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은 낙차가 깊다.

by 이음

흰 사각 테이블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정면으로 두고 말을 하지 않았다. 고요는 오래 그곳을 뜨지 않았고, 누가 그것을 물리는 일도 없었다. 계산대 쪽에 두어진 물통엔 가까스로 녹지 않은 얼음 두어 알이 천천히 자신의 몸을 버리고 있다. 주인은 물통의 바깥으로 맺힌 몇 방울의 물들을 가끔 손으로 훔치듯 쓸어내렸다. 빛에 의지해서 커피콩을 한 움큼 쥐어 펼쳐 놓으며 아주 오랫동안 몇 알을 솎아내기도 했고 부품의 마모를 감별하는 늙은 시계공의 모습이 그런 주인에게도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주인은 생각보다 젊었다.


그곳은 내가 카스카라 차를 좋아한다고 처음 고백하던 장소였다. 시큼한 과일향이 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희한하게 나는 차에서 담뱃잎 향이 난다거나 고목이 자신의 결에서 흘려보내는 목분처럼 텁텁한 느낌에 가닿았다. 내 혀는 종종 모든 맛에서 쓰다고 요약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주인은 혀가 부리는 심술을 다독이려 피칸파이 한 조각을 내주었던 사람이었다.



환절기 즈음이라, 두 계절이 시비를 가리어설프게 공존했다. 눅눅한 공기는 피부에 닿으며 늘어졌고 남자는 얼굴을 지운 채로 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갔다. 반면, 여자의 얼굴은 낙차가 깊었다. 주인은 커피콩을 펼쳐 놓으며 솎는 일반복적으로 되풀면서 미간을 좁히거나 늘였다. 여자가 무릎의 주름을 일 그리며 일어설 때도 여전히 남자는 표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한동안 여자는 책장에서 손가락을 책의 앞코에 걸어 끌며 표지를 살펴야 했다. 손이 매서운 낚싯바늘처럼 거칠게 책을 꿰다가도 이내 엄지로 밀어 보내며 풀어주는 모습은 투정에 가까웠다. 소설이나 만화, 심지어 교재들도 연약한 손가락의 수고에 부드럽게 걸려 왔다. 그 일을 그친 것은 300피스짜리 퍼즐을 길어 올린 때였다. 마치 한 번도 열려있어 본 적이 없었다는 듯 굳게 잠근 남자의 입의 행적을 더 이상 좇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불신에 가까웠다.


여자는 공간의 모든 행위를 남자에게 할애받아 쓰는 듯 보인다. 퍼즐을 한 주먹씩 차곡차곡 꺼내어 쌓아두는 일도, 식기를 직접 손으로 감싸 들이키는 일도 그랬다. 무엇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 앞에선 누구도 자신의 시간을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용해될 수 없는 시간이라면 차라리 그에게 복무시키기로 결심한 듯, 행동은 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남자에게 속해 있었다. 남자는 필요치 않는 말을 잠그고, 여자는 쓰이지 않은 말을 지운다. 다만 어떠한 흐름이 둘 사이에 듬성듬성 머물고 있는 듯했다.



여자는 퍼즐곽 뒷면에 그려진 완성도를 책처럼 쥐면서, 모서리부터 하나씩 구도를 잡아나간다. 퍼즐은, 별이 조밀하게 흩어진 밤하늘의 풍경이었다. 날카롭게 모난 별의 모양새는 전부 엇비슷했다. 교접되는 홈의 구획이 없었더라면 모든 별은 같은 별이 되었을 수도 있었고, 그것은 이 퍼즐이 무척 난해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퍼즐을 두고서 열댓 개의 퍼즐이 연거푸 들락였다. 한 면이 평면인 가장자리의 것은 맞추기가 보다 수월한 탓에, 하나의 액자틀처럼 가장자리를 우선 정돈했다. 여자가 퍼즐을 맞추어가는 방식은 피우거나 확산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접히거나 오므라지는 형상에 가까웠다. 퍼즐은 어떠한 중심을 헤아리며 쌓여갔으나, 단 한 번도 남자의 손은 여자의 손을 배웅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윤곽이 다듬어지자 들여놓을 공간의 여분과 채워 넣을 퍼즐의 수가 얼추 셈이 된다. 아마, 6칸 정도의 퍼즐이 모자랐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는 머리를 테이블 밑으로 끌어내리며 두리번거렸다.


남자가 여자를 정면으로 두고서도, 정작 눈에 담게 된 것은 그쯤이었다. 입에서 겨우 떨어진 "뭐해"라는 첫 말이 가까스로 떨어진다. 변하지 않는 으로 건넨 그 말에, 한 동안 여자의 눈이 길을 잃었다. 퍼져오는 빗살을 등으로 피신해온 얼굴에는 축축한 그늘이 정돈되어 있다. 얼핏 보면 얼굴이 깊게 음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토록 쉽게 뱉어낸 말을, 여자는 스스로를 이국의 사람처럼 여기면서 어려워했다. 무릎을 구기면서 얼굴도 구겼고, 남자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성급하게 무엇이든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다.


시간이 어디론가 흩어지는 상상을 하면 나는 종종 안쓰럽게 하루를 셈했고, 차마 시간의 여백을 순조롭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연인에게서 시간이 간헐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실감한 여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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