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큰 신음을 지켜보심
오늘부터 월요일이나 금요일 퇴근 후 어머니 병간호를 하기로 했다.
7월부터 일산으로 출근하면서 주말에 어머니 병원에 오니 아이들과 주말 시간을 빠듯하게 보내게 되고 주일 예배시간에 꾸벅꾸벅 졸기 일쑤여서 예전처럼 평일 간호로 일정을 바꾸었다.
오늘 피곤한 몸 이끌고 부천의 병원에 와 조용한 병실에서 어머니 간호하며 '남들처럼 살지 않는 것'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남들처럼 청춘을 보내지 않은 나는 지금 중년 가장이어도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 아니 살지 못한다.
병원에서 하지 않거나 못 하는 것들을 어머니께 꼭 해드려야 하고 병원비 마련도 매달 고민하며 주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견뎌야 한다. 언젠가 담임목사님이 이제까지의 삶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지만 타인의 충분이 나의 충분이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연연한 적도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참아야 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견딤, 인내, 극복이 내 인생의 키워드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를 독특한 삶, 혹은 나다운 삶으로 치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주님이 이렇게 이끄신 거고 하루하루 살면서 온 길이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 데는 감당해야 할 고독과 고립이 따른다. 포근한 품에 들어가 많이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수두룩하지만 가장이어서 보호자이어서 참아야 하는 게 남들처럼 살지 않는 인생에 주어지는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를 지고 오늘 하루도 잘 마쳤다. 스스로 위로하고 심호흡하고 집으로 간다. 기도는 열심히 한다. 내가 어린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매번 호흡하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결재하시지 않는다. 장성한 믿음은 스스로 힘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분유만 먹길 바라는 유아에서 딱딱한 음식으로 바뀌어 살아가는 장년의 차이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이 아니라, '나의 큰 신음을 지켜보시는' 아바 아버지의 박수를 듣고 사는 것이다.
201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