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온유야, 아빠야> 기획하기 전 스토리
점심 무렵 고대안암병원에 왔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은 12시와 7시여서 온유를 만나지는 못하고 장종택 전도사님 부부와 1층 스타벅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저 그간의 얘기를 들어드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믿음의 가족은 다르구나 하는 걸 발견했다.
이런 3차 병원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 둘로 나뉜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나을 수 있는 경증 환자의 가족은 덤덤하거나 밝은 얼굴이고,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중증 환자의 가족은 영혼이 지쳐 있는 모습이다. 온유를 보살피는 전도사님 부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밝은 모습이어서 특별히 위로해 드릴 게 없었다. 조용히 경청하다가 좀 더 필요한 치료가 무엇인지 알아봐 드리기로 하고 어머니 결핵을 치료해주신 김태형 선생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소아청소년과의 진료를 받으며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인 감염내과의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쪽의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오늘 할 일이 있고, 저녁에 독서모임 준비도 해야 하지만 여기 스타벅스에서 태블릿으로 도움의 손길을 찾고, 책을 읽다가 일어날 작정이다. 병원에 올 때마다 내 가족이 입원해 있는 것처럼 아프고 뭐라도 해드리고 싶다. 차라리 출판사보다 병원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 만드는 것보다 사람 만나고 케어하는 쪽이 내게 더 맞고, 학교 졸업 무렵엔 선교단체 간사 직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는데, 나는 물질적으로 풍성한 삶에는 왜 관심이 없었을까. 때로는 어려운 분들에게 병원비 같은 필요를 팍팍 채워드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위로해 드리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이런 마음으로 괜스레 죄송해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매달리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꾸준히 기도하기'다.
다른 분들의 고난을 위해 기도하지만 정작 내 문제에 대해서는 지쳐 있는 게 사실이다. 오늘 책을 읽다가 다음 내용에 꽂혔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 그 아픔이 오래도록 나아지지 않고 심해지기만 하면 계속 기도하려는 노력이 너무 벅차다고 생각하게 되어 기도를 멈춘다. 깨어진 관계와 가족의 붕괴는 영혼을 지치게 해서, 낙심하게 만들고, 기도가 전혀 소용이 없다고 그리고 하나님이 이토록 중요한 일에서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도대체 왜 기도를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게 된다. 우울증이 기도를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 신체의 화학 작용은 환경과 결합해서 온 세상을 회색으로 칠해 버리며,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이게 만든다."(<제임스 패커의 기도> 325쪽)
매달리기 챕터의 내용이니 그다음 장에서는 꾸준히 기도할 필요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나는 내가 처한 곤경과 싸우면서 가족 중 아무도 돕지 않는 문제에 대해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도리어 내가 어머니를 돌보는 데 훼방만 놓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이 아버지와 이모들을 비롯한 가족이다. 내 아킬레스건은 직장이다. 옳은 것을 향해 분투한다고 생각하는데 늘 곤경에 빠진다. 적어도 이 부분은 깔끔하게 해결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면서 피로감이 쌓이고 지쳐간다. 쉬면서도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오늘 번잡한 고대병원의 스타벅스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책을 읽고 생각하다가 후배가 페북에 쓴 '은혜의 주도권'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내가 주님께 적어도 이건 이래야 하지 않냐고 항변하는 자체가 은혜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선물하시는 분께 나한테는 집과 자동차, 여행 쿠폰은 줘야 하지 않냐는 뻔뻔함과 뭐가 다를까. 아이의 생명, 가족의 질병, 내 진로 등 여러 문제를 놓고 좋은 결과를 바라면서 결국 나는 간절함보다는 합리적인 결과를 바라면서 비합리적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제한된 육신은 지쳐가고....
그래도 주님, 어린아이들은 제발 지켜주세요. 쓰디쓴 마음으로 간곡히 기도합니다.
201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