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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un 07. 2019

영화 로켓맨과 보헤미안 랩소디

팝스타와 함께한 추억과 인간은 무엇으로 만족하는가의 질문





라미 말렉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 번이나 보고도 쓸 타이밍을 놓쳤다. 오늘 <로켓맨>을 본 김에 두 영화를 엮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수많은 후기들이 나와 있지만, 나는 추억 소환과 인간의 만족(자족)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고 싶다.


라이브 에이드 생방송 시청

1985년 7월 13일, 내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다. 우리 집에는 VHS 비디오가 나오기 전 Beta 비디오테이프 레코더가 있었다. 비디오테이프 크기가 VHS에 비해 좀 작았고, 가격은 꽤 나가는 가전제품이었다. 안방의 전축 위에 있던 그 레코더로 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녹화해두곤 했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팝아티스트는 듀란듀란과 컬처클럽, 웸 등 주로 영국 뮤지션이었다. 용돈을 모아 <음악세계>라는 잡지도 사보곤 했다. 그러던 중 라이브 에이드의 광고를 접하고 자정이 넘은 심야 시간에 주무시는 부모님 눈치 보며 조심조심 라이브 에이드 방송을 녹화했다. 아프리카 기아를 돕자는 의도로 초대형 라이브 콘서트를 기획한 밥 겔도프(노벨 평화상 후보까지 올랐다)의 수수한 노래부터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마돈나, 듀란듀란 외에 비치 보이스, 레드 제플린 같은 레전드, 파워 스테이션 등 프로젝트 밴드까지 돌아보면 굉장한 스타들이 출연했는데, 퀸의 프레디 머큐리 공연이 당시 하이틴인 내게 사랑받은 무대는 아니었다. 야간 타임에 무대에 올라온 듀란듀란의 <리플렉스>가 제일 멋져 보였다. 그런데 이 녹화 테이프를 우리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보여 주었는데, 그들이 듀란듀란은 대충 보다가 퀸의 <라디오 가가>에서 환호하며 저게 진짜 락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다. 나는 프레디의 우악스러운 상남자 율동보다 사이몬의 멋지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더 낫지 않냐고 했는데 나만의 뇌피셜로 묵살됐다. 그 후로 퀸이 듀란듀란보다 왜 나은지 알고 싶어 유심히 반복해서 감상했다. 그러다가 머리에 남은 건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시작할 때 피아노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펩시콜라 컵들이다. 저건 좀 치우고 부르지, 전 세계 송출 방송인데...


그런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 라이브 에이드 재현 장면에서 라미 멜렉이 치는 피아노 위에 똑같이 어지럽게 콜라 컵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당시 고증을 디테일하게 재현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웃음이 픽 나오면서 나의 중 3 시절이 같이 떠올랐다. 듀란듀란을 좋아한 나와 퀸을 좋아한 친구들 사이에서 결국 진짜 영원한 락은 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듀란듀란의 음악을 가볍게 보지는 않는다. 그들의 비주얼이 화려해서 음악이 좀 가려졌지만, 당시에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보여준 밴드였다. 존 테일러와 사이몬 르봉은 지금 많이 늙었다. 그들 모두 내 십 대에 음악으로 판타지를 선물해 준 고마운 존재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엘튼 존의 음악으로 위로받다

1990년은 내가 대입 삼수생 시절이었다. 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시립도서관에서 혼자 씨름하며 힘겨운 입시 준비생으로 살았다. 그해 여름에 아버지가 일본에 다녀오시며 소니에서 만든 컴포넌트 오디오를 선물해 주셨다. 우리나라에 CD가 막 보급되려던 때라 익숙하지 않은 CD 플레이어를 신기해하며 다루었다. 가볍게 톡톡거리면서도 세밀하고 웅장한 음악이 나와 대입 시험에 연거푸 떨어져 마음이 힘들던 내게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그 오디오에는 넉 장의 CD 타이틀이 있었다. 히카루 겐지(80년대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안전지대 7집, 마돈나(Vogue 앨범) 그리고 엘튼 존이었다. 이 넉 장의 CD 중에 제일 천천히 들으면서 가장 자주 반복해서 들은 것이 엘튼 존이다. 특히 <Your Song>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전주만으로도 고민이 많고 힘들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서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부른 <Your Song> 넘버는 물랑루즈 전체에서 가장 좋은 장면으로 기억한다.

91학번으로 합격한 뒤 친한 친구가 선물을 하나 사줄 테니 고르라고 했을 때 나는 퀸의 히트곡이 담긴 CD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 친구는 CD가 뭔지 몰라서 내가 설명해 주었다. 왜 카세트테이프를 안 사고 CD를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기왕 말 꺼냈으니 책임지라고 했고, 친구는 당시 퀸의 CD 한 장 값이 13,000원이나 하는 것에 놀라며 계산했다. 그 친구의 얼굴에 살짝 어둠이 내려앉았고, 덕분에 내가 국내에서 산 첫 CD가 퀸의 Greatest Hits였고 모든 곡을 즐겨 들었다.



