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였다. 성급하게 나와버렸고 차갑게 벗겨져 있었다. 당신은 제 살붙이가, 유폐된 곳에서 징그러운 얼굴로 시간을 견디는 게 안쓰러웠다. 더 이상 눈을 감고 체내의 태동을 돌 볼 필요가 없었지만, 마음을 졸이며 심음을 살피는 일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희박하다고 했다. 줄어들거나 부족하다는 말처럼 점점 옅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 말과 곁들이며 준비하라는 말은 지워내라는 뜻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겠으나 잊으라는 말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어서, 어떻게든 제 방식대로 소화시켜내야 한다는 격려에 가까웠다. 슬픈 날이 많았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아마도 당신은 기진한 몸으로 그럴 순 없다며 간곡했을 것이다. 무작정 손이나 바지춤을 덥석 덥석 잡아 채기도 했을 것이다.
기적처럼 숨이 잘도 이어지는 것은, 매우 아픈 몸이었지만 그래도 산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약을 입속으로 채워 넣거나 측정해야 하는, 삶에 부속물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행복보다 다행이라는 말을 조금 더 신뢰했다. 약의 가짓수는 줄기도 하고 늘기도 했지만, 좀처럼 아프지 않는 날은 없었다. 그리고 약은 아주 썼다. 약이 그렇게 맵고 쓰다는 것에 조금 놀랐고, 몸이 낫는다는 말은 의심스러웠다. 약을 꼬박 먹어도 수시로 몸은 말썽을 피웠다. 효력이 없는 탓인지 있어서 이 정도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려보겠다고 차마 약을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필 약은 왜'식후 30분에 복용하시오'라고 적혀있어서, 혀에 묻은 맛을 자꾸만 약으로 지워내도록 했을까. 약이 아니면 그 어느 것에도 전력을 다해선 안된다는 뜻일까. 혹은 아픈 사람은 오래 아프고 아파야 무뎌진다는 뜻일까. 그래서 죽도록 아픈 몇 일들은 세월의 자락을 쥐고 사정해야 겨우 소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러다 어느 날은 약이 너무 쓰길래. 쓸데없이 몸은 또 아파 와서 한 손에 물컵을 꽉 쥔 채 사일 치 분의 약을 줄지어 꺼내놓고는, 단숨에 입으로 털어 넣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한동안 약을 입에 넣지 않아도 될까'하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후, 당신은 울고 말았다. 숨 죽이듯이 아주 조용하게 울었다. 처음 울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외양을 주시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양 쪽 어깨가 얼굴 앞쪽으로 많이 수그려있다는 것과 숨을 자주 바쁘게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차분한 울음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자주 아프거나 앓는 모습은 쉽게 전염이 되고, 그래서 그만큼 그 누구도 많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당신은 울음을 쏟거나 뱉는다기 보다 적막이 짙은 곳에서 애타게 부르거나 한 음절씩 흘려보내는 것 같다. 말들은 딱딱한 형상으로 굳지 못하고 입안에서 용해되어 녹아내린다. 그렇게 모든 발음이 자신 속으로 깊게 웅크려있다. 슬픔에 젖기 위한 최소의 음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당신이 울음에 관하여 지독히 실용적이라는 뜻이었다. 응어리져 얽힌 무엇을 잠시 게워내거나 덜어내겠다는 것일 뿐, 결코 비우거나 쏟아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어쩌면 당신이어서 편히 울지 못했을 테지만 딱히 당신이라서 시원히 못 울 일도 없었는데, 꼬박 그렇게 했다.
울음은 일찍이 말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울음을 온전히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아주 아름답게 슬픈 시가 나올 것이라 믿지만, 장황하게 말의 언저리를 돌다 지쳐버리거나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울음 앞에서, 우리가 가끔씩 말을 잃어버리는 일은 어떠한 말도 그 앞에선 쓰일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모든 말들이 쉽게 지워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얼마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무언가를 글로 풀어내던 날이었다. 여행 중 마음에 드는 펜을, 검은색으로만 다섯 자루를 사 온 적이 있는데 그 중 마지막이었다. 검정 잉크가 점점 연해지다가, 펜 자국을 선명히 비췄다. 기갈 들린 사람처럼 펜촉은 메마르고 거칠어졌고, 펜대의 뒷부분을 열어 입바람을 불었다. 치약을 쓰듯 꾹꾹 눌러쓰고 싶어서였다. 그 모습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가, 당신이 물었다.
"왜 그렇게 펜 속으로 바람을 부는 거야?"
"펜이 죽었나, 잉크가 안 나와서 좀 더 써보려고"
죽는다는 건, 꼭 생리적인 일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전부 소진되었다든가, 점점 희박해진다던가. 결국엔 끝난다는 의미로 수렴되는 말이어서 어찌어찌 알아듣는 것인데. 때마침 당신이 흘린 말은 도무지 나를 벗어나 있어 알 도리가 없다.
"슬픈 일이네."
무엇이 슬프다는 걸까. 나일까 혹은 펜일까, 둘 다 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내가 시인에게 말을 했던가. 펜이 죽었다는 말을 했는데, 슬프다는 답이 되돌아 오는 일은 분명 무엇인가 말 사이를 깊게 헤맸다는 것이고 어지러웠다는 뜻이다. 그래서 슬프다는 말이 불쑥 당신의 입으로 도착한 것이겠다.
어쩌면 당신에겐 무수히 많은 말들도 단 하나의 슬픔으로 축약될 정도로 부실하고 모자라다는 걸까. 울음을 자주 내게 놓은 것은 그 이유였을까. 아니면 요즘 당신이 자주 아프다는 말을 하고 어디가 쑤신다거나 시리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데, 그 말이 불쑥 입 밖으로 나온 걸까. 그것은 당신이 점점 옅어진다는 의미겠고, 그러면 나는 나라서 시원히 울게 될 텐가. 어쩌면 당신처럼, 꼬박 그렇게 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