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아픔은

by 이음

기록된 수치를 들이대며, 이것이 평균치고 또 이것은 내 수치라면서 그래프를 건네주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잘못되었다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데가 있어 보였다. 너무 과하다고. 그래서 곰팡이가 슬듯 몸이 헐고, 눈이 자주 충혈이 될 정도로 피로를 느끼고 면역력도 형편없는 거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성인에 맞지 않는, 겨우 초등학생이나 될까 한 면역력을 지녔다고 말해주었다. 나이를 잡숫는데, 그만큼 몸이 같이 나이를 들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나이는 드는데 그냥 늙고만 있었단 이야기였다.


치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불가능하다고 했다. 희귀병은 발병원인을 모르니 치료가 불가능해서, 만성질환처럼 달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스스로 멋쩍었는지 차고 있던 가죽 팔찌를 감싸듯 쥐었다. 시든 가죽 향이 밀려왔다. 두고두고 꺼내 맡아도 그 향이 평생을 바라지 않을 것처럼 오랜 시간을 묵혀 만든 냄새 같았다. 기한이나 날짜 같은 말로 감히 깊이를 잴 수 없는, 길고 먼 한 삶의 연혁 정도는 되어야 풍길 수 있는 냄새였다.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는 내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말을 이었다. 약의 효력이 없을 시 다시 상담할 것. 여의치 않는다면 꼭 반알씩만 늘릴 것, 절대로 용량을 임의대로 올리지 말 것. 문제가 있을 시 꼭 병원에 올 것. '여의치 않는다면'이라는 말을, 나는 '충분히 그렇게 할 것'으로 고쳐 들을 정도로 어렸고, 그래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다시는 그 시든 냄새를 맡으러 가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약을 먹은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얼마 있었다. 글 좀 써보자고 한 일이 어딘가에 막혀서 한참을 나아가지 못했다. 냅다 시간만 붓던 날들이었다. 그러면 시원히 뚫리진 안더라도 좀 접히거나 허물기는 할 수 있을까 하여 며칠을 꼬박 자지 않았다. 시간이란 시간은 죄다 긁어 모아 쏟았으니, 눈에는 핏기가 붉게 돌았다. 목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갈증을 느낄정도였다. 마치 물을 오래 적셔보지 못한, 돌보는 이가 없어진 화분 같기도 했다. 지저분하고 역한 살내가 살아있기라도 한 듯 몸집을 부풀리며 방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코는 가장 기민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감각이므로, 모든 냄새가 금방 익숙한 냄새로 되어버려 다행이었다. 입에는 온통 흰 곰팡이가 피었다. 피로가 쌓이고 쌓일수록 몸 어딘가는 자꾸만 덜겠다는 듯이 패이고 헐었다. 자고 싶지 않았는데, 내 몸은 이미 숙박계를 적어가고 있었다. 그때, 처방받은 몇 알의 약이 눈에 집혔다. 꼬박 챙겨 먹으라고 했던 약이었건만 몇 날을 거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수면유도제라도 되는 줄 알고 두어 알쯤을 삼켰다. 그러면 몸이 좀 괜찮아질 거란 생각이었다. 이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누군가 숨을 몸속에 강제로 구겨 넣는 거북함에 잠에서 깼다. 무언가 이상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의 비례가 언뜻 맞지 않고 일방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들숨은 끅끅거리며 그런대로 들어왔는데, 들어찬 숨이 도통 밖으로 뱉어지질 않았다. 마치 방에 물이 가득 자라난 것만 같았다. 문득 두려워졌다. 중단한 약을 다시 복용하는 데에 적정의 복용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일을 겪고, 얼마 후에 알았다. 머리가 조이듯 아프고 어지러웠다. 머릿속에 먼지 같은 것이 잔뜩 끼어있는 기분이어서 물에 머리를 처박고 사정없이 휘젓고도 싶었다. 그 물은 아주 차갑거나 아주 뜨거워야 했다. 집 밖을 나왔는데, 길이 평소보다 더 아마득해 보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 얇은 티 한 장 만을 걸친 불우한 행색에, 무엇보다 숨까지 거칠어져 허우적대는 모습은 누가 봐도 섬뜩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기사분은 내 외양을 한 번 크게 훑고는 방향을 잡았다. 차를 아주 거칠게 몰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만 이미 지독한 어지러움을 겪는 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내 한쪽 팔을 자신의 딱딱한 목선에 걸어 이고 갔다. 근처 화단의 둔덕을 손바닥으로 몇 번 쓸었다. 나를 그곳에 앉히고는 시계를 몇 번 힐끔거리며 황급히 되돌아갔다. 밥벌이가 급해 보였다.



