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통은 줄지 않을까

두려움과 답답함에 친숙하기

by 황교진

2014년 마지막 간호다.

간호 마칠 때 손 사진을 올리는데 오늘은 발을 찍어 보았다(이 글을 보실 김병년 형님께는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약자가 약자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몇 번 망설이다 죄송한 마음 누르고 올린다).

간호의 대부분 시간을 몸에 냄새나는 주요 부위를 청결하게 해드리는 일에 쏟는다. 6인의 환자를 공동 간병하는 간병인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머니 같은 중환자는 1주일에 한 번 약식 목욕으로는 냄새를 쫓고 청결을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집에서 간호한 8년 동안 매일 오전을 목욕과 드레싱 일정에 맞추어 한 번도 연기하지 않았다. 그것도 매일 혼자 밤을 지새우며 석션과 체위변경, 기저귀 교환을 하면서...
그렇게 맨손으로 따듯한 물을 떠 와 씻기는 시간에 머릿속에 어떤 문장들이 지나간다. 간호 마치고 로비에 와서 손 사진과 그 문장을 정리해두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실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 맞나? 하는 회의감이 깊이 들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향한 2차 3차 가해, 에어아시아 추락으로 11개월 딸과 함께 실종된 선교사 가족...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우리 교회 부부의 12살 외동딸 새희가 다섯 살과 아홉 살 때 백혈병과 두 번을 싸워 이겨냈는데 어제 3차 재발로 다시 어려운 항암 치료와 골수이식 일정에 들어갔다. 하나님은 왜 그런 일들을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나는 올해 개인적으로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실패감을 견디며 다시 실업자 신세를 맞았다. 그동안 딴짓 안 하고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도착지점은 황무지 광야의 연속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하도 답답해서 생전 처음 로또를 사보았다. 당첨시켜 달라는 기복신앙의 기도는 외면됐고 나는 그 결과를 뻔히 예상했기에 스스로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이젠 마음이 아프고 자괴감이 들어도 아프단 소리 못 지른다. 참고 감내해야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하는 일은 풀리지 않지만 영적인 건강 검진은 든든한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의사인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지만 그 든든함이 나를 살게 했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했다. 지금 나는 그 시원한 바람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됐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 맞을까, 하는 근원적인 회의감 아래서 내가 진단한 상태는 C. S. 루이스가 암보다 무서운 것으로 진단한 교만이란 중병이다.

그래서 답이 없는 인생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뭔가 계획을 가지고 계실 거란 기존의 믿음을 가지고 감내하되, 교만하지 말자는 자가 처방을.

어머니께 새해에 만나자는 인사를 드리고 2014년, 참 낯설고 말로는 표현 못할 고통의 18년차를 보내고 201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꼭 10년 전인 2004년 여름, 김영사에서 <어머니는 소풍중>을 내고 취직을 하고 2005년 새해에 정식 출근을 했었다. 그리고 아내를 만난 것도 2005년이다. 10년이나 지나왔는데 더 성숙하기는커녕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살 수는 없다!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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