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이 된다. 퇴근 시간도 아닌데, 회색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있다. 불길하다. ‘제발 아니길.’ 왼손으로 조여오는 심장을 토닥이며, 오른손으로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연결음이 길어지자, 온몸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안 그래도 지금 집에 가는 중이다.”
다행이다. 남편의 목소리에 목구멍에 걸려있던 숨도 풀어졌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노?”
“바로 받았는데...”
이번에도 잔여물이 남은 듯,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남편이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누군가에게는 닿지 못했을 테니까.
며칠 후, 그날의 얼룩진 여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저녁이었다.
“언니, 커피 한잔할래?”
“무슨 일 있나? 애들은? 신랑 밥 안 챙겨도 되나?”
그 집 남편은 저녁밥 없인, 잠을 안 자는 사람이다.
“우리 신랑, 이틀째 출근 안 하고 있다. 저녁밥도 안 먹는 다네.”
“왜? 어디 아프나?”
“아니. 며칠 전에 사고로 죽은 사람 있잖아... 우리 바로 위층 사는 사람이거든.”
“....”
“그 언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안녕하세요’란 말이 안 나오더라.”
비슷한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늘 인사하던 사람, 잠옷 차림으로 쓰레기장에서 마주치던 사람, 놀이터에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것도 내 일터에서 일어난 사고로.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는 충격.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 돌이킬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언제든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복합적 감정들이 한꺼번에 덮친다. 출근은 어림없다.
이곳에 이사 온 이후, 매년 인명사고가 있었다. 많을 땐 한 해에 네다섯 명 정도가 사망했던 적도 있다. 딸아이는 4살 때부터 “아빠, 절!대! 안 다띠게 해두떼요.”라고 기도했다. 평범한 오늘이 기적 같은 날임을, 매일 몸으로 느꼈다.
수십 톤의 중장비와 거대한 선박을 다루는 일은 늘 위험과 맞닿아 있다. 작은 실수도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늘어난 작업량에, 피로가 누적된 몸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숙련되지 않은 손들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기도 한다. 안전 관리라는 체계는 있지만, 그게 든든한 생명줄이 될 리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일상적 불안을 밟고 살아간다. 아침 출근길 나누는 짧은 눈빛과 인사엔, 서로의 무사함에 안도하는 마음이 담긴다. 퇴근 후 기울이는 맥주 한 잔엔,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도 아낌없이 붓는다. 그렇게 함께 겪은 상처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었다.
이별의 그림자를 안고 산다고 해서, 닥친 이별의 슬픔이 덜해지는 건 아니다. 백 명이 죽든 천 명이 죽든, 내게는 그 한 사람이 전부였다. “한 명 사망했습니다. 두 명 사망했습니다.” 세상이 그를 숫자로만 다루는 게 분하고 억울하다. 마지막 인사조차 없이 떠나간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목소리도, 손길도 이토록 선명한데, 만질 수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후회가 가슴을 후벼 판다. 그의 이름을 꺼낼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는 있을까?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동료였던 그의 죽음. 오늘은 내가 아니지만, 내일은 장담할 수 없다.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 눈앞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장면, 귀에 맴도는 쟁쟁한 절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떨쳐낼 수가 없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나를 갉아먹는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만, 동료의 죽음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떠나고 싶을 만큼 이곳이 아플 때가 있었다. 현실이 쉽게 놓아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끝맺지 못한 감정들을 떠안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을 미완성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던 걸까.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지 않은 곳. 아픔과 그리움 사이를 오가며, 흐릿한 안개 속에 머물러 있는 곳. 어느새 이곳의 아픔이 내 일부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안개도 걷히겠지. 보고 싶다, 그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