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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Sep 14. 2021

어쩌다 보니

부산에서의 인터뷰를 마치고, 밖을 나설 즈음 그가 말했다. 먼 길 오셨는데, 바다라도 좀 보고 가세요. 조금만 걸어가시면 보일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기껏해야 대접한다는 게 바다인 것이 민망한 모양인지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딱히 미안한 일인가 싶어, 나는 제대로 바다 구경도 못했는데 잘 됐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가 다행이라는 듯 수줍게 웃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언덕을 조금 내려오니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보는데, 부산이 고향이라던 전 직장 동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늘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원고 마감을 잘 지키지 못하는 편이었다. 내가 예정된 마감 일보다 늦어질 적이면, 전 직장 동료는 불안한 눈빛을 하고 와서는 '이음 씨, 혹시 큰일 났나요?' 하고 내게 물어오곤 했다. 그런 동료의 놀란 표정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내 머릿속도 새하얘졌다. 내 불안이 타인에게 전염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때마다, 나는 전 직장 동료에게 위로랍시고, 제가 어떻게든 끝내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따위의 말을 건넸다. 물론, 기한을 지킨 적도 있었지만, 지키지 못할 때도 꽤 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결과물은 어떻게든 잘만 나와 있었다. 그간 마음 졸인 수고가 민망할 정도로 멀쩡하게 인쇄된 결과물을 보고 있을 때면 괜한 허탈감 마저 들었다.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과 고작 이런 것 때문에 싶은 마음이 반반쯤 섞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전 직장 동료를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사람은 어쩌다 먼 길을 올라와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됐나 대뜸 궁금해졌다.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긴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만 짧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나라고 이곳에서 글을 쓰며 일하게 될 줄 알았나.



이른 저녁, 바다를 두고 한참을 걸었다. 종일 변변한 식사도 못 해서인지, 슬슬 허기가 졌다. 기왕에 부산까지 왔는데 이대로 가면 아쉬울 듯해, 인근 맛집을 검색했다. 마침, 근처에 유명하다는 국밥 가게가 한 곳이 있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약 한 시간 반가량 남아 있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떻게든 먹고 갈 작정이었다. 부산인데, 국밥 하나 정돈 먹고 가야지. 아쉽잖아. 그렇게 밖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는데, 재료를 손보던 아주머니가 슬쩍 고개를 내미셨다. 안에서 기다려요. 오래 걸릴 텐데. 괜히 실례를 한 것 같아, 사람 구경하는 게 재밌다고,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아주머니는 부산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큰일 났네.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맛없으면 어떡해.


맛은 괜찮았다. 간도 적당했고, 입맛에 잘 맞았다. 평점이 4.2점 정도 되는 가게였는데, 나머지 0.8점 분의 불만이 무엇인지 괜히 궁금해져 리뷰를 살펴보았다. 맛이든, 서비스든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아쉬운 감상을 적었다. 뭐, 취향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저녁을 해결 하곤,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인터뷰 초고를 썼다. 인터뷰 내내 그가 자주 했던 말은 '어쩌다 보니'였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됐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계속해서 듣다 보니,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 마치 삶의 기본적인 속성처럼 느껴졌다. 삶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말처럼 들렸다. 뭐 당장에 나도 퇴사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마감에 쫓길 줄 알았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삶에는 '어쩌다 보니' 라는 말로밖에 수식할 수 없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단순히, 삶의 과정을 생략하고 싶다거나 부연 설명을 회피하고 싶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정말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가 있다. 삶은 사실적이지만, 가끔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내가 예상한 일이 보기 좋기 들어맞지도 않고, 삶의 인과관계가 늘 명확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 아쉬움의 틈이 쌓여, '어쩌다 보니'가 되는 거겠지. 조금 살아보니, 세상엔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게 됐다. 그러니,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삶의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가 말한 '어쩌다 보니'를 주의깊게 들어본다. 그 속에 담긴 불가피한 사정과 사연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분명 그 '어쩌다 보니'의 순간에는 작은 삶의 고비가 있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 여기서 왜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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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mail : sks93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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