나는 너무 괴로워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는데, 접수실에선 일로 좀 오라는 말 대신 손목을 두어 번 움직여 손짓으로 나를 붙잡았다. 밟아야 할 절차를 건너뛸 순 없었다.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했던 것이었으나 한 질문에도 변변히 말을 잇질 못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나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말을 거들면 거들 수록 그녀는 자신의 귀를 점점 내 입가 쪽으로 가져왔다. 사람의 말만 알아들으려는 사람만큼이나 못난 사람도 없지 싶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무엇이냐고 묻는 건 도대체 어떤 종류의 말일까. 이 참에 내게 말이라도 가르치려 들 셈일까.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몇 개의 기재란이 구획된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말을 하지 못하니 적으란 소리였다. 손이 심하게 떨리자, 떼를 쓰는 아이에게 '그것 봐, 할 수 있잖아.'하는 식으로 그녀는 내 오른손을 꽉 쥐고 글을 따라가도록 도왔다. 몸은 자꾸 내 통제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인데, 그녀는 그런 나를 질책했다. 가끔씩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서툼을 미숙함의 동의어쯤으로 여기는 사람같았다. 화가 났다. 결국. 나는 펜을 바닥에 집어던졌고, 그녀는 짐짓 놀란 표정이었으며, 내 몸은 쓰러졌다.


가까스로 눈이 띄어졌을 때는 이미 몇 가지 검사가 이루어진 후였다. 이상한 장치가 몸에 주렁주렁 집히거나 매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급류에 한 바탕, 정신없이 쓸려가다 건져진 신세였으므로 시간의 경과를 온몸에 부치고 있었다. 아니, 시간의 경과라기보다 시간의 내용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흠집이 팔 이곳저곳에 아픈 무늬를 그렸다.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긁혔던 모양인데, 기억엔 없었다. 몇 가지 검사를 더 하다가 몸이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숨이 잘 쉬어진다고만 대답했다.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처방받은 양을 과용했던 탓이라고, 몇 번의 검사를 더 치루어야 한다고, 숨을 충분히 고르라고 했다. 나는 그가 했던 모든 말을 건너뛰었다. 다만, 지금 청구된 비용을 확인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목숨과 돈 사이의 흥정을 하려러던 참이었다. 청구된 비용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있었다. 목숨을 구한 삯이라치면 또 헐값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추 받을 검사조차 그렇게 생각키엔 내 몸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엄마에게 자주 '목숨과 돈의 흥정에서 진 사람보다 창피한 것은 없'라 했던 내가, 실제로 흥정에 지기 위 철저히 애쓰고 있었다. 그는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다고, 검사를 몇 가지 더 받아보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이상한 기계장치들을 심장 부근에 매달고 며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며칠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거세게 붙들었다. 그는 도저히 안된다고 고개를 젔다가, 이 상황에서 꼭 가야겠다고 사정하는 걸 보면 또 자기 목숨만큼은 중한 일이겠거니 했는지, 하는 수 없이 허락해주었다. 하나, 위급한 일을 겪더라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각서만은 꼭 쓰고 가라고 했다. 순간,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던, 어떤 감정들이 마음속에 솟구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중요한 약속도 없었다. 추운 겨울날, 얇은 티 한 장만 걸친 채로 무작정 걷는데, 모든 것이 미웠다. 너무 미워서 오히려 이대로 사라지거나 어딘가로 멀리 도망쳐 없어지고 싶은 기분마저 끔찍하게 차올랐다. 가뜩이나 안 써지는 글을 좀 써보겠다고 빠득거리던 일이나, 짐짝 버리듯 나를 던져 놓은 기사분, 말을 하지 못해서 아둥대던 날 몰아세운 그녀까지. 비어져나오는 듯이 끅끅 끊어지는 울음 때문에 목구멍이 아파왔다. 사단이 났다 싶을 정도로 너무 미워서, 고개를 몇 번 뒤로 가져가기까지 했다. 세상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따위는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전부 거짓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진짜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세상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무수히 많고, 나는 오늘 그중 하나를 겪었을 뿐이었다.


온몸에 부스러진 흙이나 흠집을 묻히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처럼, 시끄럽게 소리를 좀 지르고 싶었다. 몹시 추운 날, 깊은 새벽이거나 조금 이른 아침쯤에. 다른 계절의 복장으로 어디를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다면. 또 닿는 곳이 약국이거나 병원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죽도록 사랑할 자신이 있다. 필시, 그 사람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외로움과 마주하고 있을 테니까. 그 외로움은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해서 번지는 외로움이, 사람은 겨우 사람밖에는 사랑하질 못해서 바스러질 듯 야위는 외로움이 아니다. 낮아지고 높아지는 사랑에 몇 번 섞여 들어야 간신히 묽어지는, 그런 외로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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