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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Oct 09. 2018

타이타닉 (Titanic, 1997)

TV로 다시 본 그 영화, 그 시절 나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준 판타지



추석 특선영화로 타이타닉이 tv에서 나왔다.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1998년 2월이었으니 거의 20년이 흘렀다. 난 지난 20년 동안 타이타닉을 케이블이나 다운로드로 한 번도 다시 보지 않았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기 전인 그 시절 잠실롯데 지하층 상영관에서 홀로 타이타닉을 볼 때 심정은 그저 다른 세계로 들어가 구원을 얻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어 달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중요한 골든타임 다 놓치고 뇌수술을 받은 뒤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계셨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의식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루 세 번 중환자실 문밖에서 면회하는 내 현실은 낯선 광야였고 지옥의 그림자였다.




타이타닉의 러닝타임은 3시간이 넘는다. IMF의 혼란한 고통기에 금 모으기 운동을 하던 그 시절, 타이타닉을 보면 금 모으기는 허사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영화의 인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높았다. 몇 개 안 남은 좌석표를 구해서 영화가 시작된 순간 난 고통의 현실을 떠나 그 배에 올라탄 승객이 되었다. 잭 도슨처럼 갑판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누웠고, 어디론가 떠돌며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은 소원을 이루었다. 모든 걸 던져버리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허세 가득한 부유층을 조롱하고 싶었다. 뱃머리에 아슬아슬하게 타고 올라 팔을 벌려 바람을 맞고 싶었고, 바다 위로 점프하는 돌고래 떼를 보고 싶었다.

그 순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졸업시험을 치고 대학원을 포기한 채 병원 대기실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추운 겨울의 나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린 순간이 잭 도슨이 로즈에게 살아 내라는 맹세의 약속을 하고 깊고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였다. 그의 죽음은 내가 판타지에서 깨어나 고통의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됐음을 알려주었다. 할머니가 된 로즈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바다에 던지고 영화 ost가 흐를 때 나는 돌아가야 할 척박한 현실 때문에 슬펐다. 3시간 여의 구원이 끝나가는 엔딩 타임에 흐르는 타이타닉의 선율은 지옥의 전쟁터로 돌아가는 이등병의 심정을 안겨주었다.

지난 20년간 첫 개봉 시에 단 한 번 본 타이타닉이 그렇게 tv로 다시 왔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계시고 내 얼굴의 그림자는 1998년 초 스물아홉 청년의 그 짙은 우울감과 비슷하지만 디카프리오의 싱그러운 얼굴이 변한 것처럼 많은 것이 변했다. 어쩌면 내 간절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현실은 과롭고 굳은살들이 박혔어도 별 수 없이 연약한지 모르겠다.




잭 도슨과 로즈는 더 예뻐 보였다. 내 청춘이 멀리 떠났고 어깨는 무거워졌기 때문일까. 한 십 년 후쯤 20대가 된 아들과 세 번째 타이타닉을 볼 때는 어떤 기분일까. 지나간 기억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지만 현실의 통증을 어루만지는 쓰담쓰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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