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도 캠핑 가자!”
“다온이가 낭만을 좀 아네! 아빠가 텐트도 잘 치고, 고기도 잘 굽잖아. 엄마한테 말해봐.”
못 들은 척 스마트폰 화면만 넘기고 있었지만, 딸아이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엄마~아~ 가자. 나도 텐트 치고 놀고 싶단 말이야. 밤에 별도 볼 수 있대. 진짜, 절대! 힘들게 안 할게.”
“아, 엄마는 무조건 콘크리트 안에서 자야 한다고!”
“여보, 그럼, 캠핑 갔다가, 잠은 집에 와서 자는 걸로 하자. 어때?”
우리의 첫 캠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름 모를 벌레들과 딱딱한 바닥, 불편한 화장실과 내 몸을 지키기엔 턱없이 얇은 천. 그 속에서 낭만을 찾는다는 말은 허세 같았다. 두 사람의 끈질긴 성화에, 마지못해 짐을 챙겼다. 물론, 잠은 집에서 자는 조건으로. 가족의 평화를 위해 몇 시간만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다.
도착한 곳은 집에서 30분 거리의 ‘반가운캠핑장’.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분주히 움직였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치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딸아이는 자기 몸만 한 의자와 테이블을 나르며 내 앞을 가로질러 다녔다. 호흡이 척척 맞는 두 사람 사이에서, 그저 시계만 힐끔거렸다. 애초에 내 목표는 단 하나, ‘버티기’였으니까.
눈앞의 산 능선 아래,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아이들과 반려견들이 그 위를 뒤엉켜 뛰어다닌다. 남편과 딸아이는 그들 사이에 섞여, 공을 차고 배드민턴을 치고, 처음 만난 반려견들을 쫓아다닌다. 이어 산책로를 걷다가, 어느새 모래놀이에 빠져,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의 끝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나는 텐트에 남아, 혼자 조용히 커피를 내렸다. 그들의 세계와는 다른, 고요한 세상. 책장을 넘기며, 그들과 조금씩 더 멀어져 갔다.
“안녕하세요, 혼자 계시나 봐요. 이거 제가 만든 쿠킨데, 나중에 딸아이 오면 같이 드세요.”
옆 텐트 아이 엄마가 말을 건네왔다.
“어머, 감사해요. 저는 드릴 게 없어서 어떡하죠?”
“아니에요, 우리 딸이랑 또래가 비슷해 보여서요. 나중에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아요.”
캠핑을 자주 다닌 듯한 그녀에게선 여유가 묻어났다. 커피를 나누며 우리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이들도 금세 친해졌고, 그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어른들은 각자의 일상을 풀어놓았다. 손에 쥐었던 책은 어느새 구석으로 밀려났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준비 없이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옆 텐트 언니가 건넨 인사와 쿠키 한 봉지. 그 작은 배려 덕분에, 도심의 카페나 사무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소통을, 오랜만에 느꼈다. 자연은 어떤 규칙이나 형식에도 우리를 묶어두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 안에 있으면서 묘하게 마음이 열렸다. 자연이 주는 느슨한 연결감은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향해 기꺼이 마음을 열게 한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복골오토캠핑장’이었다. 이번엔 ‘버티자’라는 생각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옆 텐트 사람들과 나눠 먹을 음식까지 챙겼다.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인 캠핑장.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몸을 맞대며 하늘을 가린 나무들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들어왔다. 그 아래,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텐트를 치는 일도, 짐을 푸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손끝에 닿은 차가운 금속, 부풀어 오른 천의 질감, 지퍼를 열 때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까지, 모두 손끝에 담았다.
책 한 권을 들고,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책을 펼치긴 했는데, 어쩐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바람에 실려 오는 산뜻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에서 마시는 모닝커피의 맛은 어떨까.’
그렇게, 콘크리트 건물 대신 얇은 천 안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은은하게 퍼지는 달빛을 등불 삼아, 텐트마다 흐르는 웃음소리. 공기 중에 짙게 스며든 숲 향기, 촉촉한 잔디 위를 스치던 서늘한 공기. 고요함을 깨우던 풀벌레들의 노랫소리.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되었다.
편안한 캠핑을 원할 때는 ‘한려해상 학동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깨끗한 6인용 카라반이 1박에 8만 원이라니, 놓칠 수 없다. 좁은 트렁크에 텐트를 구겨 넣을 필요도 없고, 텐트 치는 전쟁에서도 해방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관리도 잘 되어 있다. 캠핑장 바로 앞엔 몽돌해수욕장이 있어, 산과 바다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예전엔 선착순 예약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추첨제로 운영되고 있다.
평생 할 캠핑을, 이곳에서 다 하고 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거제에 살지 않았다면, 캠핑의 매력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연과의 불편했던 동행은, 어느새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자연 속에서 숨을 고르고, 삶의 균형을 되찾으며 내 안도 조금씩 채워지고, 단단해진다. 이 시간을, 언제까지고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