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쯤 돌려 보아도 울 수 있는 영화에도 난 단 한 번을 울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누군가 좀 긁어달라며 비스듬히 등을 밀어 보일 때나 오랜 시간 걷다가 멈춘 발에서 익은 열기가 올라올 때, 참 쓸데없이 먹먹해진다. 아마도 나는 제 멋대로 불편하게 소화시키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고, 스스로 음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는 것도 전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울음을 주의 깊게 듣거나 앓으려 할 수는 있어도, 섣불리 타이르거나 그치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우는 일은 웃는 일보다 번거롭다. 좀 더 많은 제약이 따르고, 인색한 이유는 아마도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쉽게 위로를 건네고, 모든 일은 다 잘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위안은 지나치게 감미로워서 자신의 조망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들거나, 누군가의 슬픔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변명이나 기피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울고 싶을 땐, 그냥 쭉 놓아버리듯 울으며 자신의 수심을 재어보는 일도 필요하고, 그래서 위로란 기꺼이 누군가에게 깊게 물들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보통 슬픔은 입체적이지만 동시에 추상적이어서, 오래 들여다봐야 겨우 볼 수도 있고 늘 상 보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정성으로 매만지는 주물이 그 형상을 갖추어 가듯, 대상에게 깊이 물이 들어야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면도를 하다가 날에 살이 깊게 패였다. 연고도 없어서 가리듯이 대충 반창고 하나만 붙여 놓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그것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은 꽤 성가셨다. 더구나 한창 깎고 다듬는 일에 몰두하던 때였다. 어느 가게에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제목의 책이 배치된 것을 보고, 괜히 연필과 작은 커터칼 하나를 사서 빼먹지 않고 틈틈이 깎아 댔다. 흑심이 닳지 않아도 일부러 꺾어 부러뜨리면서까지 깎는 일에 빠져들었고, 차분히 깎고 다듬는 일은 가끔씩 나를 다듬는 일이 되기도 해서 오랫동안 밀고 문질렀다. 그런데, 수염을 깎던 와 중 턱을 베이고 만 것이다. 나는 평생을 간신히 살다가 죽을 것처럼 서투른 사람이라 그리 호들갑 떨 일은 못되는데, 하필 그가 꺼낸 '넌 참 깎는 일을 좋아해도 서툴러서 자주 베인다.'라는 말에는 무엇인가 넘어올 듯 울컥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짠하게 축축해지고 연해지는 것이, 좋아한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혹은 서툴다는 말이나 베인다는 말 때문이었는지는 도통 모르겠으나 분명히 아리거나 저린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행간에서 지극한 짝사랑을 읽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참 좋다'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진정이나 진중함 같은 것이 '자주 베인다'에 도달하면서 기피되거나 거부되는 것 같은. 원래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그러는 법이니까.
며칠 후, 대뜸 그가 면도기 하나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다행인 것은 전동 면도기가 아니라 날면도기였다. 아직, 깎고 다듬는 일에 정을 붙여놓은 터라 그랬다. 그래도 면도기를 선물로 받은 것은 좀 의아했다. 잘 모르겠으나 분명 내가 그의 무엇을 건드리거나 물들게 했음은 확실해 보였다. 안 그래도 무른 가슴에 구멍 하나를 훤히 심어 놓은 것이었다.
나는 자주 헐거나 아파야 하는 버릇이 있어서, 죽겠다는 말을 꼬박꼬박 챙긴다. 그때도 유달리 목이 헐었던 날이었고 그래서 죽겠다고 하소연 좀 몇 번 부렸던 것이 그는 못내 난처했던 것일까. 허는 일은 좀처럼 들키지 않고, 베이는 일은 쉽게 들켜버려서 그랬던 걸까. 사실, 죽겠다는 말을 남발하면서도 죽는 일과는 너무도 무관한데, 그냥 그렇게 말이라도 해야 좀 털어내거나 트일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였고. 나 같은 놈의 말을 그가 덜컥 믿어버린 것이면. 그렇게 대뜸 물기가 감돌고 젖어버린 것이면, 나처럼 함부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쓸데없이, 이럴 땐 선물을 받아 들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헷갈리기도 하고.