답답한 마음을 다독여 준 두 스타

프레디 머큐리와 엘튼 존의 성 정체성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프레디가 파키스탄 꼬마 취급당하며 제3지대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팝스타가 되는 이야기에는 한국 사회에서 주류에 들어가고 싶지만 진입하지 못하는 이들의 심정을 터치해 주었다. 성공하고도 외롭고, 결국 병들어 죽는 이야기에는 측은한 마음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해 준 노래를 만들어 준 고마움이 복합적으로 담겨 열광하게 되었다. 그도 나처럼 힘들었구나, 하는 울림이 제3지대에서 평생 못 벗어날 것 같은 우리들의 절박함과 곤궁함을 <보헤미안 랩소디>는 락 선율로 시원하게 마사지해 주었다.  


엘튼 존의 성장기에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상처로 남아 있다. 조금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철옹성 같은 성에서 엘튼 존을 분리시켜 놓고 무시하고 야단친다. 언제 안아 주실 거냐고 묻는 아들에게 자신은 차가워서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던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으로 낳은 아들 둘에게는 따듯한 아빠의 모습이다. 성공한 엘튼의 눈에 변모한 아버지 모습은 충격적인 상처였다. 아버지부터 매니저까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아무도 곁에서 주지 않는다. 마약과 술에 빠지고 쇼핑 중독, 분조조절장애, 섹스 중독의 생활에 처박혀 버린다. 당시 그는 팝스타로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성공한 엘튼 존이 외로움과 정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위로를 느꼈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의 자족과 행복은 어디에서 채워야 하는지 질문이 떠오른다.



자신을 끌어안고 우정을 회복하기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처럼 엘튼 존을 연기한 태런 에저튼은 훌륭한 가창력과 퍼포먼스의 배우다. 레미 말렉이 뻐드렁니까지 만들며 연기한 프레디는 실제 프레디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고 희화화한 느낌이 좀 걸렸다면, <킹스맨>에서 액션 배우로 활약한 태런 에저튼의 등 근육은 엘튼 존과는 좀 안 어울렸다. 나는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로켓맨>이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해 결코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엘튼의 주옥같은 노래를 활용한 뮤지컬 영화다운 즐거움이 <로켓맨>에서 더 살아나 있었다.


프레디가 자신의 주변에 들끓는 파리를 확인하고 친구들에게 돌아갔듯이, 엘튼은 마약치료를 받으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끌어안는다. 그의 노래에 가사를 붙여준 시인 감성의 전업 작사가 버니 토핀과도 화해한다. 버니 역의 제이미 벨은 영화 팬들에게 반가운 배우다. 후반부 짧은 머리의 얼굴에서 그가 어린 시절 연기한 <빌리 엘리어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도 열연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실제로 엘튼 존 음악의 성공에 버니 토핀의 역할은 지대하다. 버니를 만나기 전 엘튼 존의 곡은 유치한 가사의 소품이었다. 가사가 문제라고 엘튼 자신도 고민했다. 그러다 버니를 만난 뒤,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엘튼은 그의 시를 보면 바로 천재적인 멜로디가 떠올랐고 크게 히트했다. 방황하던 엘튼 존의 새로운 전성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버니와 재결합하면서부터이니 음악적으로는 그 둘은 영혼의 콤비다.


흥미로운 것은 엘튼 존을 이용해 먹는 매니저 존 리드가 무명 밴드였던 퀸에게 매니지먼트 계약을 제안한 동일인이라는 것이다. 두 스타의 매니저를 동시에 담당한 존 리드는 퀸과의 인연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지만, 엘튼 존은 1990년대 말까지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중도 하차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마무리 지은 덱스터 플레처 감독은 <로켓맨>에서 엘튼의 매니저 존 리드의 비중을 높게 잡았다. 엘튼의 내면을 끄집어내려면 존 리드의 다중 인격적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엘튼과의 러브신을 담은 장면이 <로켓맨>에 대한 호불호를 일으킬 것 같다. <Love of My Life>를 작곡하며 노래하다 갑작스레 등장한 프레디의 키스신보다 과했다. 외로워하는 엘튼을 유혹하는 존 리드에게서, 돈 보고 달려드는 똥파리는 계속 똥파리라는 걸 보게 된다.



행복은 어디에

자신을 끌어안고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인간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행복을 얻는다. 돈과 섹스로 행복할 거라고 종용하며 달려드는 세상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 곁에 어떤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왜 성공하려고 하는지 자기 성찰을 충분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상처 때문에 성공한 뒤에는 마약과 섹스 등 중독성 습관이 덤벼올 때 방어할 힘이 없다. 자족함을 찾을 수 없어 폭주할 때 파리가 끓는다. 지금 우리의 문제 중 상당수는 왜 자족하지 못하는가에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하루 만족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 때문일까? 세계 최고의 부자와 인기 스타가 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사기에 날마다 속는 게 자본주의 사회다. 엘튼 존처럼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부자의 세계, 그곳은 외로운 우주, 계속 날아가야 할 것만 같은 끝없는 비행과 소모만 있을 뿐이다.




그녀는 비행 전날 밤 내 짐을 싸주었네

작전 개시 시간은 오전 9시

그때가 되면 저 하늘의 연보다도 높이 있겠지

지구가 너무 그립고 아내도 보고 싶어

이 우주는 너무 외롭거든

그리고 비행이란 끝이 안 보여


아마 조금 오래 걸릴 거야

다시 착륙하여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과거에 그들이 기억하던 내가 아니야

로켓맨, 퓨즈를 태우며 홀로 이 하늘을 날아가네


<로켓맨>의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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