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연휴다. 모든 냄새를 찐득하게 뭉개버릴 정도의 더위가 길었고, 시원한 물 한 병을 오래 들고 다녔다. 하나의 계절에 거의 맞선다는 느낌이었다.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뚫고 관통하려는 것 같았다. 추운 계절이면 불쑥 보고 싶은 사람이 그려져 버텨지는데, 더운 계절엔 모든 얼굴이 지워지기만 해서 그런 걸 지도.
모처럼 집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 몸이 더위에 짓이겨지기라도 한 듯 너덜너덜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도 엄마는, 시원하다고 말했다. 가끔씩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 행동들로, 나를 헤집어 놓고 그때마다 '이게 좋아.'같은 말 따위로 나의 입을 막는다. 말이 꼭 자신에게 거는 최면의 일종 같았다. 말의 힘이 밖으로 퍼지지 않고 고여있는. 나는 베란다에 나갔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옆에 몰래 쌓아둔 술병이 보인다.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입이 열렸다.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섞여 들었다.
엄마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근데 술을 마시지 못해서 마시지 않은 건지, 아니면 마실 수는 있지만 마시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몰랐다. 애초에 마시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으니까. 최근에 집에 며칠 머물면서 베란다에 몰래 늘어가는 술병을 보고 말았다. 매번 들키는 것이 습관인 그녀의 삶처럼. 그러니까, 그것은 '엄마는 마시고 싶은데, 마시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읽혔다. 말의 차이는 아주 단순한데 반해, 그 말의 안감엔 감춰지고 견뎌지는 날들이 놀랍도록 차있을 것이다. 가끔씩 말은 삶을 끔찍할 정도로 생략해버리고, 그런 채로 삶은 앞으로 계속 진행된다. 도대체 엄마는 왜 그랬을까.
그녀의 삶은 왜 단전된 암실 같을까. 자신의 삶이 언젠가 아름답게 인화되길 착각하며 암전을 견디고 살았을 뿐, 결코 그 날이 오지는 않을 것처럼. 마모되어 군데군데 녹이 슬고 몇 개의 타일이 일그러지거나 떨어져 나가서 날카로워진 맨바닥에 찬 몸을 욱여넣듯 앉아 몸을 씻고, 왜 수건은 늘 새것이 아닌 누구의 몸을 훑어 지저분해진 것을 썼을까. 그녀가 좋다고 말을 하면, 세상 모든 좋다는 말들이 반칙으로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술을 마셨다. 술은 꼭 술을 마시고 싶어서만 마실 수 없다. 술은 마치 산파와 같아서, 꼭 무엇이 필요해 마시는 것이고 그래서 가끔씩 마시지 못하는 사람마저 취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날 당신에게 아주 비싼 술을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번엔 치사하지 않게, 정말로 '좋은' 술과 더불어 어울릴 잔을 가져다 놓고 가득 따라 줄 것이다. 넘치고 넘쳐, 그러다 흘러 손에 묻은 몇 모금을 당신이 훔쳐 마시지 못하도록 잘 마른 하얀 손수건까지도 준비할 작정이었다. 제 딴엔 가장 좋은 술로 골랐을 테고, 분명 형편없을 거였지만, 삶에 인적이 드문 그녀가 마신 술은 그리 많지 않아서 그 모든 게 새로웠다. 좋은 술은 그만큼 좋은 무엇인가를 만들게 한다는 마음에 들뜬 아이처럼 자꾸만 술병을 힐끗 들여다보았다. 이 술이 어떤 식으로든지 그녀의 마침표 같은 게 되길 바랬다.
한 모금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일순간 환해진 빛이 들이닥치기라도 한 듯 눈이 번쩍 커졌다. 병목을 움켜쥐며, "이런 것도 술이야?" 했다. 아들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친구 같은 다른 존재로서 오래 술을 부어줄 심산이었지만, 금세 술은 바닥나 버렸다. 극속에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감의 역을 맡은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달리 취기가 올라오지 않던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술을 마셨다. 집 안의 조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고, 그만큼 그녀는 더욱 쓸쓸해 보였다. 경직된 얼굴의 균형을 잡기 위해 고개를 위로 치켜 뻗었다. 테이프와 압정으로 길목을 튼, 어지럽게 엉켜있는 덩굴 식물이 천장의 절반쯤을 가리고 있었다. 무릎만치 오는 의자를 가져다가 하나하나 천장에 그녀가 손수 심어놓은 것이었다. 적당히 자라다가 다시 적당히 비워지는 그 식물은, 맞추고 쏳길 되푸는 퍼즐 같았다. 그것은 그녀가 집의 영향에서 최대한 자유로워보고자 한 일이었다.
"엄마, 술 되게 잘 먹네"
취한 게 아니라 배가 불러서 거의 마시길 포기하듯이 널브러진 그녀를 보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모양의 엄마여야 하는지, 탐탁지 않았다. 술은 사람을 꼭 그렇게 만든다. 괜히 눈 길 한번 더 주게 만들고, 눈의 색을 좀 더 무르게 배색해 버린다. '엄마, 엄마는 왜' 같은 물음을 나도 모르게 입안 가득히 물고만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기어코 자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계속 몸이 미끄러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와중에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꼭 빼놓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말은 내 속으로 몰려들어 난처하게 질문을 해대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는 왜'. 말의 두께가 있다면, 분명 삼키지 못할 정도로 두터운 그 말. 아마 평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물고만 있을 그 말.
나는 오늘 그녀가 한 번이라도 가져보기나 했을 법 한, 삶의 구두점을 찍어주기로 다짐했으므로, 포근한 이불 한 장을 끌어 덮어주었다. 아주 정성껏, 그녀여서 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라면 그렇게 했을 일들을 골라내 했다. 취해서 비틀거려 어딘가에 자꾸 몸을 기대거나 부딪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처럼 웃고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베란다에 줄지어진 술병을 전부 치웠다. 그러곤 근사한 새 술병으로 바꾸어 세워 놓았다.
그날, 나는 늦게까지 잠에 늘어져 있었다. 기분 좋은 냄새가 가득 맡아졌다. 맡아서 좋은 냄새와 먹을 수 있어서 좋은 냄새가 있는데, 그 두 개가 동시에 사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내가 마련한 술자리가 좋았어서, 보답이랍시고 이른 아침부터 속을 달래줄 음식을 요리했고, 내가 미처 널어놓지 못한 옷가지들을 불편한 자세로 널고 있었다. '엄마, 엄마는 왜'. 그 냄새가 나를 아프게 후려쳤다. 결국 나는 그녀의 무기력한 아들, 그뿐이었다. 그녀의 삶은 왜 아직도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불안전한 요동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삶에 관한 불확실한 은유는 많은데, 정작 그 삶은 어떤 기미도 없어 보이는 걸까. 그녀는 늦은 시간까지 마셔대 놓고, 그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음식을 차렸다. 그녀는 어제 그 술이 얼마나 좋았던지, 이것 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큰 동작을 취해 보이며, 얼마나 좋은 술인지에 대해 기쁘게 말했다.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런 술이 그녀에게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런 건 한 번이면 됐다. 두 번 마시면 괜히 속이 불편할 것 같아'했다. '엄마, 엄마는 왜' 늘 그런 식이지.
"그러고 보니, 그 병 너무 예뻐서 뭐 좀 담아 키우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술이 아니라, 그녀에게 근사한 퍼즐을 선물한 기분이 들었다.
"응, 진짜 이쁠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