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의 노인

by 이음

동네마다 오락실 한 두 곳쯤은 꼭 있던 때였다. 획이 바뀌어버린 나이의 발음을 익히기보다 이제 막 밀레니엄이니 첨단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길들이던 시절. 모든 간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문구를 유행처럼 덕지덕지 치장했다. 당시 택시 기사분들은 밀레니엄이란 말을 끼니처럼 꼬박꼬박 들었을 테고, 밀레니엄은 체험되는 삶보다 오히려 그 문자들로 더 실감이 났을 것이다. 가끔씩 말의 가짓수로만 살아지는 삶들이 몇 순간 있다. 허나 오락실 간판마저 밀레니엄이 적힌 것은, 실없던 사람이 진중한 말을 꺼내자고 본 적 없는 눈의 색을 비출 때만큼이나 어색했다.


온종일 100원, 100원렸다. 돈을 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액수를 더 부른 적도 있다. 몇 개의 동전으로 한 두 시간은 거뜬히 부릴 정도로 나는 어렸고, 그래서 시간을 헐값으로 쓰던 아이였다. 아프지 않아도, 일찍이 몸에 싫증을 느껴버린 일도 아마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몸으로 재현되기까지는, 긴 계주를 돌고 오 듯 꽤 굼뜨다는 사실. 오락을 못한다는 건 과목 중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100원, 100원 거렸던 날이었다. 꽉 쥔다는 느낌보다 무엇인가 나를 살짝 덮고 있다는 느낌만큼만 후운 날씨였다. 월드컵이라고 적혀있던 간판이 밀레니엄이라 바뀌고 나서 하루 이틀 후였는데, 글자 외엔 바뀐 것은 없었다. 주인아저씨께 밀레니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물었다가, 천의 자리가 교체되는 지점이라고 들었을 때. 그것 참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얼마를 살고 몇 번을 죽어야 하는지 셈을 해보니 그게 또 대단한 일 같기도 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게 자신을 대입해보고 감탄하던 일이 빈번했지만, 그냥 무엇이든지 나보다 대단하다는 것 외에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몇 없었다. 그땐, 아직 작고 떫고 어설펐다. 동전을 수 없이 들이 넣어도 버튼을 누르는 손놀림은 도대체 숙치 않았다. 동전과 오락의 숙련 간의 비례식은 너무나 일방적이어서, 차라리 나보다 수지가 맞는 친구에게 동전을 건네주는 일도 서슴없었다. 아마도, 보고 듣는 것이 물리적인 행위로 도달하는데에 측정할 수 없는 긴 내부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오락으로나마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무엇이든지 나는 간신히 한다.


오락기의 투입구엔 100원이라고 반듯하게 쓰여있다. 500원이나 1000원이 별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딱 100원만 들어갔다. 꼭 모아도 얼마 담지 못하는, 조그마한 여린 손에 동전 한 가득 퍼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일 것 같았다. 큰 액수의 종잇 돈은 항상 훗날에 쓰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내 손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금액을 수로 환산하지 않고 무게로 저울질을 했다. 차라리 동전을 가득 쥐어주는 게 든든했다. 종이는 낼 수 없는 둔탁하고 쩌렁쩌렁한 동전의 마찰음이나 쇳내와 땀내가 섞인 동전의 꼬릿 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가끔씩 선명해졌다. 무엇을 깊이 앓는 사람처럼 오락실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결코 들켜서는 안 될 공모를 꾸미듯 은밀해야 했다. 그땐, 알아도 모르는 척했던 곳이었고, 쓸데없이 실업한 아버지를 보고도 그랬던 때였다. 내가 아직 덜 익어서 그랬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꼭 더 하고 싶은 천진한 심술 같은 것이 없었다. 더구나 그럴 호기조차 없었다. 다만,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고 보는 고집은 좀 부릴 줄 알았다. 둔통 섞인 소리를 꼬박 들어가며도 그곳을 찾았다. 평생을 살면서 몸속으로 긴밀하게 수급받아야 할 것들이 무수히 있을 것이고, 그것이 단지 오락이었을 뿐이었다. 그 날, 어느 노인이 오락실에 찾아온 일도 비슷한 연유였을 것이었다.


세월이 늙게 빚어낸 몸이 아니라, 전력으로 소진된 몸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유난히 새까맣고, 주름은 그 자신을 집어삼킬 듯 뒤덮였다. 바지춤을 괜히 흔들어대며 짤랑거리면, 아이들은 곧 잘 바지를 주시했고 꽤나 늘어진 주머니의 낙폭은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동전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차례씩 동전 세 닢 정도를 주머니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여린 손 안으로 심어주었다. 그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일제히 떼를 쓰듯 100원만 100원만 거리는데, 노인은 야윈 몸으로 당해 낼 재간이 안됐다. 표정만은 줄곧 생글거리는 것이, 어린 손이 드문드문 끼어들며 에워싸거나 옷 춤을 들추거나 하는 것을 보면 베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갈취를 당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늙을 대로 늙은 누군가가 오락실에 들어온다는 건 이렇게 아릿한 일인지는 몰랐으나, 확실히 둘의 부조화는 슬픈 기색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외양에서 물러난 듯, 건너 보기만 했다.


"너도 가서 해라."


그가 내게 다가와 단단하고 무덤 한 손짓으로 어서 하라고 동전 몇 닢을 쥐어줄 때도 한사코 받지 않았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돈을 받으면 무엇인가 손을 타고 흘러 들어와 전염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별 수 없다는 식으로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오락기에 동전을 밀어 넣었다. 손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둔했다. 제 몸에서 난 손가락 이지만 생동하지 못하는 게, 어딘가에 뿌리를 옮겨 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팔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삶이 혹독하고 거칠게 육체를 부린 흔적. 자신 말고는 그 누군가 손을 데어 본 일이 오래됐을 것이고, 평생 자신을 마중 나올 사연과 더불어, 밤마다 다른 팔로 달래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자꾸만 비워내고 헐거워지는 와중에 수급받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니, 과격한 몸에 도대체 무엇이 소용 있을런가. 얼마간 동전을 더 넣다가, 주다가, 흘리다가, 그렇게 바지춤의 짤랑거리던 소리도 줄다가, 결국 멎고. 무작정 동전 몇 닢을 내 앞에 던져놓은 다음, 그대로 자리를 떴다. 어느 아이도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슬픈 것에게 나는 언청이처럼 말을 잃어버린다. 그 슥한 일에도 아직 목이 잠기는 걸 보면, 무엇에 된통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잠긴 것 같기도 하다. 비록 그의 손은 닿지 않았지만, 진작에 점염되거나 홀린 사람처럼 앓고 있는 것은 그 노인이 아직 내 몸속에서 긴 유랑을 하고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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