남았는데, 더 이상 허기를 채우고 싶지도 않았고 손으로 책을 들고 있으면서 펼쳐보지도 않았다. 소란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무슨 행동을 취할수록 저들에게 더욱 안쓰럽게 보일까, 괜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자리는 만석인데 또 한 분의 손님이 들어왔다. 주인 분은 자칫하면 내가 질투했을 법할 정도로 방금 온 손님을 살갑게 맞았다. 이방인이어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은 적도 있지만 이방인이이서 철저히 분리되기도 했고, 그와 같이 현지인이어서 자연히 무심한 적도 있지만 현지인이어서 의무적인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이방인과 현지인 사이의 괴리는 적어도 시차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 격차는 사람의 성질에 관한 것 일지도 모른다. 축적된 서로의 시간에 여백이 많았는지, 주인 분과 손님은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서서 말을 채웠다. 좌석이 없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주인분은 직선 복도 중간에 서서 고개를 두리번 거렸지만, 그가 발견할 수 있는 좌석은 분명 없어 보였다. 그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봤다. 아,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좌석은 분명 없어 보였지만, 그것은 그가 발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좌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 모으며 다가왔으나, 굳은 살의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의 입 모양을 살펴야 했다. 비우지 못한 잔이 버젓이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마셨냐는 듯 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자리를 비워주어야겠다고. 비참할 정도로 그가 나를 밀어낼수록, 실례됨을 무릎 쓴 불청객으로 스스로를 학대해야만 했다. 그들의 시간은 나를 빗겨 흐르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고, 어쩌지도 못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가방에 넣으며 황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예정된 일정은 없었지만, 그러는 편이 그에게도 또한 나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은 코코아를 크게 한 입 들이키며 일어섰다.
바(Bar) 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분이 그를 불러 세웠다. 짐을 추스른 다음, 빈 의자를 끌며 내게 보여주었다. 이리와 앉으라는 말이었다. 이들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나는 즉흥적이고 어리숙한 일인극을 선보여야 했다. 다시 한 번 황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주인분은 모았던 두 손을 풀어 바닥으로 누르는 시늉을 반복했다. 앉아도 좋다는 말이었지만, 나와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엇인가 굳어 있는 느낌이었다. 닫힌 것은 벽이 아니라 문이었는데, 도무지 열리지 않을 것처럼 서 있던 느낌과 비슷하다. 눈의 무늬는 자주 빈 허공을 가리켰다. 눈은 가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허락 없이 쏟아내는 탓에 각자의 눈으로 서로를 담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고집대로 가게 밖을 나와야 했다. 노인분도 더불어 가게 문을 나섰는데, 말이 도중에 끊겨 아쉬운 사람처럼 내게 곧장 말을 붙였다. 나는 서둘러야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바쁜 사람처럼 굴으며 그의 말을 흘렸다. 잘 가라는 말을 남기고 그가 천천히 움직이자, 나는 등을 보이며 반대로 걸음을 이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바람이 이악스럽게 전신을 흘겨 지나간다. 밤마다 벌떡 일어선다는 그림자처럼 골목을 조금씩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