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잘 견디고 살아가는 것도 중대한 사명
오후 예배 전에 큰아들 데리고
모교 배재고 교정에 가보았다.
1986년 입학 당시 아펜젤러 동상에
알 수 없는 인사이트를 느끼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픔과 고통이 많던 고교 시절,
첫 발을 내디딘 그 현장에 26년 만에
아들과 같이 와보니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배양전 응원 연습하던 거대한 운동장도,
겁부터 덜컥 나던 학생부장님 눈초리에
긴장하며 들어가던 교실 건물도,
모두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리고 내 꿈도 그만큼 작아져 있다.
거창한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그저
잘 감당해 내는 것으로
살아가는 지금...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나처럼 소박한 꿈을 안고
조선 땅에 온 것은 아닐 텐데,
지금 난 한없이 작아보이는 교정처럼
작아진 존재로 일상의 견딤 정도로 살고 있는 것이
새삼 부드러운 인생의 의미로 해석된다.
일상을 잘 견딘다는 것이 오지 선교만큼
힘들고 어려운 영역이다.
나이 마흔 넘으며 다가오는 폭풍 같은 숙제가
일상을 잘 사는 것이다.
직장과 가정 그 어디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고 우리 속에 작은 자아가 있을 뿐이다.
너무 외롭고 아플 틈도 없는 것이 중년이다.
1880년대 미국인 아펜젤러에게 조선 땅이 일상이듯
2010년대 내겐 오늘 한국 땅이 중요한 일상이다.
그는 학교와 교회를 세운 감리교 선교사고,
나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어깨가 무거운 평신도다.
그리고 나 하나 추스리기도 힘겹다는 것이
선교사와 나 사이에 태평양처럼 큰 간극을 이룬다.
2011.04.29