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기쁨을 묵살시키는 교육
박달도서관에 두 아이 데리고 가서 애니메이션을 보여 주었다. 오늘 상영한 어린이 무료 영화는 뜻밖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어른들을 위한 여섯 개의 단편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다. 난 디즈니 만화겠거니 하고 아이들 자리 잡아 준 뒤 곁에서 페북이나 들여다보려 했는데 집중해서 볼 만한 수작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식을 지적하고 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장애인의 현실을 다룬 <낮잠>(유진희 감독), 사회적 소수자 차별 이야기 <동물농장>(권오성 감독), 사회에 만연한 고정된 남녀 성역할을 지적한 <그 여자네 집>(5인 프로젝트팀), 외모 차별을 다룬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이애림 감독), 이주노동자를 다룬 <자전거 여행>(이성강 감독), 입시 위주의 교육문제를 꼬집은 <사람이 되어라>(박재동 감독)로 이루어진 총 여섯 편이 담겨 있다. 이 중에 마지막에 본 <사람이 되어라>의 후기다.
주인공은 덩치 큰 고릴라다. 고등학교 교실에는 각종 동물 캐릭터들이 학생으로 앉아 있다. 고릴라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자신의 관심은 곤충에 있어 방에 온통 나비나 곤충 도감을 붙여 두었다. 아버지는 이런 벌레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사람이 되겠냐고 고릴라를 다그친다(이 만화에서는 대학을 가는 것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람 모습이다. 학교 선생님도 사람인데 "사람이 되어라" 외치며 복장 검사, 소지품 검사를 하며 규칙 위반 동물 학생들을 심하게 다그친다. 고릴라는 자신이 키우는 장수벌레를 입 안에 넣고 다닌다. 선생님 몰래 키우며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다가 선생님과 아버지에게 걸려 혼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장수벌레를 관찰하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혼난다.
"너도 벌레도 숲에다 버려 버리고 싶다. 이눔아!"
"그러면 저야 좋죠. 뭐..."
"이런 멍청한 녀석이..."
그날 등교하던 길에 갑자기 장수벌레가 높이 날아오르며 고릴라를 데리고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그곳은 고릴라에게 판타지 같은 숲이다. 곤충을 좋아하는 고릴라에게는 천국과 다름없는 공간이다. 무당벌레도 7점, 10점 자신이 분류하고 좋아하는 각양각색으로 있고 산딸기도 따 먹으며 기쁨을 맛본다. 숲에는 장수벌레의 친구들이 고릴라를 환영하며 나무액을 와인잔에 담아 준다. 고릴라는 그곳에서 갑자기 사람이 된다!
그렇게 사람이 되라고 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와 선생님이 그렇게 강조한 '사람'이 됐으니 이제 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간다. 난 그렇게 강요받던 사람이 됐으니까! 교실의 동물 친구들은 고릴라가 사람이 된 것에 놀라워하며 부러워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은 충격을 받으며 누가 니 맘대로 사람이 되라고 했냐며, 교실 앞에 붙여둔 급훈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대학 가서 사람 되자!"
선생님은 대학도 안 가서 사람이 된 고릴라의 이마를 분필로 꾹꾹 찍어 다시 고릴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바라는지 알게 된 고릴라는 다시 사람으로 회복해 "이런 학교 생활은 아님"을 외치고 숲으로 돌아간다.
선생님과 경찰들이 나타나 숲으로 간 고릴라를 탈영한 병사 취급하며 확성기로 외친다.
"돌아와라. 이전에 지은 잘못은 용서하고 받아주겠다."
그러나 멀리 바위 위에 숨어 있는 고릴라는 "나는 이미 사람이에요. 학교에는 돌아가지 않겠어요" 외친다. 탈영병이 된 고릴라를 돌아오게 하려고 아버지가 확성기를 든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는 말한다.
"얘야, 넌 사람이 되어야 해."
"아버지, 저는 사람이에요."
"얘야, 이 아비를 봐라."
갑자기 아버지는 자신의 사람 얼굴이 가면이었음을 드러내는 껍데기를 뜯어낸다. 그 속에는 고릴라 모습이 나온다. 가짜 사람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통곡하며 외친다.
"아비는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어.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살아왔어. 고등학교 동창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단다."
아버지의 회한의 고백을 듣는 동안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람에서 고릴라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순순히 학교로 등교한다. 끝.
8살, 4살 두 아들을 데리고 감상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만화였지만 여운이 참 묘한 서글픔으로 감돌았다. 신기하게 두 아들은 한눈팔지 않고 주목해 보았다. 나중에 나는 아들들에게 꼭 말해 줄 것이다.
"대학 가려고 경쟁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 사람의 모습을 잃지 말아라."
주말 어린이 도서관 무료 만화 상영관에서 아이들과 이런 인사이트를 받다니! 1984년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반에 들어온 어느 교과 선생님의 "대학 못 가면 쓰레기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 가짜 사람들의 가르침은 끝난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