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이 잘 드는 사람

by 이음

한 번 손을 데면 하루 종일 신경을 온통 손에만 써야 될 정도로 지저분했다. 무엇이든 간에 몹시 불쾌하고 끈적이는 게 잔뜩 떨어져 나올 것만 같이.


종업원은 그런 벽을 잘도 짚은 채 '오늘은 너무 더웠어요'나, '정말 습하지 않아요?'하며, 오는 손님마다 날씨를 주문처럼 묻고 받았다. 매번 그 계절이, 지난번의 그 계절이고. 그 질문 역시도 매한가지겠으나 계절은 쉬이 지루한 적이 없어서 계절의 안부를 묻는 일이 싱겁지는 않았다. 내어오는 그릇들은 죄다 투명한 식기들이었다. 선반 위의 모든 그릇들은 무엇을 비춘다는 말보다 안쪽으로 깊숙이 채우거나 담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투명했다. 심지어 음료를 주문하면 잔과 더불어 그 음료를 따로 채워 넣을 투명한 용기 하나를 더 마련해줄 정도였다. 가게의 외양과는 다르게 맑고 투명한 것에 지나친 강박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종업원이 음료를 용기에 가득 부어주고 나면 사람들은 그 용기를 잔에 기울여 따라 마실 뿐,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엔 하나같이 등받이가 없었고, 그래서 취기가 돌아도 어느 하나 허리를 제대로 늘이지 못했다. 마시고 마실수록 몸은 점차 접히고 접혀 오므라들었다.

그를 좀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내가 얼만큼의 시간을 지나왔고, 또 그 시간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왔을까, 흔적을 줄줄이 꿰어주는 몇 없는 사람이었다. 정말, 가게의 그릇들처럼 맑고 고운 사람이라, 문득 그를 보면 되려 내가 비췄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보고 싶어서 그를 만나고도 싶었다. 그러려면 차도 좀 마셔야지 하지 않을까, 하다가 오래 만 사이나 차로 시간의 여백을 갖는 것이지, 모처럼 만나는 사람과는 술로 여백을 매우고 달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 가게에 온 이유는 다 그 때문이었다.



그는 으스댐을 몰랐다. 정말, 바보같은 시람이었다. 사는데 아직 재주가 없어서 많이 무르고, 그래서 마음을 온통 긁히고 다녔다. 사람 마음이 책이라고 한다면. 접힌 마음을 몇 번을 뒤적여 읽을 수 있다면, 그는 겸손이 서표처럼 마음에 끼워있을 게 분명했다. 살면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먼저 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늦었다며 습관처럼 말했다. 약속보다 몇 분은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이 미안해해서 좀 놀랐다. 그렇다고 '아직 시간이 충분한데'라는 말을 거들면서까지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겸손함이 혹시 누군가를 못돼 먹고 으스대기만 하는 사람처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봐 더 겸손해하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벼를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꼬박 미안하다는 말을 챙겼다.


용기에 가득 채워진 술을 투명한 잔에 부어주며 물었다. '요즘은 별 일 없었어?' 그는 잔을 손으로 받기만 할 뿐,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불운한 사연을 겪은 사람이 말을 고를 때만큼이나 신중했다. 입을 아주 천천히 벌렸다. 많이 앓았다고, 아팠다고. 신열이 상당해서 미지근히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밤새 닦으며 열을 식혔다고도 덧붙였다. 몇 도까지 치솟았냐는 물음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체열을 잴 수 있는 변변한 도구가 없었다고. 다만, 평소보다 살에 닿는 사물의 열기가 너무 차가워서, 많이 끓고 있구나. 몸이 많이 눅눅해졌구나, 알았다고 했다. 온도를 측정할 수 없어, 상대적인 온도의 대비로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쓸렸다. 데워진 손으로 데워진 몸의 열기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 닦는다는 말은 씻는다는 말과 또 다른 종류의 것이니까.


