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장기 간병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삶

by 황교진



아침에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운전대를 잡고 기도했다. 지금 내가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와 액셀을 누르는 손발은 내 의지에 따르나, 내 주께서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어렵고 고통스런 일만 있어도 내 인생을 도울 분은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오늘도 고단한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달렸다. 어제 예배 마치고 아내의 몸살을 가라앉히려고 교회 부근의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아이들과 짜장, 짬뽕, 탕슉을 맛나게 먹고 왔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몸이 힘든지...
어머니를 끝까지 잘 돌봐드리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의 무게에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은 부분이 많다. 이건 불신앙이 아님에도 믿음 없는 모습이란 공식에 기도가 짧아지고 표정이 어두워진 채 하루하루 살게 된다.

도대체 기도하면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일어나고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설교를 삶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답이 없는 삶에서 힘든 무게를 덤덤하게 느끼고 오늘 하루 겨우 감당할 힘을 얻으면 그것이 최고의 은혜이고 기적이다. 내일 어찌 될지 몰라도 오늘 살아보려는 의지를 주신 게 응답이다. 왜인지 묻고 싶은 건 나중에 이생의 삶이 끝나고 주님을 마주 봴 때로 미루는 것 말이다.

간호를 다 마쳤다. 오늘도 나를 만나기 전까지 뻗뻗했던 엄마의 팔다리 관절은 내 손으로 부드럽게 풀렸고 손톱도 정리됐고 가제 수건에 적신 따듯한 물로 세수한 얼굴에는 화장수 향기가 나고 있다.
욕창과 폐렴으로 돌아가시는 환자들이 있는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욕창도 폐렴도 없이 생명을 만 17년 동안 보존하고 계신다. 1997년 11월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그래서 11월은 내게 너무 춥다. 보온을 잘하지 않으면 정신까지 얼려고 한다. 대학생 교진이 마흔 중반 가장이 되는 동안의 세월을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알려준다. 이제 노안이 오기 시작하고 밤을 새면 후유증이 길어지고 삶의 회의도 많아진다.
그래도 돌아보면 걸음걸음마다 부시럭거리며 함께해 주신 발자욱이 있어 허튼소리 안 하고 견디어 가는 것이 은혜란 고백을 할 수 있다.

오늘 9월 병원비를 냈다. 대출받은 통장 잔고는 이제 제로다. 고수익 전문가들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부담을 짊어지고 가는 생활에 내가 은혜를 계속 묵상할 수 있는 건 오랜 광야가 있기 때문이다. 왕궁보다 광야에서 나는 자란다. 바람이 추운 걸 알아야 내가 약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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