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도 경험이 필요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날에

by 황교진


어머니 간호해드리다 문득,
성경의 38년 된 병자의 마음이 떠올랐다.
그 병자와 조금의 비슷한 고통도 없는
성경 해석자들이 그의 말을
함부로 판단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두어 번 이혼하게 된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것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준비와
능력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막다른 벼랑 끝에 계속 서서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이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것도
인정머리 없는 무지한 응원이다.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고통을 겪는 이에겐
조용히 지켜봐 주기만 해도 된다.
그가 쌍욕을 하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얼마나 많이 힘들까 이해해 주면 된다.
그런데 실제로 당사자는 사가지 없다는
비난이 돌아올까 무서워 욕도 참게 된다.

오늘 병원에 운전해 오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운전하다가 비명이 나왔다.
그 순간만 보면 나는 미친놈이었고,
전체 문맥으로 보면 "얼마나 힘드니?"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거였다.
내일 우리 모자 이 땅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아이들과 아내 생각은 하지 않는 무책임한

가장이라는 환청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만큼 절망뿐인 하루에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자살한 분,
이 추운 한파에 홈리스로 사는 분,
성경 말씀을 알아도 영혼이 냉랭한 분,
비난과 판단의 소리가 더 많이 들려오는
그러한 모든 분이
나 자신 같이 느껴지고,
이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욕하고 싶고,
같이 눈물 흘리고 싶다.

오늘 나를 비난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 속에 여러 소음으로 시끄러운 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끝없는 고통에 더해지는
환경과 압박.
지하 수심 깊은 곳에
산소통 없이 내려가는 공포증이 밀려오는
그런 날이 있다.

20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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