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충분히 슬플 수 있었다.

by 이음

큰 창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자리를 좋아했다. 기다란 테이블에, 안쪽 깊숙이 박은 의자를 끌어 앉고 딱딱한 등을 세워 시선의 끝을 잠시 놓거나 천천히 들춘다. 그렇게 목선을 유연하게 굽히는 모습은 어딘가 가냘프고 짝이 맞추어지지 않은 퍼즐처럼 서먹하다. 어쩌면 결연한 다짐 같은 것 일수도 있다. 어떤 공간에 머무르면서도 철저히 그 공간을 등지고 외면하겠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소란에 혹사되는 것은 귀만으로 족하다는 자신만의 거친 의사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모습은 여전히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들이 신체를 조금씩 뒤틀거나 움적일 때, 몰래 옆얼굴의 굴곡만을 훔치다 말 수 있을 뿐. 결코 들켜서는 안될 사람 같아 보인다.


누군가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창문의 건너편에 서는 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련해진다. 통과하여 온 창밖은 어떤 공간 내부의 연장일 수도 있지만 철저히 분절된 세계이기도 하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치근덕대는 사람이 느끼는 교감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말들이 지나온 여독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비참할 때가 있다. '서로'나 '우리'라는 말을 곁들이며 창문을 점자처럼 지문으로 해독하려는 연인은 이제껏 쓰인 '놓다' '잃다'에 관한 말이 한낱 남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창의 관계에서 호도한 암시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창은 여과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의무적인 분실을 경험하도록 강요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웅성이는 말들이나 그윽이 눌려 있는 볕 심지어 색과 빛이 그랬다. 창은 늘 모자라고 희미하고 엷게 덜어줬고, 우리는 수시로 밀어 넣은 그 무엇들의 잔해만을 간신히 회수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부서지는 창의 사금파리들이 왜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관한 불명확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창가에 나는 지금 앉아 있다. 등을 맞대어 볼 수 없는 전경은 바로 뒤편에 있어도 지나치도록 멀게 느껴진다. 귀로 누군가가 흘린 소리를 허덕이듯 주워 마셔야만 그 괴리를 부분적으로 매울 수 있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아마도 둥글고 안쪽으로 오목히 파여있을 잔끼리 서로 부닥치면서 짧지만 굵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미끄러지듯 내려 긁으면서 잔음을 연달아 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마실 것을 덜어주는 모양이었다. 티슈를 2번, 3번 뽑던 소리는 덜어내다 흘려버린 몇 모금의 음료를 , 묽게 흐르는 콧물을, 아무튼 흐른다는 것의 물리적인 성질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실패해버린 아쉬움을 닦는다. 목재처럼 단단하게 굳은 바게트를 나이프로 자를 때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톱질처럼 끌거나 켜는 소리가 일렬로 줄지어진 고리를 꼼꼼히 엮거나 푸는 지퍼의 그것과도 사뭇 비슷해서였다. 시계의 분침처럼 도식적이고 반복적으로 딸칵 딸칵하다가 쿵 쿵 두어 번쯤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마 후 진동벨이 요란을 떨었다. 해독할 수 없는 말들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말들은 듬성듬성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고, 그래서 어지러웠고, 시간에 묵은 먼지가 일제히 부지런을 떨 듯이, 공간 속으로 산란되는 말들 역시 지저분했다. 귀로만 소란을 혹사시키는 일이 얼마나 곤혹한지도 알게 되었다. "의자를 빼어가도 괜찮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말이 얼마나 절실할 수 있는지 실감했다. 스스로를 아주 먼 곳으로 유배시켜 본 적 있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었다. 유목민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다. 그들은 질기고 탄력 있는 역동성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타지로 부추긴다. 그것은 소외와는 다르다. 의자가 비워 놓고 간, 한 칸의 공간만큼 쓰일 수 있는 테이블의 공간도 덩달아 늘었지만 무엇이 그만큼 대신해서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다리는 좀 더 누추해졌다.


커피에 띄워 놓은 몇 개의 얼음은 제 살을 뭉개듯 녹으며 몸집을 덜어냈다. 흘러나온 물은 고동색의 커피 위에 층지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씩 빨대로 아무 형상이나 그려 넣으며 섞었다. 마시는 일은 드물었다. 2층은 1층보다 규모가 작았다. 2층 창가 자리에서는 부족한 규모만큼, 내밀고 있는 1층 여분의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두 테이블이 아슬하게 걸칠 정도의 규모였다. 오른편 테이블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여자는 황톳빛이 도는 라테를 마셨고, 남자는 잔 기포가 자글대는 탄산음료를 마셨다. 여자는 성가시게 구는 빛에 피로하다는 듯이, 책날개를 얼굴 정면에 덮으며 읽는 쪽이었고, 남자는 영자 책 문두의 큰 알파벳이 보일 정도로 최대한 열어젖히며 읽는 쪽 이었다. 여자는 안경을 걸치고 있어서 가끔씩 미간 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올려야 했지만, 남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둘을 이분할 수식은 많았어도, 그 둘은 분명 연인이었다. 이따금 손을 서로의 손 속으로 파고들며 꼼꼼히 매만졌다. 습관처럼 미소를 짓는 데는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책을 읽다가도 소리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속삭였다. 그것은 무척 예민해서, 이 공간에 대한 예의이기보다 들켜선 안 될 밀어를 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의자를 빼어가도 괜찮겠습니까"따위의 말은 적어도 그들에게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버려질 것 같았다.


어느샌가 하늘은 새벽빛이 돌다가 진해졌다. 스스로 빛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것들은 묵묵히 그 시간의 침전물을 적셔야 했다. 창도 검게 묻었다. 창에 유화 같던 빛들은 뿌연 물을 먹어서, 경계를 지우며 수채화처럼 번졌다. 등 뒤의 말들은 더디게 잦아졌고, 다급하게 쌓였다. 누군가도 나처럼 쫓기듯 듣고 있다가 쏟아지는 말들 중 몇몇을 거듭 잃어버렸을 것이었다. 스크린에 빛을 투사하는 가열된 등사기처럼, 등 뒤의 풍경은 정면의 창을 향해 등사되었다. 마주 보는 건너 가게의 창은 이미 상영을 끝마쳤는지, 어둡고 적요했다. 낡고 허름한 가게였다. 그곳의 주인분은 정산을 하다가도, 무엇에 쓸려 살갗이 따가운 사람처럼 종종 양팔을 손으로 부비면서 움츠렀다. 손가락은 자주 눈시울 근처를 맴돌았다. 손바닥은 틈틈이 얼굴을 감싸거나 쥐었다. 정산을 하면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손이었다. 등 뒤에서 투과되는 분주함은 그런 그를 향해 번져있다. 그는 너무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그 속에서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한 허구처럼 보였다. 얼굴은, 그가 보는 모니터의 빛에 의지해서 가끔 드러났다. 종일 단단히 매어둔 유니폼의 뒷 끈과 함께 묵혀둔 숨도 풀었다. 나는 그 순간을 시로 옮기고 싶었지만, 손은 주저하거나 절뚝거리면서 지독한 실어증을 앓았다. 손으로 문장을 적어내면 걸어온 만큼 손은 첫 줄로 되돌아갔다. 이 글은 신열을 않은 손의 너저분한 기록이다.


나는 첫 문장에서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명암의 추상만으로 충분히 슬플 수 있었다.'라고 적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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