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사는 게 소망이지만...

참고 사는 데 익숙한 내게 거는 말들

by 황교진
1997년 건축공학 4학년 졸업작품 모델 완성 후, 2004년 여름 MBC 화제집중 팀이 우리 모자의 삶을 촬영해 가면서 방송에 내보낸 걸 캡처했다.

어머니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감성적인 분이시다. 내 감성의 전부는 어머니께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감성적인 분의 평생 직업이 동대문 광장시장 도매업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을 대상으로 미시층 대상의 숙녀복을 판매하는 일인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시달리셨는지 모른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데 그 새벽시간 중간 상인들을 상대로 옷을 파는 일은 소녀 감성을 가진 이에겐 견디기 힘든 곳이다.


얼마나 그만두고 싶고,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생활고를 쥐고 있는, 연년생 남매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문제는 엄마의 출근 시간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통금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무렵까지는 새벽 4시가 엄마의 출근 시간이었다.
집에는 저녁 늦게 오셔서 잠깐 주무시고 일어나 나가시는 엄마를 보며 나도 새벽 4시에 깨어 공부해야겠다고 알람을 맞춰두고 엄마만 깨우고는 그대로 고꾸라져 잠든 적이 많았다.
내가 성공해서 엄마의 기상 시간을 바꿔 드리고 싶었는데 얼마나 죄송했던지...


그런 하루하루가 내 청소년기에 고통과 우울을 쌓이게 했다. 그 결핍감은 서울대 입학률만 따지는 학교 분위기에서 교회에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답답한 마음이 구원의 문에 들인 것은 돌아보니 다행이며 감사한 부분이지만.


선지원후시험 제도의 입시에서 나는 서울 소재 대학 전후기 입시에 연거푸 실패해 3수를 했다. 우울한 기질은 공부할 때는 거의 천재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게 했지만 한번 감상적으로 빠지면 모든 걸 내려놓고 며칠간 혼자서 힘들어했다.
습작노트를 만들어 글을 끼적인 게 몇 권이나 되었다. 이과생인데 말이다.

가정형편 어려운 놈들은 문과 지원하지 마!

1학년 말에 이런 무지막지한 말을 내 가슴에 꽂은 선생님, 난 고등학교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
답답한 게 있으면 스스로를 다독이고 기도하고 글을 쓰던 습관이 나를 많이 치유해 주었다.
대학 입학 후 ivf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4학년 리더인 누나에게 그 노트 중 하나를 보여드렸다. 사회사업학과 전공인 그 누나는 내게 문학성이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다시 엄마 얘기로 돌아간다.
엄마의 출근 시간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계속 앞당겨져 밤 10시면 일어나셨다. 매일매일이 살인적인 기상 시간에 보는 어머니 얼굴은 삶에 낙이 조금도 없이, 견디는 고통으로 가득했다.
퉁퉁 부은 얼굴로 깨어나 얼굴을 매만지고 동대문 광장시장으로 향하는 엄마를 볼 때면 성공하고 말리라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그런데 나는 그 우울감과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어 성공과는 무관한 책을 읽는 날이 많았다. 3수할 때 성경을 일독하며 인생의 답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신앙의 성숙함을 중요한 목표로 삼기도 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신 날, 추운 겨울밤에 엄마가 싸구려 신발을 신고 추위에 떨며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하실 때, 나는 엄마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뉴스에 택시 강도가 많이 발생해 밤 10시에 일어난 엄마를 따라나가 택시를 잡아 태워드린 뒤 반드시 차 번호를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하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 밤 10시부터 자정 넘어 나오는 라디오 DJ의 멘트와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는데 새벽까지 안 자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멍 때리고 있는 날이 많았다.


내가 대학 졸업할 무렵 의식을 잃은 엄마를 간호하며 석션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잤다. 예전에 추운 겨울 엄마가 그렇게 캄캄한 밤중에 일어나 찬바람 맞으며 일하러 가시던 순간이 자주 생각난다. 간호하는 내가 건강해야 하는데 머리가 자주 아팠다.
일 년에 두어 번 몸살이 나면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구토와 설사를 하면서도 간병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어 견디며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존엄함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나는 엄마에게 매여 사는 동안 고통 속에서 성장과 성숙을 묵상했다.


생업을 위해 견뎌야 한다고 외치며 엄마처럼 두 자녀를 둔 가장이 된 나는 어느 순간 하나님 앞에서 뭐든 다 참는 게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그렇게 참기만 하지 않으셨다면, 두통이 심해지고 구토를 동반했을 때 병원에서 바로 정밀진단을 받으셨다면, 자기 능력에 버겁고 견디기에 괴로운 일들은 덜어내고 좀 쉬시면서 엄마 자신의 행복도 좀 누리셨더라면...


그런데 지금 내가 가장이 되어 그렇게 여러 일을 인내하며 살다 보니, 나도 엄마처럼 참고 살고 생계를 위해 견뎌야 하는 위치에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세상이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어디든 참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엄마에게 소망했던 것처럼 나 자신도 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직진과 멈춤을 분간해야 한다는 것.

올 한 해 여러 경험을 했다.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게 온몸에 나는 열 몸살을 참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답을 구하면서도 답 없이 사는 익숙함에 다시 적응해야 할 것 같은 모순의 지점에서 그저 오늘 하루를 산다.

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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