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극심한 고통이 알려준 비밀

현실주의자가 아닌 천국 소망자

by 황교진



어제 아침 직원 예배를 맡아 성경공부식으로 인도했다. 본문은 출애굽기로 하고 1장을 연구해서 전했다. 사실 출애굽기는 내 신앙과 매우 뜻깊게 연결돼 있다.


1998년 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병동에서 가장 심각한 환자인 어머니의 입원이 길어지면서 병실의 보호자 식구들과 기도 나눔 시간을 갖기로 했다. 6인실 가족 중에 한 병상만 비기독교인이어서 양해를 구하고 예배모임을 시작했다. 병실 보호자들에게 어쩌다 내가 선교단체 IVF에서 훈련받은 사실이 드러나 메시지는 내가 맡기로 했다. 모임 시작은 당시 인기가 높은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가 끝나는 시간으로 하고 병실 중앙에 보호자 의자를 놓고 모였다. 당시 근근이 내가 버티며 묵상한 큐티집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본문이 출애굽기였고 김서택 목사님 설교집을 참고했다.


70명 요셉의 일가가 애굽에 들어가 400년 만에 200만 명의 민족을 이룬 히브리인들. 그들의 비참한 노예생활이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노예생활의 처참한 모습으로 보여준 것은 내가 어떤 상태에서 구원받았는지를 묵상하게 해준다. 아들을 낳으면 바로 죽여야 하는 감시와 통제, 날로 힘겨워지는 중노동에서 그들은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이들이 이 고통의 현장에서 나오게 하신다. 만약 극심한 고통이 없었다면 애굽에서 안주했을 사람들이 애굽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서 시내산 언약으로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가 된다. 그들의 인구 번성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실현이다.


서슬 퍼런 바로의 지배에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 십보라와 부아가 나온다. 그들이 현실주의자였다면 이스라엘의 남아들은 죽었을 것이다. 신과 같이 군림하는 눈앞의 바로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이들은 아이들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힘든 노동과 어그러진 구조에 침식당하는 세상살이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돈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이 사라지는 현실일 것이다. 지난주일 설교말씀에서 최근 탈북자 교수님 강의가 언급되었다. 북한이 김일성을 신으로 여기는 것이 100퍼센트였다면 김정일은 50퍼센트 현재 김정은은 10퍼센트라고 한다. 주체사상이 상당히 무너졌고 탈북의 의지는 높아지고 있는 지금, 남한은 돈이 우상으로 숭배받는 100퍼센트 국가이며 탈북자들에게 또 다른 지옥으로 여겨지는 지경이라고 한다.
여기가 애굽이다. 이 돈의 괴력으로 인한 고통에서 자유해질 수 없을까.


출애굽기는 내 과거를 들여다보게 한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구원받았는지를 돌아보며 잃었던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 어제 메시지 마치고 직원들과 기도시간에 깊은 성령충만을 느꼈다. 예배 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내가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배려하지 못한 것들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죄의 노예였던 내게 오신 성령이 마음에 차 있는 고달픔과 응어리, 한을 녹이고 용기를 심어준 것이다.


여전히 쉽지 않은 삶이지만 말씀을 살펴보니 잃었던 가치를 다시 새기며 회복이 된다. 고통과 싸우는 데는 기도가 최우선이다. 잦은 펀치를 맞으며 잃었던 기도의 힘을 다시 맛보니 지금까지 붙잡고 산 진리를 무색하게 하는 상한 마음이 물러간다.

오늘 아침 무거운 몸으로 출근한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든 현실이 무지갯빛으로 변하진 않는다. 회색지대에서 계속 견뎌야 할 것이다. 은혜를 묵상하니 최근 내게 기도와 후원으로 도와주신 고마운 천사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온기들 속에서도 마음이 낙심과 절망으로 식어 있으니 차가운 한숨이 깊었다.


미세먼지 나쁨 수준의 아침이 이어져도 오늘처럼 화창한 햇빛이 있는 출근길은 긴장을 놓고 천국에 다가서는 기분을 잠시라도 누리고 싶다. 내일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늘부터 안 할 수 있기를.

2016.04.19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돈에 관한 세 가지 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