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바란 엄마의 소망
이 좋은 날씨의 휴일에 온종일 재택근무 중이다. 작은 방에 꼭꼭 숨어 원고 교정을 하다가 <불후의명곡>과 <룸메이트> 재방송을 잠깐 보았다. <불후의명곡>에서 손승연, 알리, 옴므의 세 가수 노래를 들었는데 여전히 흥미로운 퍼포먼스의 향연을 보여주었다.
오늘 내 호르몬 지수의 돌출일인가? 가을이어서 센치해져 그런가? <룸메이트>에서 개그맨 조세호가 자신의 집에 이국주와 나나를 초대했는데 세호 어머님이 집밥으로 푸짐하게 연예인들을 먹이는 장면에서 심하게 울컥했다. 나나의 생일이라고 미역국에 갈치조림 등 푸짐하게 차려주신 밥상에다가 반찬도 싸서 잔뜩 챙겨주며 많이 먹으라고 감싸주시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분당의 부유한 세호 씨 집마저 부러웠다.
집에 오면 따듯하고 푸짐한 집밥과 함께 맞아주시는 엄마, 그 존재 자체로 얼마나 큰 힐링이 되는가. 나는 엄마의 편안한 얼굴과 활짝 웃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광장시장에 밤 10시에 출근해 새벽 내내 일하고 오후에 귀가하시는 모습을 초등학교 때부터 보아왔다(그때는 통금이 있어서 새벽 4시에 나가셨지만!).
내가 군 제대할 무렵 교회 근처의 아파트를 얻는 게 기도제목인 엄마는 그 소원을 이루어 명일동 M교회 옆 삼익가든에 전세로 입주했다. 그래도 엄마 얼굴은 늘 고단했고 쓸쓸해 보이시기까지 했다. 강변역 부근으로 이사 후에는 모든 게 안정돼 보였는데 내가 4학년 때 그동안 선교단체 일로 밀린 공부를 한꺼번에 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나 내가 유학을 가겠다고 할지 몰라 무리하게 돈을 모으고 계를 드신 게 탈이 나 두통과 구토를 일으키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으셨다. 그리고 지금 18년이 흐르는 동안 병상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몸으로 계신다. 나는 대학 졸업 무렵부터 포근하게 감싸줄 친정 없이 고단한 가장 살이를 하고 있다.
오늘 세호 씨 가정의 친절하고 여유 있는 웃음이 내 깊은 슬픔을 찔러왔다. 다른 날처럼 살짝 찔리고 말면 될 것을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을 만큼 아프게 왔다. 지난주에 아이가 태권도 심사받을 때도 그렇게 눈물이 나더니, 요즘 감정선이 좀 과하게 이상하다. 하루하루의 시간과 인생이 다 가슴을 파먹는다. 세호 씨처럼 아들 수고한다고 품어 주시는 엄마가 그립다.
어렸을 때 땅을 보며 걷기를 좋아한 나는 늘 어깨가 안으로 굽어 있다. 꾸부정한 걸음이 좀체 고쳐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의 무거운 가방 탓도 있지만. 엄마는 늘 어깨 펴고 모델 걸음으로 다니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건 내 못난 걸음걸이를 교정해 주고 싶은 게 아니라 하나뿐인 장남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바란 엄마의 소망이었다.
별로 히트하지는 못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떠오른다. 이범수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 투수로 나온다. 실존 인물 감사용처럼 자그마한 키의 왼손 투수 역할을 한 그는 1승에 목말라하며 늘 어깨가 푹 처져 있다. 엄마로 나온 김수미 씨가 내 기억으론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범수의 투구 장면과 공유와 벌이는 클라이맥스 경기 장면보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인상 깊은 모습으로 남는다. 시장에서 엄마를 만나고 걸어가는 아들을 향해 김수미 씨가 외친 한 마디다.
"감사용! 어깨 펴!"
꼭 우리 엄마가 내 뒤에서 외치신 그 소리와 같았다.
"아들! 어깨 펴고 걸어!"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