잔을 입으로 가져가지도 손에 놓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오른쪽 팔꿈치 부근에 든 멍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상해서 짓무른 과일을 닮은 멍이었다. 누르면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정도로 아픔이 깊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물이 들었을까 싶은 크기의 멍이어서,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그는 자기가 빗은 멍이었음에도 되려 자기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팔을 비틀어 확인했다. 처음 보는 멍인 듯했다. 강도가 센 아픔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반대로 너무 선명한 기억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온몸을 저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멍엔 기억도 아픔도 제거된 채, 맥락 없이 물만 들어 있었다. 누군가 밤새 붓에 남은 수채물감을 털다 묻히기라도 한 듯, 퍼렇게 든 멍에 그는 어떤 전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크게 찧이거나 세게 부딪쳐, 그 충격으로 조금 휘청였을 것도 같은데, 얕지만 날카로운 신음이라도 뱉었을 것 같은데. 왜 간직하기로 마음먹은 몸과 다르게 기억은 어긋나 버렸을까. 그렇게 자신 스스로를 여백처럼 비우고 사는 사람의 멍을 보고 있자니, 꽤 고통스러웠다. 시큰해진 눈가에 무엇인가 불편하게 고이려 들었다. 자신을 지우고 지워 오래 방치한 채, 삶이 많이 가난해진 사람 같아서 그랬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과 자신만 모르는 사람 간의 차이는 크다. 세상 모든 종류의 사람을 그 간격 안에 몰아넣어 채운다고 한 들, 분명 충분하지 못 할 것이다. 그는 전적인 후자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일은 몸만으로 가능한 일도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므로, 그것은 아마 사람과 관련된 모든 가능성에 관한 끝없는, 너무 긴 시간의 이야기일 것이므로. 내가 그를 만난 건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나는.


사람의 성질은 축적된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하늘에서 그리 살라고 정해준 줄 알았다. 그렇게 믿어야 살 만했다. '그 사람은 그리 살아서 그래'라는, 모든 부류 사람의 삶을 헤아리기가 버거웠다. 거대한 역할극에 배역을 맡아서 놀다가는 것이 삶이라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짧은 만남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보면, 그런 모든 생각들이 깡그리 무너졌다. 나는 그에게 삶을 자꾸만 묻고 싶었다. 바람대로, 정말 사람 마음이 책이라면, 끼워놓은 서표와 붉게 줄을 그어 놓은 몇 가지의 문장들과 접어놓은 종잇 끝까지도. 모두 들춰내 읽고 싶었다. 그리고 눈을 맞추면서 도대체 왜 그렇냐고, 모든 의뭉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산더미로 쏳아 놓을 것이었다. 제 멋대로 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지워내면 그만이지만, 남밖에 모르는 사람은, 그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흔적마저 지우고 살아온 지난 삶의 전반을 따져 물을 필요가 있었다. 아픈 걸 보면 자꾸만 그것과 엮이고 싶은 기이한 충동이, 내 눈에 그를 들일 때마다 붙들었다.


나는 그에게 부디 아프지 말라고 전했다.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바람이지만서도, 더욱 간곡하듯 당부했다. 당연한 소릴, 실제로 입밖에 꺼낼 정도로 그는 간절하게 아프고 있었다. 무엇을 가득 매워보자고 비운 술이었는데, 비우면 비울수록 그만큼 앙상하게 줄어들거나 어지럽게 엉키기만 해서 큰일이었다. 가끔씩 술로도 도저히 매울 수가 없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있고, 그런 것들이 쌓여 삶에 큰 해일을 만들고 흩트려놓는다. 어쩌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자신이 겪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당하게 되는 것이다. '겪는다'라는 말은 자신이 당한 것을 사후적으로 위로할 때나 쓰이는 말인 것이다. 그와 나의 눈이, 낯빛이 서서히 붉어지며 닮아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대부분이 그냥 그런 말들이었다. 사실, 그 무슨 말들이 오가도 다 그런 저런 말들처럼 들려버리는 상태에 빠져있었다. 나는 최대한 그의 눈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고, 등받이가 없어 다행이었다. 울음을 편히 내보낸 사람이 뿜어내는 이상한 개운함처럼, 그의 몸으로부터 열기가 가득 밀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불규칙적으로 밀고 당기면서, 뒤엉켜 공중에 붕 뜨는 기분도 들었다. 그의 무엇인가가 내게 큰 중력으로 작용해서, 마음의 균형을 휘청 잃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계속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거는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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