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간병과 편집자의 삶

고통에서 회복될 때를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

by 황교진

어제 어머니 병간호 마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점점 이 고통을 짊어지는 게 쉽지가 않다.
예전에는 내가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어머니를 돌봐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다. 의식은 없으시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상달돼 응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간호를 마치고 오면 마음이 평안했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잠이 부족해 고단하긴 했지만, 나는 어려운 이웃과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데 병간호가 고정시켜 준 시선이 있었고 대단한 결과물은 아니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점차 시간이 많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어머니를 부르셔서 꼭 안아주시는 게 어머니 개인의 인격에도 가장 좋은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얼른 어머니를 불러주시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때가 있고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명 대학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모시고 가라고 한 어머니를 집에서 8년을 간호해 드리다가 2004년 1월 말, 병원에 모신 후 화, 목, 토, 주일을 간호해 드렸다. 회사에 입사한 후 병원을 화곡동에서 경기도 이천으로 옮기면서 수요일, 토요일을 달려가 간호했다. 그 병원에서 결핵이 발병해 크게 좌절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 일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더욱 깊이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영승이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를 가까운 병원에 모시려고 영등포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은 깨끗하고 케어 수준도 높은 편이었지만 비용은 매달 내 월급이 거의 다 들어갈 만큼 높았다. 그래도 살아가는 게 감사했고 은혜였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병간호를 가는 것으로 하고 주말과 주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월요일 퇴근 후로 시간을 옮겼다. 내겐 가장 힘든 하루가 월요일이 됐지만 내 위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그 자리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는 욕창에 걸리지 않으셨고, 폐렴도 오지 않았다. 결핵과 몇 번 싸워서 견뎌 내셨고, 지금 내가 매주 다녀오는 손길에 큰 문제점이 틈타지 않았다.
만나는 언론 기자들마다 한 번도 도망가고 싶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온 내게는 그 질문이 어색했다. 마치 물에 빠진 자식을 그냥 두고 도망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과 다를 게 없었다.

그에 반해 내 생업인 출판 일은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 5년을 배우고 배려받고 감당한 뒤로는 3년, 1년, 혹은 4개월 만에 새 직장을 구하는 자리를 스스로 선택했다. 무슨 깨끗한 물에서 놀겠다고 그렇게 옮겨 다녔을까? 인내심이 부족한 것도 기획력이 딸린 것도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왜 현재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 어제 새벽까지 두통에 시달리며 고민하다가 오늘 가족들 처가에 있는 조용한 방에서 불혹의 중반을 넘긴 생을 돌아보고 있다. 지금도 계속 어머니를 돌봐드리기 위한 병원비를 마련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고 불안정하지만 외주로 맡은 대필 일도 잘 완수해야 한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힘들지만 고통에 처한 분들에 대한 긍휼,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커피 엎지른 김에 커피 향 맡듯이 깊어간다.

냉각기가 아니라 빙하기에 접어든 출판계에서 편집장급에 속하는 인건비의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금융계의 신입사원 연봉을 밑도는 정도가 편집장 연봉이다. 그걸로 쪼개어 매달 병원비 내고 5인 가족 생활비를 대면서 야근에 새벽 교정 일을 하며 견뎌온 지난 삶, 그리고 지금은 그 삶이나마 다시 주어지길 바라는 프리랜서의 위치에서 두통을 참고 해결책을 구하고 있다. 부당하고 틀린 곳에선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는 결기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어디든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나의 서툴고 모나고 부족한 부분을 더 많이 살피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 참고 오후까지 고민만 하다가 끄적여 본.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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