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일탈을 하지 않은 이유
지난 개천절이었다. 내 작업실을 안방으로 옮기고 책상 조립과 컴퓨터 세팅을 마친 뒤 잠시 TV를 켰는데 <미운 우리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간만에 보았다. 첫 편의 김제동 씨는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와 나이가 같은 박수홍 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펑펑 울고 말았다. 러빙핸즈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 줄곧 노총각 소재로 "결혼하고 싶어" 컨셉으로 재밌게 진행하던 그.
이전에 클럽 간 장면에서 비난을 많이 받은 모양인데 내가 시청한 장면은 수홍 씨가 어렸을 때를 떠올린 엄마의 눈물 편이다. 자기 집에서 노총각들과 장난 치며 놀다가 갑자기 성장기를 회상하며 수홍 씨 자신은 한 번도 일탈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어머니 호강시켜드리려는 목표만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하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고...
동네에서 번듯하게 살다가 어느 날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여 반지하도 아닌 계단을 두 번 내려가야 하는 완전 지하방에 이사하면서 주인집에는 자기 또래의 여학생이 살고 있어 의기소침했다고 한다. 빚을 얻어 미장원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아직 창창한 40대인데 늘 고단하여 숨이 차서 집과 가게를 오갔고, 그는 엄마 가게 셔터문을 내려 드리며 "오직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리"라는 목표만 가지고 가출은커녕 또래의 친구들이 하는 장난 한 번 안 쳤다고. 형제들 모두 "오직 엄마 호강"만 생각하며 살았단다.
수홍 씨 어머니도 아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장면을 모니터로 보며 많이 우셨다. 그때 참 많이 힘들었고, 어미로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참고 살아야 했다고...
이 장면을 보다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옆에서 아들이 아빠, 왜 우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할 만큼 흐느껴 울었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은 빚쟁이들에게 많이 시달렸다. 빚독촉 전화를 내가 받아서 부모님 안 계신다고 하면 욕이 그대로 날아왔다. 전화 코드를 뽑아놓으면 신고가 들어와 전화국 직원에게 욕을 먹었고, 나는 시험 때도 가난 때문에 낯선 어른들에게 욕을 먹으며 공부했다. 어머니는 내게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미안해하셨다.
매일 밤 10시에 동대문 광장시장으로 출근하실 때 피곤한 얼굴로 깨어 택시를 타셨는데 난 엄마를 배웅하며 혹시나 나쁜 택시를 만날까 봐 수첩을 들고 나가서 택시 번호를 적어두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 난 아버지가 술 드시고 어머니 출근길 운전을 하지 못하시면 그렇게 택시 번호를 적어두며 엄마 출근길을 배웅해 드렸다. 박수홍 씨 마음이 꼭 내 마음이었다. 내가 꼭 어머니 낮과 밤을 정상적으로 돌려드리고 호강시켜 드리리라 마음먹고 학교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할 때마다 어머니 편히 쉬며 사시도록 도와달라는 간구를 가장 간절하게 드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환자인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어느 날 알았다. 내가 간호해 드리는 손을 통해 어머니는 낮과 밤이 정상적으로 되셨을 뿐만 아니라 낮에도 쉬시고 밤에도 쉬시게 되었으니 기도는 200퍼센트 이뤄졌다고.
자라면서 모범생으로 학교 다니고 집안의 기둥이 되어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지금 우리 모자의 사랑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홍 씨 얘기에 비쳐진 내 모습에 눈물이 많이 났다. 우리 아이들 위해 난 건강한 아빠로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201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