아침마다 면도를 하는데 괜히 그를 의식하게 된다. 더욱 잘 밀어야 할 것 같고,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것 같다. 최대한 민둥 하게 깎아보겠다고 턱 부분의 피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바짝 비워내는데, 혹여 또 베이기라도 한다면 온종일 그를 피해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물들이는 일은 난처하기도 하고 감춰둔 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열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가끔씩 눈이 맵게 붉어지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가 물이 들어버린 일. 새벽은 되어야 겨우 마음이 물렁여져서 뭘 좀 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쯤 되자 네가 뉘인 몸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지고 가벼워졌고, 가끔씩 움적일 때마다 결리는 뼈마디 사이에선 둔탁한 음들이 탁탁 튀듯이 울렸다. 몸이 많이 불편하거나 굳은 사람 같기도 했다. 염치없이 글을 좀 써도 되냐고 묻자, 수면등을 켜 놓으며 그러라는 무언의 대답이 전해진다. 네게 할애받아서 쓰는 빛은 종종 너를 잠 못 들게 골렸고, 몸을 뒤척이는 일이 빈번했다. 너의 잠은 늘 선잠이었다.
등을 긁어달라며 내게 비스듬히 밀어 보인 것은 새벽 한 시쯤이었다. 하필 나는 손톱은 다듬지 못해서 할퀴듯 긁어주었고, 답서처럼 시원하다는 말과 함께 붉게 물든 살이 올라왔다. 그 모습은 헤어지는 연인이 서로에게 건네는 안부나 당부처럼 거짓말 같다. 나 없이도 잘살라는 말같이, 아픈데도 일부러 시원하다고 멋쩍어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몸을 말 듯 웅크리며 애써 잠을 청하는 모습은 무척 메마르고 가녀려 보였고, 괜히 마음마저 시큰해지는 밤이 오래였다.
배가 고파 뭐 좀 먹으러 갈지 부산 떨다가, 같이 가자고 선뜻 자세를 고쳐 잡는 모습을 보고선 아차 싶었다. 너를 괜히 들쑤신 꼴이었다. 근처 국밥집으로 향하면서도 마음만은 결코 편치 않았다. 대체로 알 법한 티브이 프로에 방영된 적 있는 가게 치고는 사람이 없었고, 조금 허름했고, 국밥보다 술을 먹으러 찾은 연인 한 무리가 있었고, 그 둘은 조용히 국밥을 삼키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보였다.
가게 안은 뭉근히 곤 육수의 구수하면서도 꼬릿한 냄새가 충분히 배어있다. 우리는 둘이 와서 겨우 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자지도 못해놓고, 자다 일어나 입맛이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무 말도 꺼내지 않다가, 입만 열리면 꼬박 밥을 들이 넣었다. 얼른 먹어치우고 비워내는 일이 최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연인 무리는 술을 나누어 마시며 잔이 탁자에 놓이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지만, 서로의 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잔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간명하고 슬픈 대화이기도 했다. 비릿한 냄새가 더럽고 혼미하게 흐르고 있는 공간에선, 잔이 탁자에 턱턱 떨어지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물들라고 물들라고 떠미는 타전 같다. 얼굴로 그릇을 들이키며 눈을 살피는데, 너의 붉게 충혈된 눈이 울음을 가득 움켜쥔 심줄 같아 보인 것은 네게 확실히 내가 물들어버린 탓이었다. 네 눈의 모양새를 어떻게든 닮아보려는지, 내 눈도 붉게 붉게 달아오르다가 진해졌다. 물이 들어 버리는 일은 확실히 그랬다. 마음뿐 아니라 몸도 닮아보려고 애쓰게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너를 글로 옮기다가 잠이 들었다. 한 번 물이 드는 일은 이토록 순간이었으나 빠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좀 덜어보겠다고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