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 참고 갈 수밖에 없는 막막함
명절을 맞을 때마다 쓸쓸하다.
주차장에 방문객 차가 가득해 병실 건물 앞 주차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어머니 병실은 한산했다. 사람이 이렇게 야윌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뼈에 피부가 밀착해 있다. 입에서 흐르는 침과 목의 가래가 심해 비닐 기저귀를 곳곳에 대놨다. 간병사님의 피곤을 어쩌겠느냐마는 이러면 엄마 몸이 땀범벅이 되고 열이 오를 수밖에 없다.
머리 주변과 등에 놓은 기저귀들 모두 빼내고 물수건으로 닦으며 해열시켰다.
곧 어머니 옆 베드 할머니의 가족들이 면회 왔는데 사회적 거리가 무시돼 계속 내 몸과 그분들 몸이 부딪쳤다. 반대편 공간도 있는데 굳이 내가 있는 쪽으로 몰려오셔서 면회하니 몹시 불편했다. 이 좁은 병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케어하는 순간의 번거로움이니 감수하고 살짝살짝 피해가며 겨우 간호를 마쳤다. 명절이라 오랜만에 손자, 손녀들까지 왔으니 소셜 간격을 넓게 쓰시더라도 피해드리는 게 옳다고 하면서도 내가 많이 지쳐서 그런지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를 돕고 배려하려면, 스스로 손해 보고 감수하려면 마음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
오늘 손 사진의 위치는 이전과 달리 반대쪽인 이유가 그러하다.
가족이라는 푸근함 없이, 지나치게 애쓰며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고통의 연속에서 또 병실에서 맞는 추석은 건조함이 가득하다. 어머니 입 주변에 흐르는 침은 오늘 내가 왔을 때에 비해 갈 때는 좀 줄었다. 뜨겁던 체온도 정상범위로 내려왔다. 계속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내려놓음이라는 단어가 제일 거칠고 아프게 들린다. 아무 대안이 없다. 하던 대로 참고 걸어간다.
(그리고 열흘 뒤 어머니는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2017.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