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병간호와 현기증
12월에 어머니 간호할 때면
처음 12월인 1997년 겨울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떠오른다.
골든타임 다 놓치고 혜민병원에서 급하게
수술받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를 면회하며
처절한 심정을 누그러뜨리며 견딜 때다.
대학원 연구실 동기, 선배들과 북한산에
오른 적이 있다.
친목의 시간이었지만 난 죽고 싶은 심경이었다.
당시 경북대 대학원생들이
지리산 등반을 갔다가 조난당해
여러 명이 사망한 뉴스가 있었다.
안 됐다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냥 하나님이 갑자기 나를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우울한 심정이 가득했다.
같은 연구실 사람들과 아침에
수유역 부근에 모여 정상으로 향하는데
나는 걸음을 재촉해 한참 앞서 올랐다.
정상 부근의 미끄러운 바위를 혼자 오르다가
실제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그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
"죽을 뻔했네!"였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정상에 앉아 아래를 바라보면서
슬쩍 눈물을 삼켰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마음이 무거웠다.
선배들은 뒤늦게 올라와 야단을 쳤다.
안 보여서 계속 찾았다고...
후에 건축구조학 대학원 실험실에서
실험용 철근들 사용하고 남은 것을
고철상에 넘기고 받은 50만 원을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라고 지원해 준
고마운 선배들이다.
그때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머니 간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낯설음, 돈 문제, 내 미래에 대해 아무 꿈도
꿀 수 없는 막막함의 총체였다.
지금은 간호사들도 경외감을 표하는
간호 전문가가 되었다.
마음의 고통과 긴장은 그대로지만 말이다.
작년 12월에 대출통장 연장할 때
재직증명서를 낼 수 없는 백수여서
은행원에게 차가운 박대를 겪은 적이 있다.
교회 친구 도움을 받아 300만 원 정도
삭감되어 연장은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체감했다.
재정 문제를 해결해 가며
어머니께 고통이 없도록 애쓰는
오랜 삶에 가끔 현기증이 난다.
나의 약함은 그분의 강함이다.
절대로 물러서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